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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Jun 27. 2024

근육은 답을 알고 있다

건강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지금 환자분의 근육은 비유하면 늦가을의 나뭇가지와 같아요. 좋은 근육은 봄날 물오른 나뭇가지처럼 낭창낭창하고 부드럽지만, 환자분의 근육은 살아 있지만 물기가 적어, 힘을 주면 툭! 하고 부러지는 나뭇가지예요. 이런 근육의 상태는 전신적인 불균형이 꽤 오래 누적되었다는 신호에요. 통증이라는 당장 급한 문제는 침을 맞아도, 소염진통제나 근육이완제를 먹어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성화된 증상의 이유를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반복되거나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길수도 있어요."   

우리 몸은 다양한 방식으로 건강상태를 표현하는데, 그 중 근육의 상태는 몸과 감정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환자는 담이 결려서, 어깨가 뭉쳐서, 허리가 아파서, 목이 안 돌아가서, 다리에 쥐가 나서 내원했지만, 근육은 잠이 부족해서, 소화가 안 돼서, 화가 나거나 우울해서, 피곤해서라고 말한다.


정도가 가벼우면 문제가 되는 부분을 풀어내면서, 근육이 하는 말을 환자에게 번역해주고 생활에서 실천하면 좋은 것들을 티칭해 주면 잘 회복한다. 하지만 내가 '늘어진 용수철'이라고 부르는 근육이 유연함과 탄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면, 환자와 의사 모두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 상태는 병이 만성화되거나 더 중한 병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근육이 탄력을 잃고 뻣뻣하게 굳는 가장 큰 원인은 몸과 감정의 과로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의 에너지를 끌어당겨 쓰듯, 미래에 쓸 기운을 현재의 시간에서 미리 써 버리는 것이다. 쓰기만 하고 다시 채우거나 제대로 쉬질 못하니, 몸과 감정이 견뎌낼 재간이 없다. 젊을 때는 남은 시간에 저축된 에너지가 많고 회복탄력성이 좋아서 어떻게든 버티지만, 중년 이후로는 저축량도 적고 회복력은 점점 떨어져 과로의 흔적은 계속 쌓이게 된다. 급속히 늘어난 기대여명 탓에 은퇴하지 못하고 같은 몸으로 더 오랫동안 일해야 한다는 압박 또한 늘어났다. 더 많이 더 오래 일해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혹사하며 사는 기간도 늘어난 셈이다.


많은 사람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몸과 마음의 원상복구를 하지 못하고 탄성을 잃은 채 살아간다. 환자 중에는 분명 병적인 상태인데도 “나는 본래 그런 사람이었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너무 오래 그런 상태에 놓여 있다 보니 문제가 있어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다. 이 상태가 오래되면, 운이 좋으면 큰 병 걸리지 않고 근근이 문제를 다독여 가며 살것이고, 운이 나쁘면 중한 병에 걸려 고생을 많이 하거나 그 병으로 인생을 마치게 된다. 건강과 병이란 두 단어로 삶을 설명하면 허망하고 우울할 정도로 인생은 간단하다.


우리 몸이 원해서 이런 지경이 되도록 버틴 것은 아니다. 가혹한 상황을 견디기 위해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한계점을 완전히 벗어난 상황이 아니라면, 이 적응하는 힘을 이용해 좋은 상황을 회복할 수 있다. 80세의 노인이 20대의 청년이 되지는 않겠지만, 삶을 좀 더 온전하게 만들 수는 있다.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품위 있게, 조금 덜 아프고, 큰 병에 걸리지 않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늘어지지도 않게 몸과 감정의 상태를 조절해야 하고, 이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한의학의 치료법과 전통적인 양생법이 이러한 탄성의 회복에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몸과 감정의 항상성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탄성을 회복하는 일은 시간이 필요하다. 알아차리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여기에 치료가 더해진다. 따라서 탄성을 잃어온 시간보다는 짧겠지만, 환자가 기대하는 것보다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 과정은 잃었던 것을 회복하는 시간이고, 나를 좀 더 잘 알고,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익히는 기간이기도 하다. 의사의 치료라는 망치질과 환자의 변화라는 담금질이 더해질 때 몸과 감정의 탄성이라는 칼을 더욱 부드럽고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 스스로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근육을 천천히 그리고 가볍고 섬세하고 만져 보길 권한다. 아이들의 몸과 봄날의 버들강아지처럼 부드럽고 탄력이 넘치는지, 아니면 짐승의 털가죽이나 굳은 기름 같은지를 확인해 보자. 만약 뻣뻣하게 굳어 있다면 몸과 감정과 삶의 탄성을 회복할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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