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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Aug 24. 2024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옥수수

텃밭 속에 숨은 약초 


안톤 슈나크는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삶의 순간순간에 마주치는 슬픔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그러한 감상적인 것들보다는 사라져 가는 소중한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는 참으로 메마른 세상에서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그것은 사람이 살아야할 진정한 문명, 즉 자연에서 그만큼 멀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옛사람들의 기록을 책으로 경험할 때 그 안의 삶은 참으로 생동감 있고 인간미가 넘치는 것이어서, 요즘 사람들의 잇속 빠른 삶과 비교한다면 때로는 거짓말 같다는 생각까지 들곤 합니다. 이러한 감동적인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흔히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북미원주민들의 삶입니다.


그 옛날 빙하기 때 몽골리언이 아메리카로 건너갔다는 유전학적 보고 탓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삶은 유난히 친숙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오는데, 특히 자연과 교감을 나누고 그 속에서 삶을 누리는 장면에서는 그리움이 더해집니다. 그런 기록을 읽다보면 우리가 서부영화에서 본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왜곡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보는 부분은 농사법에 대한 것이었는데, 감자처럼 땅속에 열리는 것은 보름달이 뜬 밤에 심고, 옥수수처럼 땅위로 열매를 맺는 것은 달이 없는 밤에 심어야 한다는 내용이 특히나 흥미로웠습니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인지라, 그 기록을 읽은 해 봄 달 없는 밤에 손전등을 켜고 두 고랑에 옥수수 씨앗을 심었습니다. 저는 무척 진지했지만 그런 제 모습에 부모님들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신 것은 피할 수 없었지만요.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김용희, 샨티, 2004)에서 옥수수와 줄기사이의 각도가 45도 이상 벌어지면 딸 때라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에게 물었더니 강원도 옥수수가 그렇게 벌어지지, 이쪽 지방의 재래종 옥수수는 벌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쪽에서 옥수수를 언제 따야 하는지 아는 방법은 옥수수수염이 말라 없어지게 될 때를 기준으로 하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가만히 껍질을 벗겨보는 것입니다.


여름철 간식으로 감자와 쌍벽을 이루고, 구황식물 역할도 했던 옥수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옥수수(옥촉서) 


벼과 식물. 성질은 평하거나 약간 차고, 맛은 달고 독이 없다. 위를 튼튼하게 하고 중초(횡격막 아래로부터 배꼽 이상의 부위로 비(脾)와 위(胃)의 장부(臟腑)를 포함한다)의 기능을 화평하게 하며, 탁한 기운을 내리고 소변을 잘 나가게 한다. 폐를 튼튼하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비장이 너무 약한 사람이 많이 먹으면 설사하기 쉽다.


옥수수의 성분은 전분이 절반을 넘지만, 비타민 B군과 E가 풍부하고 몸에 좋은 지방산도 들어있어 우리 몸에 좋은 먹을거리입니다. 민간에서는 몸에 부기가 있을 때 옥수수수염을 달여서 먹는데, 옥수수 자체에도 이처럼 몸의 정체된 수분을 소변으로 내보내는 작용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질이 약간 차갑기 때문에 평소 위장기능이 약한 사람이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할 수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옥수수를 찔 때는 껍질을 다 벗기지 말고 속껍질 한 겹 정도는 남겨서 같이 찌면 더 맛이 좋은 것 같습니다. 또한 여름철에 일 년간 먹을 옥수수를 구해서 한 번 찐 후에 냉동실에 넣어 둡니다. 그리고 먹고 싶을 때 만두 찌듯이 증기로만 쪄서 먹으면 여름을 떠올리며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이른 봄 옥수수를 심고 그것을 따먹는 동안 밭 한쪽에서는 들깨 모가 자라고 있습니다. 옥수수를 따먹고 난 옥수숫대를 그 자리에 베어 넘기고 한쪽에서 자란 들깨모를 옮겨 심습니다. 이렇게 하면 밭을 놀리지 않고 여러 작물을 같이 키울 수 있어 좋습니다.


어렸을 때 여름날 소나기라도 내리는 날이면 작은 토방 마루에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면서 식구들끼리 하지감자와 옥수수를 쪄먹었습니다. 그렇게 먹고는 마루에서 낮잠이라도 한숨 자면 세상에 그보다 좋은 일은 없었지요. 가끔 토방으로 떨어져 머리에 혹이 나는 것만 빼고는요.


위네바고족 인디언은 6월을 옥수수수염이 나는 달, 7월은 옥수수 튀기는 달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티피 안에서 옥수수를 튀겨 먹었나 본데, 저의 여름은 밭에서 따온 옥수수 몇 개를 쪄서 배부르게 먹는 계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7월은 옥수수가 제 몸을 살찌우는 달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생활한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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