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밭 속에 숨은 약초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다리 하나 건너 돼지를 많이 키우던 망표 마을에는 복숭아밭이 있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창윤이와 저는 복숭아가 간난아기 주먹만 해졌을 때쯤 그 복숭아밭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주인이 없어서 따간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아주 재빠른 손놀림으로 몇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고는,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있는 힘껏 달려 다리 밑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거친 숨을 고르고 냇물에 애기복숭아를 씻어 먹었습니다.
올해 꽤 많이 열린 복숭아를 뒤늦게 솎으면서, 그런 추억이 저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가족들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이전에는 그런 작은 복숭아를 사카린을 탄 물에 담갔다가 먹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 이야기이지만, 사람 사는 재미는 그 때가 오히려 더 좋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물질이 풍요로운 요즘이지만, 서리는 이제 더 이상 허락되지 않습니다. 더 잘살게 되었는데, 왜 마음의 여유는 더 없어졌는지… 더 소중한 것들을 팔아 물질의 풍요만을 얻게 된 것은 아닐까요.
올해 많이 열린 게 신통해서 솎아주는 시기를 놓쳤더니, 수는 많지만 크기는 작습니다. 뒷밭에 나갈 때마다 몇 개씩 따다가 씻어서 먹고 있습니다. 크기는 작지만, 뭐랄까… 사 먹을 때는 느낄 수 없는 풍미가 느껴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전부터 미인을 복숭아꽃에 비유하곤 했는데, 예뻐진다고 해서 궁녀들이 밤에 불을 끄고 벌레 먹은 복숭아를 먹었다는 복숭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숭아(도실)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새콤하며 약간 독이 있다. 얼굴빛을 좋게 하는데 많이 먹으면 열이 난다.
복숭아씨(도인)
성질은 평하며 맛이 달고 쓰며 독이 없다. 어혈과 월경이 막힌 것을 치료하며 가슴앓이를 멎게 하고 몸 속 벌레를 죽인다.
어느 곳에나 있으며 음력 7월에 따서 씨를 깨뜨려 받은 알맹이를 그늘에 말려 쓴다.
복숭아꽃(도화)
성질은 평하고 맛이 쓰며 독이 없다. 대소변을 잘나게 하고 몸 속 벌레를 죽이며 악귀를 죽이고 얼굴빛을 좋게 한다. 음력 3월 3일에 꽃을 모아 그늘에 말린다.
옛부터 여성의 병은 월경을 조절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특히 복숭아씨는 골반내 혈액순환 장애로 생긴 어혈을 풀어주는 효능이 뛰어나 이러한 처방에 많이 응용됩니다. 월경이 순조로우면 건강의 많은 부분이 좋아지고, 따라서 피부도 좋아지고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니게 됩니다. 복숭아를 먹으면 미인이 된다는 말은 일리가 있는 것이지요.
어른들 말씀으로 복숭아나무는 뜰 안에 심지 않는다 했는데, 아마도 복숭아꽃의 주술적인 의미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복숭아 잔털 알레르기를 예방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름철 과일이 대부분 찬 성질을 지니는데 복숭아는 성질이 따뜻합니다. 적당히 먹으면 맛도 즐기고 피부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