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찬 Sep 04. 2024

달콤한 가을 맛, 홍시

텃밭 속에 숨은 약초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우리 집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영신이 아저씨가 사는 국촌리에서 한동안 들어가 있는 산의 일부 경사면이 우리 것이었는데, 거기에 감나무를 100여 그루 넘게 심었습니다. 집과 좀 떨어져 있어서 자주는 아니었지만, 철따라 일하러 갈 때면 밥과 물 그리고 쌈장만 가지고 가서는 취나물이며 여러 가지 나물을 뜯어다가 차게 식은 밥을 싸서 먹으면 정말 달고 맛있었지요.


감이 많이 열린 해는 감장사에게 팔기도 했지만, 대개는 그렇게 많은 감이 열리지는 않았습니다. 가을이 되면 식구들끼리 감을 따러 갔는데, 홍시가 달기로는 수수감을 따라갈 감이 없었습니다. 다만 저장성이 떨어져서 오래 두고 먹을 수는 없지만, 수수감 몇 접을 잘 따서는 옥상과 옆집 담벼락 사이에 기둥을 걸고는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들고, 감 껍질은 말려 두었다가 겨울 내내 간식으로 먹었습니다. 찬바람이 불고 하얗게 분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조금 말라서 꼬독꼬독해진 감을 부모님 몰래 따먹으면 얼마나 달고 맛있었는지….


허청에 놔두고 겨울이 되어 홍시로 먹는 감은 대봉시였습니다. 말 그대로 크기가 참 큰 감이었는데, 겨울에 하나씩 꺼내 먹으면 무척 달고 시원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씨앗을 싸고 있는 부분인데 다른 감과는 달리 그 부분이 두껍고 씹히는 맛이 사각해서 참 좋아했습니다. 


이제는 곶감을 만들지도, 감 껍질을 말리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뒷밭에 남은 감나무 한그루에서 홍시를 따먹거나, 겨울에 홍시를 만들어 먹으면서 그때를 추억하곤 합니다.


뒷밭에 있는 감나무는 팔봉시입니다. 대봉시만큼 크지는 않지만, 제법 큰 감이 열리고 저장성도 좋은 고급감입니다. 작년에는 굵은 열매가 많이 열렸는데, 해갈이를 하는지 올해는 많이 맺었다가, 거의 빠져버리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잎이 하나둘씩 지고 감은 하나둘 빨갛게 익어 가고 있습니다. 잘 익은 홍시를 구분하는 제 나름의 방법은, 감을 가만히 봐서 투명한 기색이 있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아침에 따먹는 홍시가 참 시원하고 달지만, 빈속에 감을 많이 먹으면 저희 동네 말로 속지랄이 나니 주의해야 합니다.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곶감이야기, 겨울에 홍시를 구해다가 부모님 병을 고친 이야기에서처럼 오랜 시간 동안 맛있는 과일로 우리에게 사랑받아온 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홍시(연감) 

성질은 차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심폐를 촉촉하게 적셔주고 갈증을 멈추고 폐와 심장의 열을 치료한다. 또한 음식 맛을 나게 하고 술독과 열독을 풀어주며 위의 열을 내리고 입이 마르는 것을 낫게 하며 토혈을 멎게 한다. 남방에서 나며 말랑말랑하게 익은 것이 홍시이다. 술을 마신 뒤에 먹지 말아야 한다. 가슴이 아프고 취하기 쉽다. 게와 같이 먹으면 배가 아프며 토하고 설사한다.


감에는 7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무가 오래 살고, 둘째는 그늘을 많이 드리우고, 셋째는 새가 둥지를 틀지 않고, 넷째는 벌레가 없고, 다섯째는 단풍이 들어서 보기 좋고, 여섯째는 열매가 아름답고, 일곱째는 떨어진 잎도 곱고 큽니다. 감은 처음에는 퍼러면서 많이 떫지만 빨갛게 되면서 떫은맛이 저절로 없어집니다.


감은 붉은빛 때문에 우심홍주牛心紅珠 라고도 합니다. 볕에 말린 것은 백시, 불에 말린 것은 오시라고 하며 백시의 겉에 두텁게 내돋은 것은 서리처럼 희다고 해서 시상柿霜이라고 하지요.

감은 성질이 차갑기 때문에 열을 내려주고 갈증을 멎게 합니다. 또한 단맛으로 음식 맛을 나게 하지만, 지나치게 먹으면 탈이 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감의 차가운 성질을 다스리기 위해 불에 말리거나 볕에 말려서 쓰는데, 매실을 말려 오매나 백매로 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시는 성질이 따뜻하고 독을 풀거나 살이 다친 것을 빨리 낫게 하고, 우리가 흔히 곶감이라고 하는 백시는 위장을 보하고 체한 것을 내려줍니다.


감나무의 좋은 점을 7가지나 말하지만, 최근에는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좋아서 감잎도 차로 만들고, 감꼭지는 달여 먹으면 딸꾹질을 멎게 합니다. 또한 전우익 선생님의 글을 보면 감나무의 나뭇결 또한 멋이 있다고 하니 감나무의 좋은 점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홍시의 달콤함이 좋습니다. 여름날의 뜨거움을 속으로 품어 떫은맛을 변화시킨 이 달콤함이 지금 제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일상의건강을연구하는생활한의학연구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