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 CBO, 장인성『마케터의 일』을 읽었다.
『마케터의 일』은 배달의민족 장인성 CBO의 책이다. 그는 우아한형제 구성원이 된 이래로 오늘날 배민의 정체성을 만들어 온 장본인이다.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 배민 신춘문예, 배민 문방구 등 배달의민족에서 추구하던 B급 감성의 마케팅을 통해 기업의 브랜딩은 물론 흥미로운 외식 문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말하자면 '배민다움'의 중심에 있는 분이라 할 수 있다.
‘마케터'를 내세운 제목만 보면 (물론 마케터들에게는 안성맞춤 그 자체인 책!) 마케팅에 일가견 있는 사람들만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과거의 내가 그랬으니까.
이 책은 마케팅뿐만 아니라 배달의민족 정체성과 조직 문화가 지금껏 어떻게 자리 잡아왔는지 궁금한 사람, 브랜딩과 기획에 관심이 많은 사람, 세상에 재미있는 일들을 만들고 싶은 사람, 나아가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까지 두루두루 쉽지만 알차게 읽을 수 있을 책이다.
1.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A4 용지 한 장으로도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구구절절한 긴 문장과 형용하는 말들이 아닌 나의 언어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명확한 그림을 압축적으로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그걸 담은 게 바로 좋은 제안서이다.
2.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인스타그램을 하고 유튜브를 봐도 누군가는 단순 소비만을 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사용자들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본다. on-off 모드의 경계가 확실한 삶을 사는 것도 좋지만 욕심을 내고 싶은 기획자라면 그 경계를 허물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일터가 아닌 일상에서 보다 넓고 다양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3. 기획자는 일하는 사람인 동시에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내가 맡는 브랜드를 나와 같은 마음의 크기로 좋아할 수는 없다. 따라서 마케터는 누구보다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가장 멀리에서도 제품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 이 말은 곧 소비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상상하고 공감하여 기획을 해야 한다는 뜻. 광고만 해도 자신의 기호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시대에, 그들에게 나의 브랜드 또한 임팩트가 없는 이상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임팩트 있는 브랜드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을 고민해야 한다. = 설득의 과정
그동안 나는 편집자와 마케터가 서로 명백히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교정 교열 이전에 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기획이 기본이 되어야 하고 그 기본은 전체 과정의 8할을 차지할 정도로 큰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획 '편집자'에 줄곧 초점을 두며 기획을 왜, 어떻게 잘 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감을 잡지 못하니 당연히 흥미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이 일에 진심이 아닌가, 세상에 관심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기획에 대한 재능이 1도 없는 것인가? 하고 좋지 않은 메커니즘으로 이어졌다.
『마케터의 일』은 그랬던 나를 정신 차리게 한 책이다. 내가 찾아 나서서 보려고, 들으려고, 경험하려 하지 않으면 뭐든 그냥 얻어지는 건 없다고. 그게 바로 기획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는 전한다. 이런 점에서 마케터와 편집자는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한다는 사실. 그러니 나는 부지런하게 브랜딩과 마케팅에도 여러 발을 들여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한 장 한 장 메모하면서 읽느라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마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듯한 기분이 들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