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걸이를 찾아주는 마음

by 말로

1973년,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흥미로운 실험 하나가 진행되었다.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주제로 설교를 하러 가는 신학생들의 길목에, 고통스러워하는 연기자를 배치해 둔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들 중 60%가 쓰러진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들이 비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실험의 변수는 단 하나, '시간'이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늦을 것"이라는 압박감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돕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갈 길이 바빠 돕지 '못하는' 척을 할 때가 더 많다.


며칠 전 퇴근길, 서울역의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나는 그 실험 속의 프린스턴 신학생이 되었다.


4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가파른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귀에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하루의 피곤과 주변의 소음을 지우고 자우림의 노래로 채우고 있던 찰나였다.


등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온 탓에 내용은 웅웅거렸지만, 바짝 붙어 무언가를 묻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귀찮았다. 귀에 꽂힌 이어폰이 나의 완벽한 알리바이가 되어줄 거라 믿었다. 노이즈 캔슬링은 세상의 소음뿐만 아니라, 타인을 차단하는 핑계가 되어주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나는 몇 걸음 걷다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내린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서 있었다. 할머니는 커다란 기둥 벽에 붙은 노선도와 좌우를 번갈아 보며 서성이고 계셨다. 복잡한 지하철 노선 속에서 갈 길을 잃어버리신 게 분명했다. 내가 외면했던 그 질문을, 할머니는 이제 말이 없는 기둥 벽에다 하고 계셨다.


찰나의 갈등이 일었다. 다시 가서 여쭤볼까. 하지만 그때, 마침 전철이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울렸다.


비겁한 핑계는 늘 타이밍이 좋다.


찝찝함은 신발 속에 모래처럼 남았지만, 나는 짐짓 바쁜 척 걸음을 재촉했다. 나 역시 실험 속의 그들처럼, '바쁨'을 면죄부 삼아 전동차 안, 그 빽빽한 인파 속으로 서둘러 몸을 숨겨버렸다.


아파트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층수 버튼을 누르려다 벽면에 붙은 샛노란 메모지 한 장을 발견했다.


[엘리베이터 바닥에서 귀걸이 한 짝을 주웠습니다. 주인 되시는 분은 0000호로 찾아오세요.]


그 노란 종이를 보는 순간, 서울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외면했던 내 모습과 이 메모를 쓴 0000호 이웃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졌다.


누군가는 바쁘다는 핑계로 도움의 눈길조차 피하고 도망쳤는데,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을 떼어 타인의 잃어버린 물건을 챙겼다. 0000호 이웃은 귀걸이를 주워 들고 집으로 들어가, 종이를 찾고, 펜을 꺼내 글씨를 쓰고, 다시 나와 테이프로 붙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귀걸이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막연한 기다림까지 기꺼이 떠안은 것이다.


그 다정함의 무게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타인의 사소한 상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마음 앞에서, 나의 피로감은 얼마나 초라한가.


한참을 그 메모지 위에 글자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 가방을 뒤적여 볼펜을 꺼냈다. 그리고 노란 메모지의 귀퉁이, 아직 여백이 남은 곳에 작게 한 줄을 적어 넣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것은 반성문이자, 작은 동참이었다. 귀걸이를 찾아주는 이웃의 그 마음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비록 서울역에서는 비겁하게 도망쳤지만, 이곳에서라도 다정함의 편에 서고 싶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집으로 들어가면서 문득, 귀걸이 주인이 0000호 문을 두드리고, 메모지 주인이 귀걸이를 건네주며 둘이 마주 웃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작은 웃음 속에 내가 쓴 "메리 크리스마스"도 함께 있기를 바랐다. 오늘 하루가 조금은 덜 부끄러워지는 것 같았다.


https://youtu.be/x4xZG64OxCo?si=uA-eiL2LeQAIHK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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