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의 직장 생활, 그동안 일곱 번의 회사를 거쳤다. 일곱 번이라니, 횟수로만 보면 나도 꽤 바람둥이 축에 든다.
통신회사도 만났고, 홈쇼핑과도 만났다 헤어졌다. 그중 언론사와는 가장 오랫동안 만났고, 대기업은 물론 스타트업과도 인연을 맺었다. 첫 직장에 입사해 강산이 두 번 반이나 변하도록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내 친구가 지고지순한 순애보라면, 나는 그에 비하면 다채로운 연애를 반복해 온 편에 가깝다.
수많은 연애가 그러하듯, 회사와의 이별 또한 제각각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별은 다시는 뒤돌아보고 싶지 않을 만큼 진절머리가 났다. 월급이 연체되거나 퇴직금을 받지 못해 마음고생을 했던 기억은 마치 나쁜 연인을 만나 바닥까지 경험하고 돌아선 기분이었다. 반면 어떤 이별은 서로가 맞지 않음을 인정하고 미련 없이 등을 돌린 경우였다. 그런 이별은 차라리 깔끔했다.
돌이켜보면 20대와 30대의 나는 당돌한 연인이었다. 더 나은 조건, 더 좋은 회사를 찾아 내가 먼저 이별을 고했다. 미련 없이 옛 애인을 저버리고 떠나는 쪽은 늘 나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관계의 역학은 조금씩 변했다. 이제는 회사가 내게 먼저 이별을 고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떠밀려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얼마 전, 대표와 마주 앉아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사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회사가 다루는 상품의 특성상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타당한 분석이었다. 자연스레 온라인 쪽의 고정비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 역시 그 말에 깊이 공감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회사를 위해 옳은 길이라 말했다.
"그럼, 개발 인력을 좀 줄여야겠군요."
"네, 최소한의 유지보수만 남기고 정리하는 게 맞습니다."
그것은 곧 누군가는 떠나야 한다는 뜻이었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계산이 오갔지만, 결국은 내가 떠나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내가 남고 후배를 내보내는 선택지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설픈 영웅 심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는 나보다 어리긴 하지만, 꽤 늦은 나이에 개발자의 길로 들어선 친구다. 그에게 첫 직장의 문을 열어준 것도, 이 회사에서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민 것도 나였다. 내 안에서 묘한 책임감 같은 것이 일었다.
게다가 AI가 급부상하며 채용 시장이 예전 같지 않은 때다. 맨몸으로 당장 밖으로 내몰리는 것보다는, 안에서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준비할 시간'이 그에게는 훨씬 더 절실했다.
회사와는 이별하더라도, 그 친구에게는 선택할 기회를 남겨주고 싶었다. 생존의 우선순위는 나보다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 여러모로 이치에 맞았다. 내가 짐을 지고 나가는 것이 이 관계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가장 깔끔한 방법이라 여겼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별을 대처하는 자세가 조금 더 유연해진다는 뜻일까. 예전 같았으면 억울하거나 불안했을 상황임에도 마음이 묘하게 차분했다. 회사와 이별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손을 들고 물러나는 것, 이렇게 이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실을 나서는 내 등 뒤로 대표가 한마디를 던졌다.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굳이 약속하지 않았다.
미래는 얼굴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인연이라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다시 만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굳이 애써 물길을 돌릴 필요는 없을 테니까. 억지로 인연을 만들지도, 다가오는 이별을 피하지도 않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회사와 안녕을 고하는 방식이다.
잘 헤어지는 법을 배우는 데,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썼다.
https://youtu.be/ik_BQYbbZ5U?si=cOVonbgg8O_Xmt8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