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新春)을 기다리는 마음

by 말로

며칠을 벼르다 결국 우체국으로 향했다. 한쪽 구석, 각종 양식과 안내문이 끼워진 유리 탁자 위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점퍼 품에 넣어 가져온 비닐 파일철을 꺼내고, 그 안에서 A4 원고를 조심스레 빼냈다. 봉투에 넣기 전, 마치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배우처럼 짧게 숨을 고르고는 본문에 이름을 확실히 지웠는지, 표지의 연락처가 맞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끈적거리는 풀 대신 테이프로 단정하게 봉하자 비로소 한 장면이 마무리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챙겨 온 빨간색 네임펜을 꺼내 ‘보내는 사람’ 아래 공간을 채웠다. 혹시나 맞은편에서 통화 중인 아주머니가 들여다볼까 싶어 왼손으로 글씨를 가리며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갔다.


“신춘문예 응모부문: 단편소설 1편.”


그 한 줄을 적고 나니 봉투가 갑자기 묵직해졌다. ‘신춘문예’라는 네 글자는 언제나 묘한 무게를 품고 있다. 1920년 동아일보의 공모에서 시작된 뒤 ‘새로운 봄(新春)’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문학청년들의 계절로 자리 잡았던 오래된 전통. 김동인과 주요한이 남긴 발자국은 전설이 되었고, 그 뒤로도 수많은 신인들이 그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나는 그 권위와 ‘새로운 봄’이라는 말의 싱그러움을 떠올릴 때마다 괜스레 움츠러들곤 한다. 그래서 젊은 신예들이 또 등장했다는 소식은 애써 외면하고, 예순이 넘어 등단했다는 늦깎이 작가의 소감만 골라 마음속 응원단장 자리에 앉혀 두었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 덜 흔들렸으니까.


물론 안다. 이제는 신춘문예를 예전만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걸. 누군가는 정해진 형식 안에서 뽑아내는 낡은 관행이라고 말하고, 문학이 더 이상 신문 지면을 통해 권위를 얻던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게는 이 전통의 의식이 필요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글쓰기의 길에서 신춘문예는 나를 달리게 만드는 페이스메이커였고,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마라톤의 결승점 같은 존재였다. 이 마감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도 마침표 하나 찍지 못한 채 어딘가를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까지 온 이상 멈출 수는 없었다. 지난 몇 달 동안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주말의 나른함을 밀쳐내며 한 문장씩 눌러 담은 A4 11장의 무게가 손끝을 통해 또렷하게 전해졌다.


창구 직원이 봉투 무게를 달고 등기 스티커를 붙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이 봉투는 나와 분리되어, 수많은 꿈들과 함께 심사위원의 책상 위로 떠나갈 것이다. ‘신춘’이라는 단어가 주는 싱그러움은 내게 없을지 몰라도, 늦가을 서리가 내려앉은 들판에도 봄을 기다리는 씨앗은 여전히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다. 오늘 나는, 나만의 봄을 향해 봉투 하나를 밀어 넣었다.


https://youtu.be/ELJf83TelA0?si=iryJbHg_05OXIf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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