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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보이 Nov 11. 2021

[책] 젠가

붕괴를 예감하지만 그것이 언제, 누군가에 의해,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다들 '젠가'를 한 번쯤은 해보셨나요?

나무 조각으로 촘촘히 쌓아놓은 탑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무너뜨리지 않게끔 한 조각씩 빼내는 게임이죠. 

하지만, 쌓아놓은 탑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게임이 끝나니까요. 

즉, 누가 무너뜨리느냐의 문제이지 젠가는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젠가의 결론은 '붕괴'입니다.


소설 <젠가>는 '고진'이라는 중소도시의 '내일 전선'이라는 회사를 배경으로 합니다. 회사는 국내 전선업계에서 나름대로 탄탄대로를 걸어왔습니다. 국내 원전의 대규모 납품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내부의 모습은 한국 기업의 어두운 단면들이 모두 끌어 모은 듯합니다. 학연과 지연으로 똘똘 뭉쳐 그들의 이너서클에 들어가지 못한 구성원의 미래는 단절되어 있습니다. 철저한 골품제로 조직이 운영되고, 공공연한 접대 문화와 위계 속에서 벌어지는 성추행과 자금 횡령 비리, 언론 유착 등은 우리 사회의 곪아 있는 고름들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소설 속 인물의 욕망은 피복이 벗겨진 전선처럼 위험해 보입니다.

표지 디자인이 다소 아쉽습니다.

정진영 작가는 기자와 소설 쓰기를 병행하다가 얼마 전에 전업 작가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JTBC 드라마 '허쉬'의 원작인 <침묵 주의보>도 그의 작품입니다.

기자 출신답게 자료와 현장 조사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장강명 작가도 그렇고 그쪽(?) 출신의 글쓰기 유전자는 속일 수 없나 봅니다.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하나의 불미로운 사건은 서로의 이해관계 속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범람하고 뒤엉키고 맙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속물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할 뿐입니다. 그 누구도 타인을 배려하거나 대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타인은 자신의 길 위에서 치워야 장애물이거나 딛고 넘어야 할 디딤돌일 뿐입니다. 모두가 원초적일 뿐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을]

기업물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소설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음모 그리고 뒤통수가 난무하는 이야기에 평소 재미를 느끼셨다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한번 더 생각을]

소설의 문학적 가치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두시는 분들. 일차원적인 인물보다는 복잡한 내면을 소유한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시는 분들은... 음 글세요.. 취향을 조금 가볍게 하시면...


소설은 술술 읽히지만, 읽는 마음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갇힌 듯 갑갑합니다. 아마 소설 속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소설의 근간은  2013년 원전비리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의 부품 납품 과정 중 품질기준에 미달하는 부품들이 시험 성적서가 위조되어 수년 이상 한국 수력원자력에 납품되어왔던 것이 2013년에 적발된 사건입니다. 


우리가 소설 <젠가>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할 날이 오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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