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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Dec 14. 2022

그림책 협업에 대하여

가족관계거나 계약관계거나

Y는 처음부터 협업을 하겠다고 했다. 바로 직업이 애니메이터인 남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겠다는 것이다. 글의 주제와 구성은 Y의 마음으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시각화하여 감성적인 그림은 남편인 K의 손으로부터 나왔다. 이 둘의 협업 과정은 어땠을까?


그림 작업 기간 중 한 번은 Y의 집에 가서 스터디를 했다. 각자 자기 그림을 그리면서 서로 의견을 구하기도 하고 기능을 설명해주기도 하는 시간이다. Y의 집은 현관에 들어선 순간부터 집 안 곳곳에 예술 작품이 걸려 있다. 대부분 남편인 K가 직접 그린 그림인데, 정말 갤러리에 온 듯한 분위기에 저절로 자극이 된다. 


K가 후에 그림책 내 헌사로 쓴 문구처럼, 책을 좋아하는 Y와 그림을 좋아하는 K가 만나 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은 꽤 이상적이었다. Y가 만삭이었을 때의 사진,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사진, 웨딩반지를 끼고 있는 Y의 손 사진들로 선을 따기도 했단다. 그 사진들을 들추면서 둘은 어떤 얘기를 했을까. 어떤 추억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을까. 


글로 들어가는 단어 하나 가지고 왈가왈부하며 토론을 했다는 부부. 그림 진행사항을 물어보면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서 같이 얘기하면서 좀 바꿔보고 있다고 대답하는 부부. 싸우지 않아 다행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던져 보지만, 사실은 한 권의 그림책에 그들의 애정이 진득하게 담겨 있어서 더 감동적이다.


참, 인세는 어떻게 하기로 했냐고 물어봤다. 글 9% : 그림 9% : 아이 2%. 교보퍼플 POD 판매시 인쇄 20%를 기준이다. 그들의 아이가 자신의 사진도 들어갔으니 기여도를 생각해달라 해서 협의했단다. 뭐, 가족 간에 협의된 사항이니 그냥 그런 걸로.



한편 협업은 정말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J는 유일하게 손그림을 그리겠다고 한 회원이다. 처음엔 "나도 그림 그리면 꽤 잘 그려."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림 작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 후, 아무 장면이라도 한 장씩 그림 그려서 인증하는 미션이 있었다. 그때도 J는 말이 없었다. 슬슬 걱정이 됐다. 다른 회원이 J를 만났을 때 나눈 이야기에 따르면, '이제 와서 포기는 못 해.'라고 했다 하니 그 말만 믿고 기다릴 뿐이었다.


어느 날 밝은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다른 학교의 학부모이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지인이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여러 곳에 배우러 다니며 취미로 그린다는 K였다. 우리 회원 중 유일하게 손그림이어서 J가 한 장씩 인증할 때마다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파일로 받은 그림이지만 그래도 손그림의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자녀가 셋이라는데 밤을 새우면서까지 시간을 쪼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K가 나 또한 고마웠다.


그런데 그림 작업 마감날 폭탄이 터졌다. 

11월 한 달간 그림을 그리고 11월 30일이 마감일이었는데, 그마저도 필요에 의해 12월 4일까지 마감일을 미룬 상태였다. 12월 5일 저녁, J는 "나 자유로워짐", "스케치북이라 했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말을 내게 개별 톡으로 던지고, 그때부터 새로운 그림 작업을 들어갔다. 그림작가와 갈라섰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저작권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기로 한 K는 '취미 삼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책으로 만드는 경험을 하고 싶어서' 소소한 동기로 시작했다. 하다 보니 손그림은 너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든 작업이었다. 중간에 J에게 투정도 많이 부렸나 보더라. (그때마다 어르고 달래고 힘내라며 응원해줬다고 한다.) K는 그림을 그리다 본인이 동화작가를 하는데 꽤 잘 맞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향후 그쪽으로 업을 삼아야겠다는 결심도 한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의 진로를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것에 대해 다들 이 프로젝트를 칭찬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작품에 욕심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초기 비용이 들지 않고 손쉽게 유통 판매되는 책을 만들 수 있는 교보 퍼플 POD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먼저 작가 등록이 필요한데, 책 한 권에 한 명의 작가만 등록 가능하다. 당연히 우리 회원인 J가 작가 등록을 하였는데, K는 마치 그것이 자기 그림들을 뺏기는 것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책에 당연히 '글 J, 그림 K'라고 기재를 하는데, 퍼플 사이트에 작가 등록이 마치 저작권 등록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창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유명 그림책 작가 중 초기작 출판사와 저작권 소송을 했던 기사들을 예로 들면서 전전긍긍했단다. 


내가 매주 다니는 그림책방에서 만난 현업 그림책 작가님께 문의를 했다. 여차저차 상황을 설명하였는데 현업 작가님의 대답은 아주 심플했다.

 '그림을 본인이 그렸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 저작권이 있는 것이다.'

'그림책에 그림 OOO 이름 들어가면 그 자체로 증빙이 되고 포트폴리오로 쓸 수 있으니 저작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마추어가, 그것도 기획출판도 아니고 POD 서비스를 이용한 자가출판을 하면서, 그리고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자기 것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내가 봐도 그렇다.


J는 K의 마지막 말 '제가 보내드렸던 이미지 파일은 다 삭제 부탁드려요.^^'에 분개했다. 처음 협업을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인세와 관련해 계약서라도 써 둬야 하는 거 아니냐 했을 때, '에이,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했던 J가 이제는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라고 얘기했다. 물론 인세 문제가 아니라 저작권 때문인지는 나도 몰랐지만. 어쨌든 한 달 동안 K의 투정을 다 받아줬던 J의 노력, K의 그림을 최대한 그대로 싣고 싶다며 굳이 본인이 서울 을지로에 있는 인쇄소에 가서 드럼 스캔을 17만 원이나 주고 온 J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심지어 내가 제일 분개한 건 그 17만 원을 돌려받지도 않았고, 스캔본을 삭제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J는 '사람 하나 잃었네.'라면서 그림 마감 다음 날 그림을 시작했다. 스케치북 어플을 활용하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전체 진행 일정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바로 사진 효과 어플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모든 사진은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을 사용했고, 라인이 흩어지는 느낌의 효과를 주어 그림화 하였다. 나름대로 기준이 높은 J에게 있어 만족스러울 리 없지만, 결국 이틀 만에 작업을 끝냈고, 인디자인 작업까지 해서 최종 플랫폼에 등록하는 일정을 모두 맞췄다. 그것이 놀랍다.


협업은 할 수 있다면 참 좋지만, 더 어렵기도 하다. 내 마음속, 머릿속에서 나온 글이 다른 사람 손에 의해 그림으로 표현된다는 것. 나는 내 손에서 나온 게 나의 생각에 너무 못 미치지만, 그래도 내가 한 것이니 어느 정도 인정하고 만족할 수 있다. 책이 안 팔려도 원래 내 소장용이었다며 자기 위안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협업할 때 내 글을 그림 작가가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하면? 그 의견 차이를 조정해 줄 편집자도 없다면? 저작권 문제? 인세 배분 문제? 명확하게 명시한 계약서도 없다면? 소소한 즐거운 취미로 시작했더라도 중간에 이해관계가 생기면 협업관계는 삐그덕거린다. 가볍게 시작했는데 참 무거워졌다. 



  






* Photo by Nick Fewing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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