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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Dec 11. 2022

창작자의 미루기 효과

미루다 미루다 끝내는?

마감일 직전까지 버티고 버틴다.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손사래 치면서 금방이라도 포기 선언을 할 것처럼 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포기한단 말은 하지 않는다. 필참 모임엔 진짜 필참 한다.


A 회원과 P 회원은 그림책 출간 기획서를 제출한 이후, 한 달이 다 되도록 정말 감감무소식이었다. 초안 글도 올리지 않았고, 그림책 버전으로 수정한 글도, 스토리보드도 공유하지 않았다. 11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그림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당최 어디까지 진행이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압박은 아닌 것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진행하고 계시죠?" 하고 물으면, "해야죠." 하길래 반 걱정, 반 믿음 상태로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A와 P는 11월 맞이하기 전, '나 이만큼 했소~' 하듯이 단체 대화방에 자료를 공유했다. 그림책에 들어갈 완성된 수준의 글과 어떤 그림을 어떤 크기로 넣을지에 대한 서술이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아, 포기하지 않았구나.'라는 안심이 첫 번째, '이만큼 고민하고 있었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림 작업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L 회원과 A 회원은 그림 마감인 11월 30일의 이틀 전까지만 해도 그림의 완성도가 50%도 되지 않았다. 그림 작업하는 데만 한 달의 시간이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림을 잘 못 그려서.', '며칠 날 잡고 그려야죠.' 등의 말로 거의 한 달을 보냈다. 나 또한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그림 어플을 처음 써 보는 초보였기 때문에 붙잡고 가르쳐줄 수 있는 처지도 안 됐다. 그래서 회원 중 잘하시는 분들과 일부러 모여서 하는 날을 정해 공지했지만, 왔으면 하는 분들은 오히려 참석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L과 A도 그림을 다 그렸다. 물론 당초 마감일에서 3일을 더 연장해 전체적인 마감일을 뒤로 늦추기도 했지만,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다 그렸다. 다른 회원들이 모두 놀라워했다. 그림 한 두장도 아니고 최소 15장이 넘는 그림들을 하루 이틀 만에 그릴 수 있는 거였냐고 의문이 담긴 감탄을 했다. 정말 하루 이틀이었을까?


글이든 그림이든 주어진 시간 동안 그들도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각했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스토리를 연결하고 그림을 떠올렸을 것이다. 다만 머릿속에서 손끝으로 나와 글이든 그림으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오리지널스>에서 애덤 그랜트는 '미루기 효과'를 소개했다.


'사고가 창의적이고 문제 해결에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
미루는 습관은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리지널스> p.173  


마감기한까지 할 일을 미루는 사람들의 특징은, 머릿속에서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무르익게 해서 마감 직전에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표현해 낸다는 것이다. 물론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들에게는 어이없는 말일 수 있지만, 나 같은 사람은 굉장히 의지하고 싶은 표현이다. 이번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는 내가 리더였기 때문에 마감기한에 앞서서 먼저 하고 공유했지만, 따라가는 회원이었다면 아마도 마감일의 자정에 임박해서 올렸거나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하면서 다음날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어쨌거나 끝까지 해낸 그들을 '게으른 창의적 인재'로 생각하기로 했다.

해낸 것이 어딘가.

충분히 훌륭하다.



* Photo by Estée Jansse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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