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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Jan 21. 2024

근무 전후로 먹는 집 파스타와 미국식 바비큐

10월 20일

벌써 금요일이구나. 시카고 시간대에 맞춰 한 주를 풀타임으로 일해 봤다. 영국이 중심인 유럽팀은 시카고 시간대로 아침이면 근무가 한창일 오후 서너 시쯤이라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근무 시간이 더 오래 겹쳤다. 


한국에선 오후 다섯 시쯤에야 유럽팀 동료들이 출근했고, 대부분의 날은 메신저로 특이사항을 전달하거나 화상으로 짧은 업무 회의를 하는 게 전부였다. 그게 좋기도, 가끔은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열두 시간을 날아오니 유럽과는 좀 가까워졌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땐 근무 시간을 조정해서 참석해야 했던 클라이언트 미팅도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성격이 급해 궁금하거나 다른 팀에게 답변을 받아야 하는 게 있으면 반나절이상 기다려야 했는데, 시카고에선 내가 일이 더 늦게 끝나니 그럴 일이 없어 마음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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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근무를 한지 일 년 반이 되었지만 디지털 노마드라기보단 집순이 직장인에 가까운 일상을 보냈다. 일하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없다는 건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고, 반대로 전혀 안 움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자라면 자유롭지만, 후자라면 고립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초반에는 출퇴근 없이 집에서 가장 편한 모습으로 일할 수 있는 게 마냥 좋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 일에만 몰입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아니, '었다'가 아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그 장점이 그대로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입사한 지 일 년 정도 지났을 때 깨달았다. 


출근해야 할 곳도, 옆에 앉은 사람도 없으니 늘어지려면 한없이 늘어지게 되는 거다. 떡진 머리에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한 마디도 안 하고 집에 있는 날들이 늘어나니 새삼스럽게 '고독하다'라고 느꼈다. 분명 난 회사원인데 어째서 백수 같은 모습인거지?


그렇다고 원격근무를 포기하기엔 몸과 마음의 자유로움이 너무 달콤하고, 무엇보다 적성에 딱 맞는다. 가능한 만큼은 이 워크라이프를 건강하게 지속하고 싶어 스스로 활기를 불어넣기로 했다. 길면 한 달, 짧으면 일주일 정도로 노트북을 둘러멘 채 여행을 떠나고,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독서 모임이나 원데이 클래스도 신청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솔직히 즐겁지만은 않았다. 여행이고 모임이고 컨디션 좋을 땐 열정과 낭만으로, 안 좋을 땐 사치로 느껴졌다. 한 푼이라도 모아야 하나 싶다가도 경험에 투자하잔 생각이 이를 덮어버리기도 하고... 그렇게 내면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러다 10월에 시카고에 오게 된 거다. 유학 가서 자리 잡은 친구도 있고, 일주일이지만 알차게 놀다간 다른 친구도 있어서인지 온전히 혼자 다닐 때보다 기분이 들떴다. 학업과 취업 준비를 병행하는 친구 때문에 오히려 평일엔 회사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지난 여행들에선 업무에 있어 새로운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냥 몸이 다른 곳에 있다뿐,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에서 한국 시간, 혹은 영국 시간에 맞춰 일을 하다 끝나면 관광을 즐겼다. 그래서 일과 여행은 공존했지만, 분리된 상태였다. 


이번엔 시간의 자유로움을 이용해 일과 여행을 조금 섞어보려 했다. 오전엔 일하고, 오후엔 여행하고, 저녁엔 잔업을 처리하는 루틴대로 살아봤다. 일하는 장소도 친구집과, 코워킹 스페이스와, 카페 등을 오갔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웬걸. 오히려 맑은 정신으로 직장인과 여행자 사이의 모드 전환이 쉬웠다. 


돈만 있다면 더 오래, 그 나라가 여행자에게 허락하는 시간만큼 머물러보고 싶다. 의지는 충만한데 돈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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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여행지에서도 직장인으로서 맞는 금요일은 아주 반갑다. 친구는 아침부터 학교에 갔고, 난 배고프니 아침을 '신경 써서' 먹기로 했다. 요거트나 과일이나 빵이 아닌, 불을 써서 요리(라고 하긴 민망하지만...)를 하겠다는 뜻이다. 


만만한 게 파스타다. 친구집에서 제일 가까운 마트는 '타깃(Target)'인데, 'Good&Gather'이란 PB 브랜드를 갖고 있다. 같은 품목의 다른 브랜드보다 1-2달러씩 저렴하기 때문에 시카고에 있는 동안 충성 고객이 됐다. 페투치니 면과 미트 토마토소스를 미리 사뒀는데, 둘이 합쳐 5달러밖에 안 한다. 


면은 9분 동안 삶고, 소스엔 양배추와 터키 햄을 잔뜩 썰어 넣고 뭉근히 졸였다. 두툼한 슬라이스 모짜렐라 치즈까지 올리니 그럴듯했다. 오... 맛도 제법 괜찮다. 



아침을 먹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를 했다. 집을 치우고 샤워까지 말끔히 하고 나니 정신도 맑아진 기분이었다. 그 텐션 유지하며 오전 근무까지 마쳤다. 


아침은 요리(?)해 먹었으니 점심은 대충 요거트랑 시리얼로 가볍게 배를 채웠다. 이날은 친구와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해서 따로 외출하지 않고 오후까지 쭉 일했다. 간만에 바쁜 날이라 정신 차리니 오후 다섯 시였다. 다행히 일 분도 야근하지 않고 로그아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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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먹기로 한 저녁 메뉴는 '미국식 바비큐'였다. 소스에 잔뜩 절여진 고기구이는 미국 여행에서 한 번쯤 먹어봐야지, 싶은 로망 중 하나였다. 그게 미국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한국식 바비큐는 담백하게 불판에 구워낸 삼겹살, 미국식 바비큐는 달달 짭짤한 소스를 듬뿍 찍은 부들부들한 덩어리 고기다. 


마침 동네에 바비큐 전문점, 'Hecky's Barbecue'라는 식당이 있길래 찾아갔다. 벽돌 건물에 오래된 티 팍팍 나는 노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통통한 폰트가 아주 마음에 드는 걸.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메뉴판이 눈에 들어온다. 오픈 40주년이라 아래엔 숫자 풍선도 달아놨다. 우리는 포장으로 'Chicago Combo'를 주문했다. 'link'라 부르는 돼지고기 소시지와 립이 같이 들어 있는 구성이다. 가격은 19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만 5천원 정도다. 



까만색 플라스틱 용기를 열어 보니 식빵 한 장이 살포시 덮여 있었다. 양념된 소시지와 립이 감자튀김 위에 잔뜩 쌓여 있다. 내가 상상한 그 비주얼 맞네, 맞아. 


소시지와 립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고, 감자튀김은 약간 눅눅한데도 맛있었다. 양념은 일반 바비큐 소스보다 케첩 맛이 강했고, 살짝 매콤했다. 마요네즈까지 찍어먹으니 더 풍성한 맛이었다. 역시 칼로리는 더할수록 맛있다!



맛있는 음식에 또 신이 난 우리는 건물 일층의 세븐일레븐에서 즉석 복권 두 장을 사 왔다. 세 개의 금액이 동일하면 당첨되는 복권인데... 2달러 당첨이다. 딱 본전 했네. 백만장자의 꿈, 오늘도 약간 미뤄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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