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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Jan 26. 2024

룰루레몬 요가 클래스와 마이클 조던 스테이크 하우스

10월 21일

시카고에서 맞는 네 번째 주말이다.

그리고 생일을 며칠 앞둔 주말이기도 하다.


친구는 일주일 전부터 생일 기념으로 뭘 하고 싶냐고 거듭 물었다. 생일이라, 글쎄... 하고 싶은 게 없어서가 아니라, 생일을 막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고민스럽다. 시카고 여행에서 경험하고 싶은 위시리스트는 한가득인데, '생일 기념'이라는 조건으로 선택하려니... 잘 모르겠네?


그냥 제일 하고 싶었던 거랑 제일 먹고 싶었던 거 고르면 어때. 생일은 당사자가 행복하면 그만이니까!


제일 하고 싶었던 건 '룰루레몬 체험형 매장에서 요가 수업 듣기'요, 제일 먹고 싶었던 건 '마이클 조던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거하게 식사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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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포츠는 잘 모르지만 생활 운동은 꽤 좋아한다. 생활 운동이라 하면, 조깅이나 사이클처럼 별다른 장비나 트레이닝 없이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몇 달 전부턴 여기에 요가를 추가했다.


여행 전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요가 수업을 들었는데, 그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 참 힐링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 <아무튼, 요가>를 읽고 해외에서 요가 수업을 듣는 로망이 생겼다. 저자는 뉴욕에서 우연히 요가원에 갔다가 나중엔 지도자 코스까지 밟는데, 그의 요가 사랑이 참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요가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보다가, 룰루레몬의 일부 체험형 매장은 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한다는 걸 알게 됐다. 스튜디오에서는 명상부터 다이내믹한 순환 운동까지 여러 클래스를 진행한다. 정기권도 있지만, 나와 같은 여행자들도 홈페이지에서 3회 수업에 30달러인 패키지를 구매할 수 있다.


내가 방문한 매장은 링컨 파크 근처에 있었다. 1층은 일반 매장이고, 2층은 카페와 스튜디오로 구성된 공간이다. 공간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그냥 계단으로 올라가면 된다.

 


2층의 오픈형 카페는 꽤 넓다. 직원 분에게 클래스를 들으러 왔다고 말하니 안쪽으로 안내했다. 스튜디오엔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요가 수업은 1번 방에서 진행한단다. 방은 넓지 않았지만 천장이 높고 매트 간격이 넓어 쾌적했다.


내가 들은 수업명은 'Undone: Vibes + Vinyasa'였는데, 한국에서 배운 빈야사 요가 동작들이 꽤 많이 등장해서 신기했다. 동작은 아는데 잘하질 못하니 또 앞줄에서 나름의 몸부림으로 땀을 한 바가지 쏟았다. 그래도 선생님은 나긋나긋하게 연신 뷰티풀, 뷰티풀이라 말해주었다.


처음엔 조금 창피했는데, 방에 거울도 없고 다들 자기 동작에만 몰입하는 분위기라 점점 아무렇지 않았다. 마음의 긴장이 완화되니 몸도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끝날 때쯤 되니 오히려 아쉬웠다.



수업도 수업인데 룰루레몬 요가 클래스가 좋았던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엄청 넓고 깔끔한 샤워 시설 때문이다. 수강생들은 클래스를 듣고 나서 여기서 씻으면 된다. 샤워 부스 안엔 샴푸, 린스, 바디워시, 폼클렌저 등이 있고, 밖엔 드라이어, 수건, 슬리퍼, 로션 등이 있다. 옷만 입고 오면 이 공간에서 모든 게 해결된다!



씻고 나오니 갈증이 났다. 카페 메뉴들이 특이하길래 친구랑 음료를 하나씩 주문했다. 친구는 오렌지, 망고, 파인애플이 들어간 'Dreamsicle'이라는 스무디를, 나는 아이스 오트 라떼를 마셨다. 별로 기대 안 했는데 둘 다 맛있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룰루레몬 제품들을 구경했다. 클래스를 듣고 나니 룰루레몬 요가복이 사고 싶어 졌는데, 이래서 체험형 마케팅이 중요한 건가.


시즌 상품인 요가복도 탐나고, 물병이나 집게핀 같은 액세서리도 괜찮은 것 같고, 요즘 룰루레몬에서 제일 미는 아이템인 것 같은 힙색도 구경했다. 힙색은 하루에 멘 사람 열 명은 보는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아래위로 요가복을 사고 싶지만, 가격표를 보곤 깔끔히 마음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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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했으면 맛있는 걸로 에너지를 채워야 한다. 미국에 왔으니 스테이크는 세 번 이상 먹어줘야 한다.


'마이클 조던 스테이크 하우스'는 이름 그대로 마이클 조던이 만든 요식업 브랜드다. 뉴욕에 처음 생겼고, 시카고에도 지점을 냈다. 무려 인터콘티넨탈 호텔 1층에 있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전용 입구도 있다.



1층은 상대적으로 캐주얼한 홀이고, 2층은 좀 더 럭셔리한 레스토랑이다. 우린 2층으로 예약했다가 시간을 변경하며 1층에서 식사하게 됐는데, 1층도 충분히 고급스러웠다.


15분 동안 메뉴를 정독하고 본식은 이렇게 주문했다.

- Signature Garlic Bread (시그니처 마늘빵)

- Caramelized Onion Soup (양파 수프)

- Prime Delmonico Steak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 Pan Roasted Lemon Asparagus (아스파라거스 구이)

이렇게가 거의 20만원이었다. 돈을 버는 건 힘든데 쓰는 건 왜 한순간일까. 보람 있게 쓰일 수 있게 하나하나 음미해야지.


구글 리뷰에 꼭 마늘빵은 시켜야 한단 얘기가 많았는데, 왜인지 너무나 알 것 같은 맛이었다. 치아바타에 마늘 소스를 발라 앞뒤로 바삭하게 구워내고, 블루치즈로 만든 소스를 그 위로 잔뜩 뿌려준다. 겉은 바삭하고 쫄깃한 치아바타에 마늘 버터향이 가득하고, 빵 사이론 치즈 소스가 잔뜩 스며들어 있다. 괜히 시그니처가 아니네.



스테이크는 450g(16온스) 정도의 크기로, 굽기는 미디엄으로 주문했다. 45일간 드라이에이징을 거쳐 식감이 부드럽다고. 위엔 쪽파를 뿌리고 옆엔 생강이 들어간 발사믹 소스를 곁들였다. 기름기가 많지 않은데도 쫄깃하면서 부드럽다.



고기가 있으니 야채도 무조건이지. 샐러드 대신 가니쉬 삼아 아스파라거스 구이를 주문했다. 레몬향과 후추향의 균형이 좋았고, 아스파라거스도 축 처지지 않게 적당히 구워졌다. 좀 간간했는데, 스테이크가 담백한 편이라 같이 먹기엔 딱 좋았다.


그리고 양파 수프. 예전에 프랑스 요리책을 본 적 있는데, 정통 양파 수프엔 그뤼에르 치즈를 써야 한단다. 이후 여기저기서 양파 수프를 사 먹어봤는데, 모짜렐라 치즈만 쓰는 식당이 많았다. 이곳의 양파 수프도 위의 치즈가 주욱 늘어나길래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안엔 그뤼에르 치즈가 잔뜩 들어 있었다! 게다가 양파랑 바게트 빵 조각도 가득이다.



음식과 수다로 한껏 기분 좋아진 우린 후식으로 피날레를 장식하기로 했다. 마이클 조던 스테이크 하우스에선 디저트로 꼭 먹어야 하는 메뉴가 있다. 바로 23겹으로 된 아주 진한 초코케이크다. 얇은 크레이프와 크림으로 된 레이어 케이크가 아니다. 오로지 빵과 가나슈로 층층이 쌓아 올린, 칼로리를 알고 싶지도 않은 초코 케이크다. 하우스 레드 와인을 한 잔 시켜 수다와 케이크로 한참 시간을 보냈다.



친구가 식당 예약할 때 내 생일이라고 메모를 남겼더니, 직원 분이 생일 축하 카드를 건넸다. 문구가 '마이클 조던 스테이크 하우스 직원 일동으로부터" 같은 느낌이었는데, 뭔가 거창하게 느껴져 기분 좋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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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엔 친구도 나도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동네 카페에 갔다. 노란 은행잎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길을 걷는데, 순간 시카고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게 실감 나서 즐거웠다. 일하러 가는데 이렇게 신이 날 수가.


드립 커피가 2.8달러로 저렴한 편인 카페였다. 인테리어도, 메뉴도 특별할 건 없었지만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대학생들 사이에 대학원 생 하나, 회사원 하나. 그렇게 말없이 두 시간 동안 각자 할 일을 했다.


작년까지 이 친구와 논현동에서 자취할 때도 이렇게 낮엔 놀고 밤엔 일하는 날들이 많았는데. 친구는 원하는 곳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고, 나는 한 걸음을 떼기 위해 꽤 오랜 시간 준비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잘 될 거야, 우리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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