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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Jun 30. 2024

해안마을 카다케스에서 무계획으로 쉬기

2024년 5월 5일

휴양지에 왔더니 그에 맞게 몸도 마음도 흐물흐물해졌다. 흘러가는 매 순간이 만족스러워서 꼭 해야 하는 것도, 꼭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카다케스에서 아무 계획 없이 돌아다니기로 했다.



10:00 AM

아침은 빵으로 시작해 보자. 'Els Millasson'이라는 숙소 근처 로컬 빵집에 갔다. 메뉴는 딱 한 가지인데, 팬케이크처럼 보들보들한 반죽 안에 계란 맛이 많이 나는 슈크림이 들어간 빵이다. 에그타르트 같기도, 델리만주 같기도 한 맛이었다. 2천원의 행복!



11:00 AM

바다를 끼고 쭉 걷다가 아무 카페에 들어가서 카푸치노와 라떼를 주문했다. 역시나 우유보단 프림 맛이 나는 커피였는데, 멍하니 바다 쪽을 보고 있다가 커피가 식는 줄도 몰랐다. 커피 대신 작열하는 햇빛 아래 내 등이 따끈따끈해졌다.



11:40 AM

나는 야외물놀이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해는 따갑고,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건 많으니까. 대신 해변에 앉아 잔잔한 파도를 하염없이 보고 있거나,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건 아주 좋아한다.


카다케스에는 본격적(?)인 해수욕장은 없지만, 해가 잘 드는 곳에 사람들이 알아서 모여 있다. 프랑스에서 온 가족여행객이 대부분이었고, 우리는 적당히 그 안에 섞여 몇 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수영하고, 나는 누워서 책을 읽었다.



1:00 PM

피자는 휴양지하면 떠오르는 음식 중 하나다. 어디에나 있고, 웬만하면 맛있다. 'RAVIYU'는 화덕피자 전문점인데, 꽤나 평점이 높아 점심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염소 치즈를 올린 사과 샐러드와 부라타 잠봉 피자를 주문했다. 식당 한쪽엔 커다란 화덕이 있어 요리사 두어 분이 피자를 부지런히 굽는다. 따뜻하고 쫄깃한 도우에 짜지 않은 햄과 부라타 치즈를 조금씩 올려 먹으면 된다.



2:30 PM

오후 시간은 친구와 따로 보냈다. 나는 그냥 몸이 가는 대로 이 마을 곳곳을 걸어 다녔다. 지도 없이 다녀도 걱정 없이 편안했다. 인도는 돌길 치고 평탄해서 두 시간을 걸었는데도 발이 멀쩡했다.


가장 붐비는 광장 쪽을 살짝 벗어나면 대부분의 건물이 흰색이었다. 문이랑 창문만 알록달록하게 꾸며 놓았는데, 그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스페인의 가게들은 시에스타(낮잠) 문화 때문인지 오후 세 시부터 일고여덟 시까지 영업을 쉰다. 이때 산책하면 사람 말소리보다 새소리가 크게 들린다. 오히려 좋아?



7:30 PM

산책 후엔 현지인처럼 숙소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일어나니 식당들이 저녁 장사를 시작할 때였다. 메뉴를 고민하다 지중해식으로 유명한 로컬 식당 'Tiramisu'에 가보기로 했다. 분명 가볍게 먹기로 했는데 둘이서 메뉴를 네 개나 시켜버렸다. 애피타이저론 갑오징어 스튜, 메인으론 생선구이와 가지찜, 후식으론 티라미수를 먹었다.


맛집 발견! 재료가 신선한 건 물론이고, 간도 너무 짜거나 달지 않았다. 특히 스튜는 모든 재료가 부드러운 데다 국물은 적당히 녹진해서 속이 기분 좋게 따뜻해졌다. 사장님은 엄청 친절해서 후식을 먹을 때쯤엔 우리가 먼저 짧은 스페인어로 농담을 건넬 정도였다.



10:30 PM

숙소로 돌아가는 길, 괜히 바다를 따라 빙 둘러 걸었다. 당연히 배도 부르지만 마음까지 충만해진 기분이었다. 들뜬 마음을 말에 담아보려 했지만 무형의 기쁨을 조리 있게 빚어내는 데에 실패했다. 대신 엉망진창 콧노래로 밤공기에 실어 보냈다.


'휴양(休養)'. 쉬면서 몸과 마음을 보양한다는 의미. 카다케스에서 물 흐르듯 보낸 이날이 나에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휴양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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