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6시가 되기도 전에 호텔 1층 라운지로 내려왔다. 지로나는 사이클리스트들이 휴가를 보내러 오는 도시란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호텔이고 번화가고 타이즈에 헬멧 쓴 사람들이 자전거를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2박을 한 숙소, B&B Hotel Girona2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침 라이딩을 가는 건지 활기찬 모습으로 삼삼오오 호텔을 나서더라. 내가 운동하는 것도 아닌데 점점 배가 고팠다. 결국 8유로를 내고 조식을 먹었다. 음식 종류가 많진 않지만 빵 있고 요거트 있으니 됐다.
라운지에서 글도 쓰고 책도 읽다가 방으로 올라가니 친구들도 씻고 준비 중이었다. 여유롭게 짐을 챙겼더니 어느새 체크아웃할 시간이었다. 친구 한 명은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다른 친구와 나는 지로나를 떠나야 했다. 몸은 멀어져도 우리의 인연의 끈은 무한히 이어진다. 또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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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카다케스(Cadaques)'라는 해안 도시다. 바르셀로나에서도 별로 안 먼데,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로 유럽인들이 휴양을 위해 찾는 곳이란다. 궁금하니까 한국에서 온 동양인도 찾아가 봅시다.
지로나에서 카다케스까지 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우리는 '피게레스(Figueres)'라는 도시에서 환승하기로 했다. 지로나에서 피게레스까지는 렌페를 타고 딱 15분만 가면 된다.
피게레스에서 버스를 타기 전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생겨 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스페인은 샐러드에 염소 치즈를 많이 넣는다. 겉에 설탕을 뿌려 태우듯 굽는 게 특징인데, 이게 아주 별미다.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 라떼에 크루아상으로 마무리했다. 근데 스페인에서 가는 카페마다 왜 라떼에서 우유가 아닌 프림맛이 나는 걸까...?
카다케스로 향하는 버스에선 식곤증인지 멀미인지 모를 이유로 엄청 졸았다. 한 시간 만에 도착한 카다케스는 다행히 날씨가 엄청 좋았다.
이틀 밤을 보낼 숙소는 버스정류장에서 도보로 10분이었다. 캐리어와 백팩이 꽤나 묵직한데도 눈앞의 풍경 때문에 힘든 줄 몰랐다. 집 전체를 빌린 에어비앤비는 마음에 쏙 들었다. 커다란 거실에 아늑한 침실, 그리고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널찍한 테라스까지.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이 실재하는 게 맞나 싶었다.
날이 밝을 때 최대한 많이 구경하고 싶어 밖으로 나갔다. 휴양 도시지만 아직 날이 서늘해서 관광객이 많진 않았는데, 오히려 좋아. 마을 곳곳을 차분히 돌아봤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고,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동물들도 어쩐지 도시에서보다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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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그린 와인 한 병과 간식거리 몇 가지를 샀다. 크래커에 잠봉과 치즈를 올려 야금야금 먹다가, 와인으로 입가심해주고. 한국에 두고 왔으면 좋았을 고민들을 차근차근 나눠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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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다시 외출했다. 혼자였으면 절대 보지 못했을 카다케스의 야경은 도시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고요하고 은은하게 반짝거렸다. 식당가에서 멀어지니 파도 소리만이 철썩거렸다.
걷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별들이 총총 박혀 있더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로등을 살짝 손으로 가렸는데, 누가 잔뜩 흩뿌린 것처럼 별들이 선명했다!
지금에만 집중하며 단순하게 보내는 하루가 쌓여가는 여행이다. 매일 조금씩 다른 날씨, 눈앞의 음식과 풍경, 친구와의 편안한 대화들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