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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Jul 07. 2024

바르셀로나에서의 배부른 하루

2024년 5월 7일

바르셀로나에서의 여정이 시작됐다.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한 번, 작년에 출장으로 또 한 번, 그리고 이번에 퇴사여행으로 세 번째 방문하는 도시다. 원래도 관광에는 큰 욕심이 없는 데다 떠나기 전에 퇴사를 하게 되며 여행의 테마는 '여유'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찬란한 햇빛 아래 전 세계 관광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바르셀로나에서, 친구와 나는 발길 닿는 대로 유유자적 돌아다녔다. 돌아보니 먹기는 또 참 열심히 먹었다.


*

아침은 작년에 동료랑 왔다가 반했던 식당에서 먹었다. 온전한 비건은 아니지만 채식 지향 메뉴들로 가득한 'Honest Greens'란 곳이다. 바르셀로나에 지점이 몇 개 있는데, 나는 카탈루냐 광장 근처에 있는 곳만 가봤다.


한참을 고민하다 야채만 들어간 부리또, 코코넛 베이스 요거트볼, 코코넛칩과 수란을 올린 토스트를 주문했다. 1년 만에 방문해서 새로 생긴 메뉴들로 주문한 건데,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맛있었다. 부리또는 고기 없이도 재료가 풍성해 씹는 맛이 좋았고, 치폴레 마요네즈와도 잘 어울렸다. 과일과 그래놀라가 듬뿍 들어간 요거트도 당연히 맛있고.


제일 마음에 든 건 토스트였는데, 짭짤한 시즈닝으로 맛을 낸 코코넛 칩이 수란과 찰떡이었다. 계란 때문에 비건 메뉴는 아니지만, 건강한 재료와 균형 잡힌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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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러스의 본 고장인 바르셀로나에 왔으니 간식은 고민할 것도 없다. 수많은 츄러스 가게 중 한국에도 진출해 있는 유서 깊은 곳이 있었으니, 'XURRERIA'다. 가게는 크지 않았는데, 입구에 '아시아 독점계약 체결식'이라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초코딥을 추가할 수 있는 플레인은 여섯 개에 2.5유로, 다양한 맛의 크림이 들어간 버전은 한 개에 4유로였다. 양쪽 다 먹어보자.


갓 튀긴 츄러스에선 살짝 짭짤한 맛이 났고, 진한 초코에 찍어먹으니 조합이 아주 좋았다. 기름기가 적고 카삭카삭한 튀긴 빵은 맛없을 수가 없지.


필링이 들어간 버전으로는 피스타치오와 돌체 크림을 골랐다. 둘 다 초코 베이스의 크림인데 엄청 진한 맛이었다. 플레인보다는 바삭함이 덜하지만, 그래도 단 걸 좋아하는 나에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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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먹었으면 커피로 싸악 내려줘야지. 해변으로 가는 길에 Hidden Coffee Roasters'라는 커피 맛집이 있다길래 골목길 사이로 찾아가 봤다. 근데 여기 힙한 사람만 올 수 있나? 우리만 너무 동양에서 온 모범생 듀오 느낌이라 머쓱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라떼. 무려 '아이스' 메뉴가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한참을 걸었더니 찬 음료가 술술 들어갔다. 원두를 다르게 골랐는데, 아메리카노는 산미가 높고 라떼는 씁쓸한 맛이 강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친구 입에도 맛있단다. 앉을자리도 있고, 물도 주고, 직원분들도 친절하니 여기도 커피 애호가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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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기 전, 가볍게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엄청 화려한 공간에 들렀다. 'El Nacional Barcelona'라는 곳인데, 럭셔리한 대형 푸드코트 같았다. 양쪽으론 커다란 오픈형 식당들이 있고, 중앙엔 둥그런 바 테이블들에서 타파스를 팔고 있었다.


아무 바 테이블에 앉아 맥주 두 잔을 파인트로 주문했다. 일반 생맥주 한 잔, 레몬 생맥주 한 잔. 이색적인 공간에서의 맥주라 기분이 한껏 좋았다가, 담당 직원이 불친절해 정색한 상태로 잔을 비웠다. 예스걸 두 명을 서운하게 만들다니 대단하다...!


고급스러운 공간을 둘러보며 감탄했다가, 직원과 눈 마주치면 시무룩했다가 하는 우리가 웃겨서 또 실없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기분이 풀려 자리를 뜰 땐 결제에 인사까지 쿨하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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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람블라스가에 있는 제대로 된 타파스바에 가기로 했다. 식당 후보가 여럿 있었는데, 3순위까지 웨이팅이 상당하길래 결국 눈에 보이는 곳에 즉석으로 들어갔다. 'Can Placa'라는 곳인데, 외관 사진을 남기는 날 보고 직원분이 중앙으로 달려와 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그에 부응하고자 나도 열심히 사진을 찍어드렸다.


양옆 테이블을 티 안 나게 둘러보다 해산물 스튜에 오징어 튀김을 주문했다. 해산물 스튜엔 아귀로 추정되는 통통한 생선, 딱새우, 게, 홍합 등이 알차게 들어 있었다. 비스크 소스로 맛을 내고 향채를 듬뿍 올렸는데 진짜 풍성한 맛이라 친구와 한입 먹을 때마다 감탄했다. 오징어는 쫄깃함보다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식감이었다. 우리나라 오징어와는 확실히 다르다.


*

먹기도 많이 먹었지만 걷기도 참 많이 걸은 하루다. 해변부터 골목까지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을 누비며 3만 보 정도 걸었는데, 날씨가 좋아서 어디에 있든 그저 행복했다.


사진으로나마 붙잡고 싶었던 행복의 순간들을 여기에 공유해 본다.


하나,

숙소에서 시내로 가려면 트램을 타야 한다. 덜컹거리는 트램 안에서 싱그러운 풍경을 구경하고 있자니 햇볕 아래 앉아 있는 고양이처럼 나른하고 편안한 기분이었다.


둘,

여름 초입에 만난 크리스마스 테마의 대형 소품샵.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모든 오브제가 여기 있었다. 트리에 거는 장식품, 목재 오르골, 크고 작은 트리들이 가득한 낭만의 공간이었다.


셋,

바다와 맞닿아 있는 대도시의 매력이란! 바르셀로나는 위치만으로도 여행자를 설레게 한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바르셀로네타 해변으로 가는 길은 매 순간이 그림 같다. 한참을 걷다가 모래 해변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맑은 날은 좋지만 해를 오래 견디지 못하는 나는 양산을 쓰고 있고, 친구는 옆에 맨발로 널브러져 있었다. 헐벗은 채 온몸으로 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이상해 보였겠지만, 아무렴 어때.


넷,

2년 후가 완공이라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밤에 보면 고요한 웅장함에 압도된다. 안은 못 보지만 밖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하루종일 먹고 걷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바르셀로나에 왔음을 온전히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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