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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May 24. 2019

포르투 카페에서 그림 그리다 생긴 일

여행 중이니 낯가림은 잠시 넣어두자 

R은 오늘도 마실 삼아 단골 카페로 향했다. 단골 카페의 이름은 '콤비커피(Combi Coffee)'. 줄 서서 기다릴 정도는 아니지만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인기인 곳이라 항상 복작복작하다. 



R이 이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는 커피가 맛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 구경하기에도 딱 좋기 때문이다. 너무 붐비지 않으면서도 방문객들의 회전율이 좋아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실컷 볼 수 있다. 


주인과 안부 인사를 나누고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 1인용 민트색 테이블에 앉았다. 두 테이블 떨어진 곳에 정수리만 보인 채 어깨를 들썩이는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R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 한 그 여성은 J. 몇 분 후 J는 고개를 들었다. 테이블엔 스케치북, 펜, 연필 등의 필기구가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는 걸 보니 이 곳을 열중해서 그리고 있었나보다. 


R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스케치북 속의 그림을 보고 싶기도 하고, 언뜻 봐도 관광객인 듯한 J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독자 분들이 눈치채셨을 지 모르겠지만, J는 나다(짜잔★). R은 포르투갈 현지 사진작가 리카도(Ricardo, 현지 발음으로는 '리카도'와 '히카도' 그 어딘가다)다. 리카도는 내가 카페 스케치를 반 정도 했을 때 슬며시 다가왔다. 

"Are you drawing something? This cafe? (=뭐 그리는 중이니? 이 카페?)"


고개를 드니 얼굴도 동그랗고 코도 동그랗고 그 위에 얹은 까만 뿔테마저 동그란 중년 남성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낯가림을 티내지 않고자 애써 더 활기차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야 오픈 마인드의 밝고 명랑한 여행자,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짜릿하지(자기 세뇌 중).


리카도는 내 직업에 대해, 여행 온 이유에 대해, 그리고 다른 곳이 아닌 포르투를 여행지로 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어느 하나 속시원히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음...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은 백수고요, 좋아하는 것 좀 실컷 해보려 여행 왔고요, 포르투는 그냥 한 번쯤 꼭 와보고 싶었답니다'라고 솔직히 대답하기엔 너무 초면이니까! 


다소 뭉뚝한 답변들에도 리카도는 '오', '정말?', '그거 정말 흥미로운데' 등의 추임새로 대화를 리드했다. 그 뒤론 리카도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그는 굿토커이자 머치토커였다('투'머치 아니고, 그냥 머치). 20분 동안 나는 리카도의 직업과 취미를 거쳐 그의 커피 취향까지 알게 됐다. 

"얼마 전에 커피 머신을 새로 장만했어. 근데 요즘은 콜드브루가 좋아서 밖에서 커피 마실 때도 많아. 그거 아니? 여기 카페 콜드브루도 맛있는데." 


나중에 H가 멀리서 찍어준 사진과 영상을 보고 알았는데, 리카도와 대화하는 동안 내 얼굴에는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현지인과 긴 대화를 나누는 건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마팔다&이스라엘 부부 이후로 처음이었다. 끔찍한 낯가림과 좁은 인간관계의 소유자인 나에게 이 순간은 기념비적이다! 


남은 3주의 여행에 더 많은 현지인들이 함께하길! '내가 만난 포르투갈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도 쓰고 싶으니까





에필로그 1. 

"그림 그리는 네 모습을 찍어도 되겠니?"

"그래!"


그날 리카도의 인스타 스토리엔 이게 올라갔다▼



에필로그 2. 

"혹시 나를 위해 간단한 그림 하나만 그려줄 수 있겠니?"

"집에서 시간 날 때 그려볼게. 너무 기대는 하지마!"


다음날, 나는 리카도에게 그림 하나를 보냈다. 몇 시간 후 그의 인스타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에필로그 3. 

'콤비커피'의 스케치 그림에 채색을 덧입혀 완성했다.


결과물▼


콤비커피의 계정에도 같은 그림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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