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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May 23. 2019

포르투에서도 변함없는 얼리버드의 삶

새벽 5시 기상, 예외는 없다

어느덧 포르투갈 여행 '2주차'가 시작되었다. 일주일 동안 나의 몸과 마음은 이곳에 완벽 적응했다. 나에게 '완벽 적응'이란 한국에서 매일같이 고수하던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J의 각도기 라이프 사이클>

5시 : 기상

5시 30분 : 아침 식사

8시 : 외출 준비

-일정 소화 후 21시 전 귀가-

23시 : 취침


많은 독자들이 첫줄부터 놀랐을 것이다. 어떻게 장담하냐면, 내가 만난 사람 중 백이면 백 다 그랬으니까!


'얼리버드'의 삶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집에서 먼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매일 학교 셔틀버스를 타고 등하교 했다. 자주색 45인승 대형 스쿨버스는 6시 45분경에 날 데리러 왔다. 제 시간에 등굣길에 오르려면 6시에 일어나야 했다. 처음엔 좀 힘든가 싶더니, 반 년이 지난 뒤 알람 없이도 벌떡 일어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3년 간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하던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 시간표를 자유롭게 짤 수 있게 되자 오전 10시 이후로 하루의 시작을 미뤘다. 나는 그와 반대로 '초얼리버드'로 진화했다. 기상 시간이 한 시간 더 앞당겨졌다. 신문배달부가 던진 신문이 우리집 현관문에 부딪혀 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시간에 깨어 있게 됐다. 노인들은 아침잠이 없다는데 우리집 아침 풍경은 희한하다. 막내인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나 신문을 안에 들여놓고 마루에서 할머니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라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포르투는 새벽 5시 반이다. 3일째 이 시간에, 이 나무 식탁 앞에, 오색빛 담요로 몸을 둘둘 감싼 채 노트북을 펴놓고 앉아 있다. 이제 두 시간 반 후면 호스트인 마팔다가 식탁 옆에 있는 마른 과일을 가지고 출근할 것이다. 삼십 분 후면 P가 일어나 조용히 아침을 먹고, 또 삼십 분 후면 H가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에 씻으러 갈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이 집에 있는 사람 다섯 명(호스트 부부와 프로젝트주민) 모두 각자의 호흡대로 살고 있다.




타지에서, 특히 유럽에서 홀로 새벽에 눈을 뜨는 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여름, 친구 S와 함께 70일간 유럽 낭 여행을 했다. 주머니가 팔랑거리는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숙박비를 아껴보겠다고 1박에 1인당 3만원 미만인 호스텔과 에어비앤비를 전전했다. 오랜만에 그 때의 일기를 펴보았다. 4년 전에도 J는 새벽형 인간이었을지 한 번 알아보자.


2015년 6월 26일 금요일

새벽에 일어나서 전자렌지에 스콘 데워 먹었는데 핵존맛...


2015년 7월 2일 목요일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어제 옆 방 사람들이 준 초코 푸딩을 뜯었다. 너무 맛있는데...?


2015년 7월 5일 일요일

새벽 5시 기상ㅎㅎㅎ 어제 파리 시내를 그렇게나 열심히 걸어 다녔는데... 열 두시가 다 되어 잤는데...


2015년 7월 6일 월요일

5시 15분쯤 눈을 떴다. 침대에 누워 잇다가 7시쯤 빵집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그만 알아보자.


어쩜 이렇게 똑같은지. 5시 칼기상부터 아침에 단 음식을 찾는 것까지 '복붙' 수준이라 소름 돋는다. 성인이 되어 외모고 성격이고 꽤나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초얼리버드적 소프트웨어'는 어디 안간다. 두서 없이 수다스러운 4년 전 일기를 훑어보니 기억난다. S가 깰까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필기구를 챙겨 라운지나 거실로 조용히 나오던 내 모습이.




주변 사람들에게 백 번도 넘게 들은 질문이, "그래서 5시에 일어나면 대체 뭐해요?"다. 특별한 건 없다. 남들이 저녁이나 밤 시간에 하는 일들을 새벽에 할 뿐이다. 나에겐 그것이 일기 쓰기, 그림 그리기, 책 읽기 등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 먹는다'고 하지만, 새벽형 인간으로 살며 이득 본 건 별로 없다. 투명 벌레인가...? 아니면 벌레가 너무 작아 몇 십 년 잡아먹어야 성과를 얻으려나?


분명한 건 이번 여행의 목적이 '콘텐츠 제작'인만큼 내 라이프사이클이 플러스면 플러스지, 결코 마이너스는 아닐 것이라는 거다. 첫 번째 이유. 새벽 시간은 정말 고요하다. 깨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집 안팎으로 소음이 거의 없다. 고로 집중이 잘된다. 두 번째 이유. 밤새 충전한 에너지가 100프로일 때 일을 하므로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낮 동안 열심히 놀거나 돌아다닌 후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버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많지 않은가(라고 체력빈곤층이 말한다).

지금까지 새벽형 인간의 기적의 논리 잘 보셨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나의 작업은 앞으로도 새벽마다 계속될 것이니, 독자들은 이 tmi를 참고해주시길.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읽으면 더 재밌는 글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글을 마무리하고 창밖을 보니 해가 떠있다.



덧붙임)

혹시 새벽형 라이프스타일을 시도해보려는 분들을 위해 알려드리자면, 가끔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 마치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처럼 아득한 순간들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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