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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항공 두 번 타고 기내식 세 번 먹기

14시간 비행 끝에 프라하에 도착했다

by 이재인

인천에서 프라하까지는 직항 노선이 많지 않다. 작년 11월에 개장한 신공항도 구경할 겸, 이스탄불에서 경유하는 터키항공을 예약했다.

<비행 스케줄>
- 9월 9일 23:45 인천 출발 [TK0091편]
- 11시간 30분 비행 후 이스탄불 도착
- 9월 10일 7:05 이스탄불 출발 [TK1767편]
- 9월 10일 8:40 프라하 도착



어떻게 이러고 11시간을 가?


착석한 지 30분 만에 느낌이 왔다. 편하지 않은 비행이 될 것임이.


대형 항공사(FSC)를 이용하면서 한 번도 좌석이 비좁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터키항공은 남달랐다. 터키항공 B777-300ER의 이코노미석은 무릎과 앞좌석 사이에 손가락 두 개가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몇 시간 후의 나에 대한 걱정을 잠재우고자 시트를 열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위생 상태는 좋았다. 승무원이 나눠준 베개와 보들보들한 담요도 마찬가지였다.


어매니티 파우치도 마음에 들었다. 하얀색 바탕에 발랄한 색들이 격자무늬를 이루고 있는 디자인이었다. 안을 열어보니 진한 파란색 양말, 귀마개, 일회용 슬리퍼, 안대, 양치 도구, 그리고 립밤이 들어있었다. 'Vegan Lip Balm’이라 쓰여 있는 립밤은 녹차향이 났다.



비행 1시간째

첫 번째 기내식은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나왔다. 한국 시간으로는 '야식 먹기 딱 좋은' 새벽 1시였다. 두 가지 메인 메뉴인 비빔밥과 대구구이 중 후자를 선택했다. 문득 프라하에서는 해산물 먹기가 정말 힘들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였다.


통통한 대구 두 덩어리가 깍둑 썰기한 감자와 시금치 무침 사이에 놓여 있었다. 간은 세지만 가시도 없고 살도 부드러워 소화가 잘될 것 같았다. 함께 나온 새우 샐러드나 당근 케이크도 기대 이상이었다. 일회용이 아닌 스테인리스 커틀러리나 개성 있는 모양의 접시들도 좋았다.



좁은 공간 탓에 팔의 움직임이 제한적이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 입가심으로 화이트 와인을 마셨는데 입안 정리를 훼방 놓는 맛이었다.
"와인에서 온갖 특이한 향이 다 나는데?"
위스키를 주문한 옆자리의 P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밥은 맛있었지만 술은 영 아니었다.


지루한 장거리 비행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반짝 즐거움'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술이다. 평소 술을 자주 마시는 편도 아니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데 기내에서 마시는 맥주 한 캔이나 미니 와인 한 병은 항상 놓치고 싶지 않다. 엔진 소음에, 기체의 흔들림에, 주변인의 뒤척임에 온통 예민해진 감각을 무디게 해 줄뿐더러 숙면까지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내에서의 과도한 음주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 아시죠?:)
기내에서는 몸이 산소를 흡수하는 능력이 뚝 떨어지고 혈중 알코올 농도는 더 가파르게 높아진다. 따라서 기내 음주는 지상에서 같은 양을 마셨을 때보다 우리를 몇 배 더 취하게 만든다.
-<비행기에서 10시간: 기내에서 하루를 보낼 당신을 위한 알쓸신잡>


위스키나 보드카처럼 도수가 높은 술은 잘 마시지 못하니 맥주를 주문해보았다. 파란색 래핑이 인상적인 필스너 한 캔을 받았다. 무난한 맛이었다. 반 정도 마시니 잠이 쏟아졌다.



비행 4시간째

터키항공 B777-300ER의 이코노미석은 좌석 앞뒤 간격은 좁지만 다행히 좌우 간격은 넉넉했다. 살짝 대각선으로 몸을 틀어 앉으니 (감사하게도) 졸음이 쏟아졌다.


비행 9시간째

음식 냄새에 뻐근한 허리와 목을 삐걱거리며 눈을 떴다. 두 번째 기내식의 메인 메뉴는 오믈렛이었다. 구운 감자와 토마토가 사이드였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도 작은 접시에 조금씩 담겨 있었다. 아침으로 먹기 좋은 무난한 식사였다.


다만 몸 상태는 무난하지 않았으니, 정육면체 모양의 작은 방에 몸을 구겨 넣고 몇 시간 동안 자고 일어난 기분이었다. 윤활유라도 발라야 할 것 같은 움직임으로 겨우 아침 식사를 마쳤다.



두 시간 후 이스탄불 신공항에 도착했다. 이스탄불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환승 대기 시간이 한 시간 늘어났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짐 검사를 하고, 게이트를 찾고, 면세점을 구경했다.



2018년 11월 말에 개장한 이스탄불 신공항은 거대했다. 천장은 높고 사람은 많지 않아 쾌적했다. 배고프고, 졸리고, 무엇보다 씻고 싶었다. 보딩을 기다리다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하늘이 주홍빛이었다.


전광판을 보니 아침 6시였다. 9월 이스탄불의 일출은 아름다웠다. 발갛게 물든 하늘에 회색빛인 구름이 흩어져 있었다.


비행 12시간째


짧은 비행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륙하고 얼마 안 되어 식사가 나왔다. 직전의 기내식과 비슷한 메뉴 구성이었고 다른 점은 야채 대신 묽은 요거트가 제공된다는 것이었다. 치즈 맛이 많이 나는 오믈렛은 역시나 짰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 내가 먹어본 기내식은 십중팔구 짰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제가 이유를 찾아왔습니다.
높은 고도에서는 혀에서 맛을 감지하는 세포인 미뢰의 민감도가 변한다. 미각과 후각의 감도가 기내에서는 툭 떨어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단맛과 짠맛에 대한 감각과 이별할 뿐 나머지 신맛, 쓴맛, 매운맛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항공사에 따라 다를 테지만 10km 상공에서 최적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염도와 당도를 조금 높인다.
-<비행기에서 10시간: 기내에서 하루를 보낼 당신을 위한 알쓸신잡>


두 번째 비행과 함께한 기종은 A321이었다. 체감상 B777-300ER보다 좌석 간격도 넓고, 가운데에서 창가 자리로 옮기니 몸도 편안해졌다. 창 밖의 맑은 하늘을 감상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매번 느끼지만 퐁실한 솜사탕 같은 구름 떼를 내려다보는 건 즐겁다.


비행 13시간 30분째


어느새 창밖으로 구름이 아닌 오밀조밀한 집들이 보이고, 숲을 이룬 나무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고, 집도 차도 없는 공항의 활주로가 가까워진다.


비행기가 땅을 밟았다. 반가워, 프라하!



P.S. 좌석 간격 빼고는 나무랄 게 없었던 터키항공. 그러나 그 단점 한 개가 크리티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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