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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Dec 06. 2023

너겟부터 밀크셰이크까지, 비건 음식만 먹는 하루

2023년 10월 6일

벌써 시카고에 온 지 만 일주일이 됐다. 무리해서 관광을 하지 않으니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길다. 슬슬 '자주 가는' 마트와 카페가 생긴다. 여행자가 같은 곳을 두세 번 가면 단골 아닌가? 


여하튼, 여행에서 먹는 즐거움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큰 사람으로서 마트의 식품 코너나, 카페 혹은 식당 메뉴를 관찰하길 좋아한다. 자꾸 보니 우리나라와 다른 점들을 인식하게 됐고, 그중 하나가 어디나 존재하는 '비건 옵션'이다. 


이걸 인식한 건 '인썸니아 쿠키(Insomnia Cookies)'라는 친구가 인생 쿠키집이라며 한국에서부터 입에 달고 살던 쿠키집에서였다. 시카고에 오자마자 먹게 된 따끈하면서 쫀득한 땅콩버터맛 쿠키는 감동이었다. 이건 머무는 동안 섭섭하지 않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6+6' 프로모션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친구랑 근처 매장으로 달려갔다. 쿠키 12개쯤이야. 


마음 든든해지는 인썸니아 쿠키 12개


인썸니아 쿠키 매장은 10미터 밖에서부터 달고 고소한 향으로 존재감을 표했다. 여기가 공장도 아닌데 냄새가 이렇게까지 진할 수가 있나. 더블초코칩, 민트초코칩, 건포도&오트밀, 화이트초코&마카다미아 등 보기만 해도 황홀한 메뉴들을 눈으로 훑는데 아래에 비건 옵션으로 똑같은 메뉴들이 적혀 있었다. 


비건에 대한 지식은 얕지만, 그 무엇보다 버터가 잔뜩 들어갈 것 같은 쿠키가 비건일 수 있다고? 설마 맛은 다르겠지,라고 생각하며 호기심에 12개 중 3개 쿠키를 비건을 골랐다. 다음날 비건 초콜릿청크 쿠키를 먹어보는데 조금도 허전함이 없는 맛이라 감탄했다. 우유는 두유나 귀리 우유 등 비건으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버터나 치즈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마트의 냉동식품 코너에서 흔들렸다. 하겐다즈와 벤앤제리를 한참 쳐다보고 있다가 다른 아이스크림은 뭐가 있나 싶어 수상한 모양새로 냉동고 앞을 서성였다. 그런데... 오틀리(Oatly)가 무려 아래위로 두 칸을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아는 오틀리는 액체 형태로 종이 곽에 들어 있는 것뿐인데...? 바닐라, 초코, 딸기맛은 물론이고 커피에 헤이즐넛맛까지 진열돼 있었다. 궁금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심지어 민트초코맛까지 출시했다고...!


오틀리 아이스크림의 다양한 맛, 출처: 오틀리 홈페이지


마트에도 민트초코가 있었다면 그걸 샀겠지만, 없어서 그냥 초코맛으로 사봤다. 진짜 오틀리 초코맛이 아이스크림이 된 맛이었다. 이게 무슨 당연한 소리겠냐고 하겠지만, 두유나 귀리 우유 같은 식물성 우유로는 크리미한 식감과 맛을 내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국, npr의 뉴스에 따르면, "비건 우유 특성상 물의 함유량은 많고 지방은 적어 '쫀득하고 크리미한' 질감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단백질이나 지방을 다른 식물성 원료에서 가져와야 한다"고. 


그래서 오틀리의 아이스크림도 외부의 재료가 들어가면 맛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액체 상태 그대로의 맛에 나름의 크리미함도 느껴졌다. 유채(rapeseed)와 코코넛 오일로 동물성 지방을 대신했단다. 유제품(dairy product)인데 유지방(dairy fat) 없이 맛 구현이 가능하단 게 낯설고 신기했다. 


오틀리의 초코맛 아이스크림


어디에나 있는 비건 음식들에 익숙해지며 친구와 나는 직접 비건 식당을 찾아 나섰다. 사실 친구는 비건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다. 비건 레시피를 배울 수 있는 쿠킹 클래스도 여러 번 들으러 갔단다. 나는 주변에 비건인 친구가 몇 있어 종종 비건 식당을 가서 맛있게 먹는 게 전부다. 사실 집에선 야채 위주의 식사를 하는 편이지만 달걀은 자주 먹기에 비건과는 가깝다고 말할 수 없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라도 비건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해 보자는 생각은 새해 계획으로 마음에 품고 있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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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첫 번째로 찾아간 비건 식당은 'Elephant and Vine'이란 곳이다. 코끼리도 채식을 하듯 우리도 그러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딱히 설득되는 슬로건은 아니지만 알고 보니 인기가 많은 식당이었다. 시카고에만 두 개의 지점이 있다. 


이곳의 음식은 완전한 비건이다. 육류나 어류는 물론 유제품까지 식물성 재료로 대체한다. 메뉴는 얼핏 보면 트렌디한 샌드위치집이나 버거집 같았다. 친구는 치킨 너겟처럼 생긴 컬리플라워 튀김이 올라간 샐러드보울을 주문했다. 나는 시금치로 만든 또띠아로 야채와 대체육을 감싼 샐러드랩을 시켰다. 


컬리플라워 튀김은 특별한 가공 없이 그냥 컬리플라워를 작게 조각내 바삭하게 튀겨, 바비큐 소스만 곁들였다. 새로운 식감이나 맛은 찾을 수 없었지만, 든든한 영양식이었다. 신기한 건 랩이었다. 시금치로 만든 또띠아는 찰기가 부족해 안에서 재료가 자꾸 후두둑 떨어졌다. 근데 밀가루향 대신 야채향이 강해 기분 좋았다. 병아리콩으로 만들었다는 대체육 튀김은 생각보다 서걱거리지 않았다. 스펀지처럼 푸슬한 식감이었지만 아삭한 야채들과의 궁합이 괜찮았다. 


Elephant and Vine의 샐러드보울과 랩


이곳의 대체육 튀김은 'Chik'n'이란 이름이었다. 발음은 그냥 '치킨'인데 스펠링만 다르다. 랩뿐만 아니라 버거에도 패티로 들어간다. 버거 메뉴도 다양했는데, 심지어 코리안 바비큐맛도 있다. 양배추와 피클과 코리안 바비큐 소스를 바른 Chik'n 패티가 들어간다고. 


맛으로 제일 놀란 건 밀크셰이크였다. 아니, 애초에 '밀크'셰이크인데 어떻게 비건이 된담. 아니지, 오틀리도 아이스크림을 내는데 비슷한 공정으로 셰이크를 못 만들겠어? 딸기 크림 셰이크는 깜짝 놀랄 맛이었다. 빈틈이 하나도 안 느껴졌다. 혹시 음료는 비건식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 직원분에게 이거 'dairy-free' 맞냐고 거듭 물어봤다. 직원분은 맞다고, 완전한 비건이라고 못을 박았다. 


Elephant and Vine의 밀크셰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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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음식도 비건으로 먹어보고 싶어 두 번째 식당은 다운타운에 있는 곳으로 골랐다. 복층으로 된 커다란 푸드코트 안에 있는 'Plant Junkie'라는 식당이었다. 'Junk(정크)'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비건 음식은 삼삼하고 신선한 맛만을 추구한다는 편견을 깨고 싶단다. 


친구는 식물성 고기로 마든 너겟에 맥앤치즈와 브로콜리를 곁들인 웜볼(warm bowl)을 주문했다. 나는 중국식 볶음 요리와 식물성 고기 소시지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시켰다. 


생김새부터 자극적인 맛일 것 같았는데, 진짜였다. 식물성 고기로 만든 너겟과 소시지는 역시나 스펀지 같은 식감이었는데 씹을수록 묘하게 중독적이었다. 밀도가 높아서인지 살짝 쫀쫀하기도 했다. 맥앤치즈는 치즈맛이 안 났지만 짭짤하고 고소한 시즈닝이 인상적이었다. 두 요리 모두 마늘과 굴소스의 존재감이 컸는데, 재료가 다양하고 주문 즉시 철판에 볶아주니 끝까지 질리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Plant Junkie의 웜볼과 샌드위치


어떤 사명감이나 의의를 내세우기보다 맛있게 만드는 걸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비건 식당이라니,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재밌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매끼 육식을 하는 게 당연해졌나? 어렸을 때 우리의 런치 박스엔 피넛버터 앤 잼(PB&J) 샌드위치, 셀러리 스틱, 건포도 한 봉지 등이 들어있었다. 우린 알게 모르게 비건식으로 점심 식사를 해왔다!"


꼭 푸릇푸릇한 야채가 잔뜩인 식사가 아니라도, 조금 불량하게 먹더라도 비건식으로 먹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구나...? 유쾌한 목소리로 비건을 제안하는 브랜드의 색깔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Elephant and Vine에 코리안 바비큐 버거가 있다면, Plant Junkie엔 서울 볼(Seoul Bowl)이 있다. 대체육 불고기와 브로콜리를 쌀밥 위에 얹어준다. 코리안 바비큐 소스는 만국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한 힘이 있나 보다. 문득 한식을 비건식으로도 세계적으로 전파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야채나 과일식이 아닌 이상 아직 비건식 조리엔 양념맛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한식은 또 장맛으로 먹는 게 많은데, 한식의 세계화, 생각보다 멀지 않았는지도...!


Plant Junkie의 Seoul Bowl, 출처: Plant Junkie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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