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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Dec 08. 2023

고대하던 시카고 딥디쉬 피자 먹어보기

2023년 10월 7일

이전 글에서 시카고는 사실 피자보다 핫도그가 더 유명하다고 썼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관광객은 그래도 시카고에서 두꺼운 피자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한국에서 한때 시카고 피자가 유행해 지점도 여럿 생기고, 심지어 뷔페에서도 한 자리 차지했던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그러나 탐욕스러운 모양새와는 달리 맛은 별로라는 후기가 많았지. 그렇다면 본토에서 먹는 시카고식 피자는 어떨까. 아니, 여행자로서 너무 궁금하잖아...


그래서 친구가 시카고로 떠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피자 먹어봤냐고 여러 번 물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시카고언(Chiocagoan)도 평소엔 얇은 도우의 피자를 더 자주 먹는단다. 우리가 흔히 먹는 피자헛이나 파파존스 같은 일반 피자도 있지만, 도미노의 씬(thin) 도우처럼 바삭할 정도로 얇은 피자도 많다고.


음식에 대한 호기심은 끝이 없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미국엔 'Pizza Today'라는 피자 전문 미디어가 있다. 이름만 봐도 신뢰할 수 있다. Pizza Today는 매년 '피자 산업 트렌드'를 다루는 보고서를 내놓는데, 2024년 말머리를 달고 새 보고서가 올라와 있길래 훑어봤다.


출처: Pizza Today


중간쯤 '미국 피자 스타일의 인기 순위'가 10위까지 정리돼 있다. 1위는 뉴욕스타일이다. 토핑은 별로 없지만 크기가 엄청나고 도우는 얇은 게 특징이다. 딥디쉬는 4위다. 엥? 그런데 시카고 스타일이 하나 더 있다. 6위가 '시카고 씬(thin)'이었던 것. 소시지가 잔뜩 올라가고 도우는 얇으면서도 바삭하게 구워내는 게 특징이란다. 부드럽고 후들후들해서 말거나 접어먹을 수 있는 나폴리식 피자와 또 다르다.


어쩌다 보니 시카고식 씬 피자 얘기만 하고 있네. 그래도 맛이 궁금한 건 씬이 아니고 '씩(thick)' 피자다. 파이처럼 두꺼운 피자를 시카고가 아니라면 어디서 먹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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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맞는 두 번째 토요일, 아침부터 친구들과 '링컨파크(Lincloln Park)'에 왔다. 다운타운보다 조금 위쪽에 미시간 호를 따라 길게 조성되어 있는 공원이다. 이곳에 온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에만 열리는 마켓 구경하기, 다른 하나는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는 시카고 딥디쉬 피자집에 가기.


아침 9시쯤 도착한 링컨파크엔 이미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아이나 반려견을 데려온 현지인들이 많아 생기 넘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모두가 익숙하게 물 흐르듯 움직여 너무 시끄럽지도 않았다.


생기 넘치는 토요일 아침 마켓


과채류가 다양한 마켓이었다. 벌써부터 핼러윈을 기념하는 듯 각양각색의 호박이 눈에 띄었다. 반대편엔 사과가 열 종류도 넘게 진열돼 있었다. 두어 개 사서 나중에 친구집에서 먹어봤는데, 맛이나 색감이 조금씩 달랐다.


싱그러운 사과들


다른 건 몰라도 빵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까눌레와 휘낭시에를 하나씩 사 먹었다. 푸릇푸릇한 공원 한가운데서 햇볕을 받으며 먹는 구움과자는 무슨 맛이라기보다 행복의 순간으로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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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거고, 더 큰 행복을 찾아 피자집으로 갑니다. 시카고엔 비공식적으로 3대 딥디쉬 피자집이 있는 모양이다. Uno, Giordano's, 그리고 Lou Malnati's. 그중 우리가 고른 곳은 Lou Malnati's였다. 혹시나 너무 맛있으면 다음에 또 가야 하니 친구집 근처에도 지점이 있는 곳을 선택했다. 쓰고 보니 별 이유 아니네.


Lou Malnati's 링컨파크 점은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편안하고 쾌적한 분위기였다. 이곳의 대표 메뉴, 'The Malnati Chicago Classic'을 작은 사이즈로, 그것만 먹으면 느끼하니까 치킨 샐러드까지 주문했다. 피자는 주문 후 조리를 시작하기에 30분 정도 걸린단다. 세 시간 같은 삼십 분이 지나고 드디어 만났다.


갓 구운 피자는 정말 파이처럼 테두리가 꽤 높은 팬에 나왔다. 종업원분은 우리 앞에서 피자를 한 조각씩 잘라 각자 접시에 올려줬다. 우리는 토핑으로 이탈리안 소시지만 추가했는데, 기본으로 들어 있는 토마토소스와 치즈 양이 엄청나 오히려 야채를 추가하면 맛이 묻힌다는 친구의 의견을 수용한 결정이었다.


재료만 보면 느끼할 것 같지만 놀랍게도 꽤 신선한 맛이었다. 이탈리안 소시지는 간 고기를 뭉쳐놓은 것처럼 식감이 탱글탱글한데 페페로니나 일반 햄보다 짜지 않았다. 토마토소스엔 큼직한 토마토 조각들이 씹혔다. 치즈는 흘러나오지 않을 정도로만 부드럽고 쫄깃했다. 여기까진 그래도 예상한 범위 안에서 맛있는 정도인데, 크러스트가 놀라웠다.


피자를 먹을 때 가장자리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절대 남기지 않을 맛이다. 빵이 아니라 비스킷 질감이다. 잘 만든 파이가 파이지만 먹어도 맛있듯, 이곳의 크러스트는 식었을 때 먹어도 맛있었다. 버터를 잔뜩 넣은 건지 고소한 향에 풍부한 맛이었다. 어차피 피자 먹으면서 칼로리는 생각 저편으로 날려버렸다. 맛있는 게 최고지.


Lou Malnati's의 시카고 딥디쉬 피자 단면


Lou Malnati's는 홈페이지에 시카고 딥디쉬 피자 레시피를 올려놓았다. 도우부터 만드는 영상을 보게 됐는데, 빵처럼 두껍게 안 만들기 위해 발효 과정을 신중하게 거친단다. 셰프가 날것의 반죽을 그냥 먹으며 '하루종일 먹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데 왠지 믿어주고 싶었다.


테두리의 크러스트도 맛있지만 토핑 아래의 바닥 부분도 바삭하다는 게 신기해 자꾸 손이 갔다. 그 역시 설계된 조리법 덕분인데, 도우 위에 모차렐라 치즈를 먼저 잔뜩 깔면 어떤 토핑을 올려도 축축해지지 않는단다. 그래서 바닥 부분은 녹은 치즈와 달라붙게 되고 끝까지 바삭하면서 고소하다. 셋이서 감탄하면서 스몰 사이즈 한 판을 기분 좋게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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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Lou Malnati's에 온 건 친구집 근처에도 지점이 있으니 또 먹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이유였는데 못 갔다. 다른 피자 스타일도 궁금해졌거든. 사실 Pizza Today의 그 보고서에서 발표한 미국의 10대 피자 스타일 7위엔 디트로이트 스타일이 올랐다. 마침 친구네 동네에 디트로이트 피자 맛집이 있다는 거다!


디트로이트 스타일은 옆에서 보면 도톰하고 위에서 보면 직사각형 모양인 게 특징이다. 시카고 딥디쉬 피자와 달리 도우는 빵처럼 퐁신하다. 토핑이 많으면 옆으로 흐르는 구조라 토핑도 적당히 올라가 있다. 그래서인지 간은 오히려 세다. 좋은 날씨에 야외에서 피자와 맥주를 즐기는 순간이라니 시간이 가는 게 아깝다.


동네 피자 맛집의 야외석에서 피자와 맥주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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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에게 피자란 한국인에게 치킨과 비슷한 의미인 것 같다. 우리나라 치킨에 후라이드, 양념, 파닭, 숯불, 시즈닝 등 종류가 많은 것처럼 미국의 피자도 지역별로 다른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건강보다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소울푸드로서 일상에 함께한다. 그 일상이 여행자에겐 흥미롭고 새로운 경험이 된다. 근데 한국에서 자주 먹던 피자의 맛도 그립네... 흑미 도우로 만든 고구마 피자 맛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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