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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Oct 21. 2023

나는 일층이 좋다.

가끔 지역 카페를 보면 '아파트 일층으로 가도 될까요?'라는 질문을 보곤 한다. 댓글을 보면 절대 가지 말라는 글들이 많은데 아파트 1층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나는 나의 경험에 비추어 1층의 장, 단점을 댓글로 달아 주고 있다. 나의 신혼집은 4층짜리 빌라 건물 꼭대기 층이었다. 3층까지는 층마다 4-5채의 원룸이 있었고 4층은 주인세대를 위해 만든 집 한 채만 있는 집에 살았다. 싱글들이 사는 원룸건물에 신혼부부로 불편함 없이 잘 살고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아이가 걷기 시작하며 쿵쿵 걷게 되는 소리도, 장난감을 떨어뜨리는 소리도 모두 신경 쓰였다. 게다가 우리 집 밑에는 한 가구가 아닌 독립된 네 가구가 살고 있으니 아이가 쿵쿵거리며 돌아다니면 301호부터 304호까지 피해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 앞에 정중하게 붙여진 층간소음 관련 쪽지를 보고 아파트 1층으로 이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1층에 사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1층의 단점은 보안에 취약하고 사생활 보호도 안되고 창문도 못 열고 벌레도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살 아들은 활동성이 많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였고 통제시킬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일단 보고 판단하자는 마음에 매물로 나온 일층집을 두 군데 보았는데 한집이 꽤 마음에 들어 바로 계약해 버렸다. 지은 지 6년 된 아파트라 깔끔했고 현관 입구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리 집을 볼 수 없었다. 이전 집주인이 창문에 방범창을 다 달아 놓았는데, 이 아파트에는 방범창도 없는 집들도 많아 굳이 방범창이 없어도 될 정도로 안전한 동네 같았다. 1층 엘리베이터 앞쪽에 CCTV가 설치되어 있으니 오히려 보안에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주방 쪽과 작은방은 동 출입구 쪽이라 창문을 시원하게 열어놓긴 힘들었다. 대신 거실 뒤쪽은 정원처럼 조성되어 있고 멀리 나무가 심어져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 신축에 가까운

아파트라 깨끗한 편이고 일 년에 두 번씩 정기소독을 하여 벌레도 없고 사는 동안 모기 없이 살았다. 그중에서도 아이에게 뛰지 말라는 소리 안 하고 사는 게 제일 좋았다. 아이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가기 전부터 당부하고 가서도 내내 뛰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도 안타도 되니 외출하다가 무언가 깜빡해도 금방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도 편했다. 그리고 창문을 열면 초록초록 나무가 보이는 것도 좋았다. 거실 밖이 내 정원 같았다. 이토록 좋은 집이 코로나가 터지면서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1층의 최대단점은 채광이었다. 낮에도 불을 켜고 생활을 해야 했는데 맞벌이라 낮에 집에 없고 주말엔 밖에서 활동을 많이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가끔 집에있을 때나 비 오는 날은 그 단점이 배가 되어 느껴졌다. 게다가 코로나가 한참 때 밖에 자주 못 나가게 되니 TV에 나오는 테라스 있는 집이 너무 부러웠다. 주택으로 이사를 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주택으로 이사 갈 형편도 상황도 아니었다. 우리 아파트 제일 꼭대기 층에는 복층 구조로 옥상 테라스를 쓸 수 있는 탑층이 있는데 그 집이 자꾸 궁금해졌다. 마침 부동산에 우리 동의 탑층이 매물로 나왔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집을 보러 갔다. 집평수는 우리 집과 같아 내부는 특별할 게 없었는데 복층 다락방을 지나 옥상 테라스로 나가니 탁 트인 파란 하늘에 사과나무와 포도나무가 우릴 맞이했다. 옥상에 나무데크가 깔려있고 나무 데크엔 그네가 매달려 있었다. 그해에 우리 가족은 캠핑을 시작했는데 이 집으로 이사 오면 캠핑장에 갈 필요 없이 옥상에서 캠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정말 이상적인 집이었다. 하지만 같은 동에 33층탑층과 1층인 우리 집은 매매가가 2억 차이가 났다. 코로나였고 집값이 매달 상한가를 치고 있던 시기라 테라스가 있는 탑층은 귀한 매물이었기에 부르는 게 값이었다. 2억 차이의 가격에 놀랐는데 그것보다 더 걱정은 33층이라는 높이였다. 33층 옥상에서 1층 바닥을 내려다보니 아찔 했다. 고의로 뛰어들지 않으면 떨어질 일은 없겠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1층의 나무들이 너무 작게 보였다. 바람 불 때 집이 흔들리지 않을까 그런 걱정도 들면서 집이 너무 좋은데 우리가 33층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남편과 고민하는 하룻밤 사이 부동산에서 다른 사람이 그 집에 가계약금을 이미 넣었다고 했다. 배가 조금 아팠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그렇게 가고 싶던 테라스집이었는데 왜 33층이 부담스러웠을까 생각하니 우리가 1층을 좋아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땅에 닿아있는 느낌이었다. 발이 땅에 닿아있는 느낌. 1층에 살 때만이 알 수 있는 안정적인 느낌이 있다. 왜 어른들이 고층을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살고 있는 집에 대한 단점이 한번 보이기 시작하니 집에 정이 붙지 않았다. 아직은 발이 땅에 닿아 있다는 안도감을 포기할수 없어 결국 같은 아파트 다른 단지 1층으로 평수를 넓혀서 이사를 왔다. 새로 이사한 집은 지대가 높아서 현관으로 들어오면 1층이지만 거실에서는 앞동의 4,5층 정도가 되는 높이였다. 사생활 보호는 물론 채광이 좋아 오후 늦게까지 빛이 들어온다. 전에 느꼈던 치명적인 단점까지 보완이 되는 집이다. 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 식구에 맞게 리모델링까지 다 하고 들어와서 한동안은 이사 가지 못한다. 


가끔씩 그 33층의 사과나무와 포도나무가 생각나 아쉽기도 하지만 그와 대비되어 바닥을 내려다봤을 때 아찔했던 기억도 함께 생각난다. 나는 아파트 1층의 전도사가 되어 주위에 이야기한다. 1층에 살아보면 아마 다른 층은 못 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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