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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황 Jul 22. 2019

좋은 맥주를 고르는 방법

부디 좋은 맥주를 마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부터 맥주를 고르는 비법을 적어보려 한다. 맥주를 좋아한다면, 정독하시라.


대중선동에 관하여


애석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동당하기 쉬운 상태의 사회적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의 대학 진학률이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데, 그런 것 따위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시민을 길러내는 것을 완전히 유보한 사회라서 더욱 그렇다. 냉장하게, 민주주의나 선거는 그런 사회 성원과 집단의 선동 당하기 쉬운 기질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페이스북에 '친구'로 묶인 사람들이야 그렇지 않은 특이한 이들만을 선별해 구성됐기 때문에 거기에 모아둔 이들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깥으로 조금만 시야를 옮기면 도처에 그런 사람들이 널려있다. 그러니 태극기 노인들이나 문빠로 불리는 사람들이나 김어준-이상호 류의 음모론자 추종자들이 구성되는 원리는 기본적으로 같다. 누가 더 많은 이들을 선동해 자신의 지지자로 만드느냐가 이 세계의 가장 효율적인 정치적 전략이리라. 해서, 더 정교한 언어를 구사하며 이런 행태를 극복하려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비주류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언주에게 쏠리는 야권의 관심을 보라. 홍준표가 뭘 가장 잘했는지, 황교안이 저렇게 멍청한데도 살아남는 이유가 뭔지 곱씹어 보라.)


일본 대사관 건물에 차량으로 돌진해 방화를 시도하고 사망한 70대 노인 소식을 들었다. 이보다 앞서서는 일제 자동차들을 정비해주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주유를 해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보았고, 국내 거주 일본인의 집에 '쪽바리 사는 곳'이라는 혐오 메시지를 보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이전엔 매출이 떨어져도 일본 맥주를 팔지 않겠다는 마트협회의 선언이 있었고 취소 수수료를 감내하고 일본 여행을 가지 않겠다는 선언이 있었다. 유니클로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감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가 하면 예술의 전당 공연 도중 일본인 연주자에게 “쪽바리”라 외친 사람도 등장했다. 나열한 것들을 밟아보면 점점 어떤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이 가속도는 혐오의 가속도다.


일본이 잘못한 것들, 특히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친 제국주의적 만행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선이나 대한제국의 사람들이 덩달아 잘못한 것들 역시 확실하게 짚어야 한다. 이 일은 각국의 사관에 차이가 난다고 갈등을 빚을 일이 아니라 서로의 사관이 어떻게 뒤틀렸는지 인정하며 풀어내야 한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양국이 필요하지 않은 소모적 외교전을 펼치는 바람에 이 사회에 어떤 트리거가 작동했다. 그리고 그걸 민주당 등 주류 정치인들과 언론이 적극 이용해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 이 선동은 하나의 에너지로, 그들에게 실질적 지지, 즉 이득의 형태로 변환돼 동력으로 쓰일 것이다. 그들은 이 현상을 가속화한다. 항공 용어 중에 PNR이라는 용어가 있다. Point of No Return의 약자로, 한국어로는 귀환불능지점 혹은 회항불능지점이라고 한다. 대충 설명하자면 연료의 잔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지점을 뜻하는데, 이 지점을 지나치면 출발점으로 회항이 불가능하다. 최근 며칠, 청와대 민정수석 조국의 페이스북 발언들은 도를 넘어섰다. 이상태로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머지않아 회복 불능 지점을 지나쳐버릴지도 모른다.



불매운동과 민족주의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불매운동이라는 건 꽤 번거로운 운동이다. 일상과 포개지는 게 굉장히 많은 소비 활동에서 스스로 제한을 둬야 하고 그만큼 따질 것도 많다. 남양이나 삼성 불매운동이 미지근하게 지지부진하다 끝나곤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지금 일제 불매의 불가능성이나 한계점을 조롱하거나 지적하는 요소들-이를테면 아무도 몰랐던 일본 브랜드나 장비같은 것들.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것들-이 시시각각 등장하는 것 역시 그런 지점을 방증하는 것. 게다가 불매운동은 소비자 개인과 개인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집단화 되어야 하는데 이게 한국 규모의 집단에서 굉장히 어려운 거다. 노동자들이 <총파업> 집회를 토요일에 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평일 파업이 훨씬 파급력이 크겠지만 도무지 평일에 출근을 해야만 하는 각자의 사정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걸 민족이라는 고리 하나가 해결한다. 이 양상 자체가 굉장히 특별한 거다. 이 특별한 것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던져봐야 하는데, 나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기본적으로 전범 기업을 특정해 불매하는 형식도 아니고 지금 양상 자체가 일본 자체를 부정-거부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마당인데 이걸 문제적으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적어도 남양이나 삼성에 대한 불매는 운동의 성격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힘점의 작용으로 대상의 상태가 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 불매는 혐오를 기반으로 존재를 배제하며, 분명히도 <~할 때까지 불매한다>가 아니다. 존재의 다양한 층위를 모조리 소거하고 악으로 규정해 완전 배제하는 것, 그것이 파시즘이기 때문에 그 지점을 반드시 경계하고 지적해야 한다.


덧붙여 나는 불매운동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게 삼성이든 남양이든 전범기업이든. 불매운동이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듯 보여지지만 실제로 그 피해의 양상을 보면 자본가에게 그리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경우 엉뚱한 계층인 노동자가,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약한 고리로 해당 기업과 연결되어 있는 비정규직 혹은 파견직 노동자가 그 피해를 더 크게 입는다. 다시말해 자본가에게는 고작 스크래치를 노동자에게는 생존의 위협으로 번질 수 있는 심각한 결함을 내제하고 있는 것이 불매운동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불매운동은 추진되기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민족주의가 해낸다>면 이때 민족주의가 함유하는 것들과 이 현상의 징후들에 대해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 한국의 공교육 현장이 과연 민족주의를 비평할 수 있는 지식정보를 제공하거나 사고-비판능력을 키워주는가? 일단 그렇지 않기 때문에 대중을 민족주의로 선동하는 것은 그게 어떤 사안이든 위험한 것 아닌가? 게다가 민족주의는 반드시 파시즘과 만나 폭력을 잉태하게 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금, 이걸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상당한 직책의 인간이 부추기고 있다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이다.



나와 당신은 국가가 아니다


국가는 사회 구성원을 위해 존재해야 하지만 그 성원인 각각의 개인은 기본적으로 국가를 위해 존재해선 안 된다. 나와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형태로도 국가를 대표하거나 대변하거나 대리할 수 없다.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므로 더욱 그렇다. 나와 당신이 하는 그 어떤 일도 국위선양을 위해 기획되고 진행되지 않는다. 해서 나와 당신은 국격을 높이거나 깎을 수 있는 그 어떤 위치에 서지도 않는다.  나와 당신은 각자 개인으로 존재할 때 가장 찬란하게 존재할 수 있다. 국가가 이 명제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무언가를 위해 희생을 요구하려거든 국가는 나나 당신, 즉 개인을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해야 한다.


의무의 형태는 오로지 나와 당신이 사회의 형태로 맺어진 관계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의무에 관해 잘못된 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내용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국가에 많다면 이 국가는 개인과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를 근간으로 두고 있는 국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란 존재할 수 없다.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은 시대 착오적이다. 그들은 분명하게도 정치적-외교적 실수들을 연달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중을 선동해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민족주의를 이용해 인기몰이를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들은 나와 당신에게 "애국 아니면 이적"이라는 프레임을 들이대며 자신들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그 잘못된 프레임에서 벗어나시라. 당신이 무슨 맥주를 마시든, 어떤 옷을 입든, 어디로 여행을 가든 당신은 매국노가 될 수 없다.


좋은 맥주를 고르는 방법은 하나다. 본인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맥주를 고르면 된다. 다른 사람 눈치볼 필요 없다. 국가 차원의 눈치를 볼 필요는 더욱 없다.

자, 당신은 무슨 맥주를 마실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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