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놈만 패!

by 블록군

난, 한놈만 패!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오성의 대사다. 이 영화의 성공 이후로 이 대사는 많은 곳에서 회자되고 있다. 물론 영화가 나온지 20년이 지나서 이제는 잊혀진 감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브랜딩을 이야기 할 때 종종 언급되곤 한다.


이 대사에 브랜딩의 핵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잊혀진 전쟁 : 카카오톡 vs 마이피플

국내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두고 한판 벌였던 카카오톡(이하 카톡)과 마이피플(이하 마플)의 전쟁은 잊혀진 지 오래다. 물론 그 결과는 누구나 알고 있는 대로 카톡의 승리로 끝났다.


카톡이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초기 시장 선점과 이를 통한 네트워크 효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보다도 마플의 너무나 체계적인 전략이 실패 요인이라는 흥미로운 분석을 들은 기억이 있다. 어떤 컨퍼런스 행사에서 였다. 발표자는 실제 마플을 기획하고 전략을 진행하신 분이셨다. 그래서 그 내용이 더 깊게 와 닿았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랬다.


카톡은 2010년 3월에 출시 됐다. 마플은 2010년 9월말 출시 됐다. 카톡이 더 빨랐지만 그렇다고 마플이 엄청 늦었던 것도 아니었다. 안드로이드 앱은 카톡도 2010년 8월이 되서야 출시 했다. 마플보다 한달 빨랐을 뿐이다. 물론 초기 선점 효과가 있었던 카톡의 상승세는 무서웠다. 그래도 아직 초기 시장이었다. 마플에게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마플은 이런 카톡의 상승세에 제동을 걸고, 그들의 영향력을 키워야 했다. 런칭과 동시에 우위에 있었던 규모의 힘을 활용 했다. 소녀시대를 모델로 대대적인 마케팅 물량 공세를 펼쳤다. 카톡이 지원하지 않던 음성 통화, PC 버전등의 기능을 추가해 차별점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승자는 카톡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마플의 세분화된 전략이 주요 패인이었다. 마플의 연간 마케팅 로드맵은 촘촘 했다. 그 표만 보면 완벽에 가까웠다. 마플 전략팀과 광고 대행사 AP,AE가 열심히 마플과 카톡의 장단점을 분석해서 세웠을 것이다. 카톡에 없던 음성통화, PC버전등을 공략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경쟁사의 약점을 소비자에게 노출시키고, 우리의 강점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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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맵은 상세했다. 분기별로 하나의 기능 씩 공략하는 전략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1분기에는 이모티콘과 메신저 기능, 2분기에는 음성 통화, 3분기에는 PC버전 ..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모티콘과 메신저 기능에 집중하다가, 갑자기 음성 통화로 넘어간다. 지금도 기억 난다. 소녀시대가 나와서 '카카오는 말을 못해' 라고 하는 광고.


모바일 메신저를 사용하는 이유가 음성통화, PC버전 일까? 물론 이런 기능을 제공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알듯이 이런 기능은 중요도가 낮다.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당시 내 입장에서 카톡을 사용하는 이유를 집어 보면,

무료니까. 문자를 많이 쓰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무료는 마음이 편하다.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것이 편하고, 센스 있어서.

친구들이 쓰니까.

정도 였던 것 같다.


특히 가장 강력했던 것은 카톡의 이모티콘 이었다. 여자친구한테 답장을 할때도 단답한다고 혼나던게 한두번이 아니었었다. 그런데 이모티콘은 그런 문제를 해결했다. 굉장히 편했다. 점점 지인들과 카톡을 하면 이모티콘을 사용하는것이 기본인 분위기 였다.


마플 입장이라고 가정하고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보면,

우리(마플)는 카톡이 제공하는 기능은 모두 기본이예요.

거기에 카톡은 못하는 무료 음성 통화에 PC버전 지원도 해요. 이제 통화도 무료로 하고, PC에서도 빠르고 편하게 사용하세요.

라고 분석했을 것 같다.


마플은 후자에 더 무게를 뒀다. 적의 약점을 공략하는 방법이다. 내부적으로 정말 많은 고민 끝에 나온 전략일 것이다. 마플의 강점인 규모를 활용해서 카톡이 아직 못하는 것을 선제적으로 해결하고, 카톡보다 마플이 뛰어나다는 인식을 심고 사용을 유도하는 것이다.


개발사는 무료 메시지, 이모티콘, 무료 음성 통화, PC버전 지원등의 기능의 중요성이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선 무료 음성 통화나 PC버전은 메신저를 선택하는데 큰 요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모티콘의 매력이 압도적이었다. 이모티콘은 카톡의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 시켰다.


카톡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이모티콘의 힘이 컸다. 이모티콘은 새로운 톡 문화를 만들었다. 카톡은 마플처럼 소녀시대를 모델로 사용할 수도, TV광고를 대대적으로 할 수도 없었다. 어찌보면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이모티콘 이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이것이 전하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이미 지난 다음에 분석하는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그 안의 깊은 사연을 알 수도 없다. 두 서비스의 선의의 경쟁은 모바일 메신저 시장과 스마트폰 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만든것 또한 분명하다. 뻔할 수도 있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이 사례를 통해서 '우리 브랜드가 집중해야 할 단 하나' 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하나가 없다면,

계속 흔들린다.


1년동안 나름 브랜드(BLOCK)를 만든다고 만들어 왔다. 그리고 난 언제나 BLOCK에는 이 '단 하나'가 명확하게 자리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명확하지 못했다. 자리도 잡지 못했다.


슬로건을 만들때도 그랬다.


첫 슬로건은

BLOCK your today,
BUILD your tomorrow.

만들고 흐뭇했다.


멋진데!쿨해! BLOCK과 BUILD, today와 tomorrow의 구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 의미는 마치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해 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BLOCK의 가치가 뭐지? 집중 아니야! 그래 집중이 더 들어날 수 있도록 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두번째 슬로건은


your time is limited;

focus, focus, focus.


로 변경했다. BLOCK에 들어갈 명언을 살펴보다 스티브 잡스의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for other's life.. 에 끌렸다. 그 앞부분을 활용해서 변형한 것이다. 역시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또 바꿨다.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올리다 보니 한글로 그러다가 시간을 관리하지 마세요. 집중을 관리하세요. 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 말에 반응했다. 집중을 관리한다는 것이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활용했다.


don't manage time,

DO MANAGE FOCUS.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부끄럽고 한심하다.


도대체 무엇이 핵심인지 모르겠다.


난 그때 그때 멋져 보이는 것들을 생각나는데로 끄집어 냈을 뿐이다. 매번 바뀌는 슬로건, 메시지를 보면서 고객은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는가. 내 브랜드가 집중 공략해야할 핵심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단지, 멋지게만 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나.


깊은 자괴가 든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계속 흔들린다.


분명히 내 브랜드의 단 하나는 명확하다고..

착각했다.


BLOCK을 만들때는 집중을 관리한다는 생각이 명확하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많은 분들께서 집중보다 시간관리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게 됐다. 이어서 10분씩 관리할 수 있는 버전을 요청하는 분들도 많으셨다. 혼란 스러웠다. 어떤 방향이 맞을까. 내 처음 생각은 어땠을까? 되집어 봤다.

중요한 것은 이런 BLOCK의 핵심 가치를 쉽고 단순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바로 수많은 분이 그 가치에 공감하지 않아도 된다. 한분이라도 더 강렬하게 BLOCK의 가치를 깨닫고, BLOCK을 잘 쓰게 해야한다.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한분에게, 열분에게, 천분에게 서서히 스며들면 된다.

BLOCK이란 브랜드를 시작할때 분명히 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핵심을 잃어버린 경향이 있다.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뿌리를 깊게 내릴 생각은 못하고, 열매만 빨리 맺으려고 한 것이다.


BLOCK의 기본적인 생각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다', '집중할때 제대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많은 분들이 열심히 하는 것에 집중을 맞추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열심히란 단어의 뜻은 무조건 열심히와 같다. BLOCK은 집중할때 제대로 집중하고, 쉴때는 제대로 쉬자는 생각으로 시작한다. 그래야 오래할 수 있고, 꾸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본은 '단순함' 이있다. 목표도 단순하게 계획도 단순하게 실행도 단순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BLOCK을 만들때 부터 가진 생각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단순함'이 고객의 눈에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무엇보다 BLOCK을 열심히 사용해주는 분들은 대부분 '정말 열심히' 사용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내가 BLOCK을 만드는 철학이 그분들의 'BLOCK에 대한 기대'를 배신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2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많은 고객이 (어쩌면 그렇게 계속 사용해 왔기 때문에) 바라는 방향

내가 생각하는 브랜드 철학을 그대로 살리는 방향

문제는 내가 한 선택은 최악이었다. 1도 2도 아닌 1.5정도. 좌도 우도 아닌 그냥 중간을 선택한 것이다. 어쩔때는 복잡하게 어쩔때는 단순하게 쓰는 방식을 혼합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는 이 결정이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착각'했다.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었다.


당연히 고객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브랜드 북을 만들면서도 들어났다. 브랜드 북은 BLOCK의 핵심 철학인 '단순, 집중'을 알려준다고 만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내용은 복잡했다. 브랜드 북을 살펴보시고 오히려 혼란해 하는 분들도 많으셨다. 한달을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기대와는 완전히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또다른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는 바로 일의 양이 늘어나는 것이다. 명확하면 일의 양이 준다. 대신 집중한다. 가장 핵심 부분만 때리기 때문이다. 불명확하면 일의 양이 늘어난다. 바보같이 이때 '내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열심히만 하는 것은 BLOCK의 가치 정반대에 있는 데 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당연히 '브랜드 철학'의 부재였다. 아예 없다면 다시 만들면 된다. 그런데 있지만 갈대 같은 철학이었다. 철학은 갈대여도 된다. 하지만 브랜드 철학은 아니다. 브랜드 철학은 소나무여야 한다. 소나무 처럼 뿌리가 튼튼하게 땅속 깊이 박혀 있어야 한다. 비를 머금고 더욱 더 땅속 깊이 뻗어야 한다. 그래야 더욱 위로 가지를 뻗고, 맛있고 튼튼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 쉽겠는가.

생각만 해도 어렵고 고난하다.

긴 시간이 걸린다.


시작할때는 분명히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내 의지는 확고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쉽게 흔들렸다. 보다 쉬워 보이는 길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길은 금방 사라졌다.


나는 그래서 다시 고민한다. 처절하게 고민한다. BLOCK의 단 하나는 무엇일까? BLOCK의 단 하나의 가치는 '단순하게 집중에 집중한다' 이다. 모든 것은 이 가치의 뿌리 위에서 자라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BLOCK도 카카오톡 같은 브랜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그런 행복한 꿈을 상상한다.


자, 이제 한 놈만 팰 시간이다!
쫄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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