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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은 Jul 31. 2020

믿음을 가장 서먹한 곳에 두기

낯섦을 들여다보는 일

 우리는 서먹한 순간에 생기는 침묵을 감당하지 못한다.
김영민 작가님은 "침묵이란 단순한 발화의 부재가 아니라, 또 다른 낭독이자, 들을 수 있는 정적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들을 수 있는 정적이란 무엇일까?

 서먹함은 상대방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생기는 감정이다. 친한 사이라면 서로 어떤 말을 하지 않거나 정적이 생겨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에 서먹하지 않다. 오히려 정적이 편안함을 주기도 해서 서먹함의 정도에 따라 친한 사이를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주는 사람, 유독 쓰라린 부위에 상처를 주는 사람은 서먹하지 않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 상처의 흉기는 친하다는 믿음, 상대를 잘 알고 있다는 믿음으로 만들어진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믿음은 항상 위험하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최대한 아껴 써야 한다.

 믿음은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받으려고 하는 이기적인 생색이다. 한 번 그렇게 정해놓고 다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는 게으름이다. 누군가에게 투기한 믿음은 자신에게도 주지 못할 마음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오늘 하루에도 내 마음은 시시때때로 바뀐다. 이런 마당에 누군가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겠다는 마음이 게으른 강요처럼 들린다.

 오늘 만난 당신이 과연 내가 알던 어제의 당신이기만 할 수 있을까. 상대방의 낯섦을 보려고 하는 일. 그 낯섦을 느끼는 순간에 발생하는 침묵과 서먹함은 사려 깊다.

 살아내기도 벅찬 세상에서 믿음이 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분명 소중한 일이다. 그 소중함을 소중하게 다루려면 믿음을 간직해야 한다. 그럼에도 믿음을 어딘가에 내려놓아야 한다면 그곳은 서먹한 곳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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