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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은 May 04. 2020

둥글고 뾰족한 마음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

<곽재구의 포구기행>에서 이 구절을 읽고서 외로움도 혼자 보내는 시간도 귀하게 여겨 보기로 했다. 주말이면 혼자 카페에 가서 책도 보고 글도 쓰면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 누구에게도 연결되지 않은 채 고독에 침잠되는 시간이다.

고독감은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는 두려움과 해방감을 동시에 데려온다. 가족 친구 일 현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동떨어질 때, 주변 상황에 눈치 보느라 기죽어 있던 나의 목소리를 들어 볼 수 있다.

본인의 목소리에 자주 귀 기울일수록 주변 눈치 덜 보게 되지 않을까? 눈치라는 건 본인이 내린 답에 확신이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확신을 얻으려는 것이니까.

그러나 가끔씩은 침잠되는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해 우울해지기도 한다. 우울해질 수 있음에도 고독을 자처할 수 있는 건, 날 우울함에서 건져 올려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일등공신을 꼽자면 태윤이다. 오늘도 태윤이는 일등공신 다운 면모를 증명하며 저녁이나 먹자고 연락을 보내왔다. 밥보다는 술을 먹자는 속셈이겠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밥!"을 말하면 "술!"을 생각하는 우리만의 암구호로 만남이 성사됐다.

편한 사이라는 것은 서로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잘 알고 있는 사이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다른 점에서 본인이 부족한 점을 발견하곤 한다.

태윤이는 대담하고 진솔한 면이 있어서 직설적이다. 나는 그런 면을 뾰족한 부분이라고 부른다. 반면 나는 자기 보호적이고 이타적인 면이 있어서 우회적이다. 태윤이는 그런 면을 둥글한 부분이라고 부른다.

한때는 태윤이의 뾰족한 부분이 부담스러웠고 태윤이는 나의 둥글한 부분에 답답해했다. 요즘은 그런 점을 서로 잘 이해하기도 하지만 태윤이의 뾰족한 부분이 세련되어진 것 같다. 어느 상황에서는 배려에서도 불편함을 느끼고 소외감을 느낄 수 있음을 태윤이의 세련된 뾰족함을 통해서 배운다.

"언제 볼래?", "어디 갈까?" 둥글한 물음표보다 
"서늘한 저녁에 보자!", "샤로수길!" 뾰족한 느낌표를 보내오는 태윤이가 좋다.

둥글함은 한 발 물러서지만 뾰족함은 한 발 접근해온다. 나는 이 뾰족함을 믿고 마음껏 고독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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