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오취리는 왜 미움받을까
미움은 어디서 생겨날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누군가를 한 번도 미워하지 않은 적이 없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미워해온 걸 보면 미움은 삶의 원동력이라도 되는 것 같다.
내가 유일하게 보는 스포츠 경기인 월드컵을 볼 때면, 특히 우리나라가 지기라도 하는 날엔 반칙을 했던 상대방 선수와 그 날 컨디션이 안 좋았던 우리나라 선수, 오심을 내리는 심판, 패배의 전략을 짠 감독까지 그라운드 내에 모든 사람을 미워했다. 미워하기 위해 경기를 보는 것처럼.
정치를 잘 몰라도 옳고 그름에 판단이 없이 정치가를 미워했다. 연예계 가십거리와 스캔들에는 여론이 피해자와 가해자 나누면 혀를 차며 가해자를 미워했다. 뉴스는 누군가를 미워하라고 끊임없이 보도자료를 내보내는 듯하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왜 이렇게 미워하기를 잘할까.
얼마 전 샘 오취리가 대중들로부터 욕을 먹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짓을 하지 말자, 미움받을 일을 하지 말자는 말로 인해 미움을 받게 되었다. 그의 발언에 여러 가지 관점으로 논의되는 말들이 있었지만 대중의 흐름은 미워하는 것으로 결정지어졌다.
우리가 품는 감정에서 미움이 가장 쉽고 어려운 감정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정확하게 미워해본 적이 없다. 대부분 쉽게 결정 내버린 마음이었다. 평소 축구에 관심도 없었으면서. 정치에 관심 갖기 귀찮아서. 다른 사람의 아픔에 감정 이입하기 피곤해서. 나에게도 죄가 없는 게 아니라서 누군가를 미워했다. 죄책감을 연료 삼아 미움을 활활 태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움은 부끄러운 것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정 반대다. 좋음은 부끄럽게 말하고 미움은 당당하게 말한다. 당당한 미움은 쉽게 뭉쳐진다. 다른 사람의 죄책감이 모이면 미움은 더욱 활활 탄다. 미움은 그렇게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미움이 된다. 죄책감의 소각장에서 재가 되어 남는 것은 혐오뿐이다.
미움의 연료가 죄책감이라면 미움은 어디서 시작될까. 미움은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미워하려면 먼저 좋아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미워하는 건 무관심에 가까울 테니까. 좋아하는 게 먼저고 그다음 기대가 생길 것이다. 기대가 상실되면 상실의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미움으로 바뀐다. 미움의 첫 모습이 좋음으로 시작되어서 미움받는 것이 더 아픈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우린 아무도 미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공자의 말에 따르면 미움에 눈감으면 어느새 불의와 손잡게 되거나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삶에서 미움을 떼놓을 수 없다면 정확하게 미워해야 한다. 미움이 방어기제가 되지 않으려면 정확하게 미워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