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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은 May 18. 2020

아낌을 아끼지 않는 마음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집을 나섰다. 침대에서 머리가 띵하지 않을 때까지 '두(頭) 낫띵'하고 싶었지만 고모와 점심 약속이 있었다. 술을 늦게까지 먹은 내 잘못인걸 알면서도 약속이 야속했다. 숨에서 술냄새가 풍겼다. 마스크를 썼기 때문에 나는 숨에 다시 취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만나서 샤부샤부를 샤샥 먹고 루지를 타기 위해 강화도로 출발했다. 고모는 아끼는 사람에게 대화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고모부가 운전하는 동안 고모는 조수석에서 대화를 흐름을 조종했다.


고모부는 운전하다가 같이 나누고픈 풍경을 발견할 때면 '저기 갯벌 좀 봐봐!'라고 감탄하는 대신, 고모에게 '자기야 바닷물이 원래 여기까지 들어오는 거지?'라고 넌지시 물어본다. 그러면 고모는 섭섭지 않게 감탄을 쏟아내며 맞장구친다. 고모가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는 걸 고모부는 잘 알아서 아는 것도 물어본다.


이번에는 우리 모두가 운전대를 잡고 루지를  탔다. 고모는 조수석에서만 운전을 잘해서 경주장 그 누구보다 속도를 아끼며 루지를 몰았다. 그렇게 타면 무지 지루할 것 같았는데, 고모는 충분히 만족해하는 표정이었다. 3분이면 내려올 거리를 고모는 10분이나 걸려서 내려왔다. 어찌 보면 고모는 거기서 가장 오래 즐거웠다.


고모는 헤어지기 전에 집 가서 먹으라며 바지락 사과 토마토 이것저것들을 아끼지 않고 내 가방에 가득 채워 넣었다. 고모가 아낀 것이라곤 나 밖에 없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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