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길을 찾아서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꿈일까."
얼마 전 JTBC 음악 프로그램 비긴어게인에서 god의 '길'이란 노래로 무대를 선보였다. 출연자 모두 소절을 나눠 불렀는데 크러쉬는 유독 감상에 젖어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무대가 끝나자 참았던 감정은 끝내 눈물이 되어 흘렀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눈물을 흘린 이유를 밝혔는데, 데뷔 이후 처음으로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길인가?' 노래 가사처럼 자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정상에 오른 그도 본인의 길이 맞는 길인지 고민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도 god의 길을 듣는다면 눈물이 날까.
간만에 지인 정구형을 만나 책을 베개 삼아 누워 밤하늘의 별을 봤다. 마치 옛날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듯 우리는 별 아래서 자신이 찾고 있는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원하는 게 있으면 손을 펴는 대신 손에 쥔 것을 떠올린다. 위험을 감수하지 못해 도전적이지 못한 내 삶, 나는 그 길을 걸으면서 너무 많은 반성을 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반성했지만, 모두 나의 우유부단함이 문제라고 결론지었더니 자책감만 실컷 얻었다.
"빠르게 도전하고 빠르게 실패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커피회사 대표의 인터뷰를 보고서 나는 빠르게 뜨끔했다. 배울 점은 실패한 뒤에야 얻을 수 있고 그것으로 더 나은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빠르게'를 두 번이나 반복해 말해서 '도전'보다는 '빠름'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만 같다.
"너 나름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있어."
이번엔 정구형이 내게 해 준 말이다. 나는 어느샌가 안전한 도전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안전함과 도전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양립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물불 가리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들을 우러러보느라 보지 못했던 나를 돌아본다. 나는 꽤 안정적인 일상에서 빈틈을 찾아 자기 계발을 하고 있다. 자책감을 잊기 위해서가 아닌 나름의 최선인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도전, 나만의 길은 무엇일까.
돌아가는 길도 길이다. 최정상급 가수도 본인의 길이 맞는지 물을 만큼 수 없이 많은 길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쩌면 애초에 정답처럼 주어진 '맞는 길'이라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두 다리는 목적지만 있다면 빙 둘러갈 수도 있는 꾸준함을 겸비했다.
실제로 나는 지하철을 탈 때 잘못된 길로 가는 경우가 많다. 짜증은 나지만 그래도 언제나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