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에서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라."라는 제니 홀저의 말을 읽었을 땐, 길을 걷다가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발이 걸린 것 같았다. 내가 무언갈 간절히 원할 때 그렇지 않은 현실이 나를 잃게 만들곤 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제니 홀저처럼 나를 보호할 여유가 넉넉하지 않다. 현실과 괴리 앞에서 나는 줄곧 간절히 원하는 것임에도 '원하지 않는다.', '싫다'라고 되뇌며 나를 부정하는 주문을 외웠다.
아침에 이를 닦으며 본 혀에는 설태가 잔뜩 껴있었다.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하려면 낯짝이 두꺼워야 하듯이 나를 부정해온 진실의 혀에는 설태가 두껍게 껴 있을 것이다. 칫솔로 혀를 벅벅 닦았다. 나를 보호하는 진심이 헛구역질처럼 나오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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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정구형이 몸보신을 하라며 전복죽 기프티콘을 선물해 줬다. 나에겐 '죽'은 아픈 날에만 먹는 음식이라 생경했다.
그동안 죽의 존재를 과소평가해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아프지 않은 날 죽을 먹어보기로 했다. 주말 아침,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배가 고파져서 본죽으로 향했다. 혼밥을 해본 적은 많지만 혼죽은 처음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포장을 해갔지만 의외로 커플들이 매장에서 죽을 시켜 먹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둘 중 누군가는 아픈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프지 않으면서 죽을 먹는다는 게 어색해서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사회 초년생 때는 월급이 다가오는 시기에 항상 돈이 부족했다. 감기에 걸렸는데 골골대며 버티다가 결국 몸살에 걸려버렸다. 정말 안 되겠다 싶어 약국에서 감기약을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죽을 살까 했지만 돈이 궁해서 사지 못했다. 빈속에 약을 삼켰더니 속이 쓰렸다. 죽기 살기로 일해도 죽조차 사 먹기 어려운 내 처지를 생각하니 속이 더 쓰렸다.
아프지 않은 날에 먹는 죽은 간이 심심하다. 배가 고파서 반찬까지 추가해가면서 허겁지겁 뜨거운 죽을 먹었다. 식당을 나올 때에는 뜨거운 죽 때문에 입안이 얼얼했다. 맑은 하늘에서 따뜻한 바람이 느릿느릿 불어왔다. 아프지 않은 날이라서, 아프지 않은 시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얼얼한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