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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은 Apr 28. 2020

어쩔 수 없음을 사랑하기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무리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먼 훗날엔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앞으로 나아가겠지란 기대가 있었다. 게으름을 마치 내 삶을 좀 먹는 죄악으로 규정해버리고 목표치만큼 무리하지 못한 날에는 스스로에게 자책하는 채찍을 날렸다. 피곤해야지만 안도했던 날들이다.

문제는 만족할 만큼 무리한 날보다 죄책감을 느끼는 날이 더 많아서 스스로에게 미움받게 돼버렸다. 목표치만큼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간 나는 인정했지만 제자리에 있거나 뒷걸음친 나는 부정했다. 나 자신과 불화 속에서 난 이상적인 앞모습만 있고 현실적인 뒷모습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란 책을 보게 되었다. 저자의 가치관은 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는 것. 죽음 가까이서 삶과 시간의 유한함을 생각해 보면서 자신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인생의 굴곡을 수용하는 법을 경험하게 된 것 같다. 책에서 임경선 작가는 말했다.

"어떤 것들은 그냥 어쩔 수 없고, 있는 그대로 꿀꺽 삼키고 갈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것대로의 '어쩔 수 없음'을 사랑하기로."

어쩔 수 없음을 사랑한다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은 내가 그토록 혐오해왔던 것이다.

"후회란 우리가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했다고 믿는 어떤 행위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이다."

에티카에서 스피노자는 후회를 유아적인 감정이라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느끼고 판단하는데 세계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믿는다. 후회는 불행한 일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릴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결국 후회라는 슬픔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유아적인 태도를 벗어나야 한다.'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와 현실을 인지하는 것, 나의 뒷모습까지 인정하는 것이 성숙한 감정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음을 사랑해보기로 한다. 나의 뒷모습에게 화해를 신청하며 기쁘게 맺은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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