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주야?
그러게. 하고많은 국내외 여행지 중 왜 제주였을까? 코로나19로 인한 여행 규제도 풀려 해외여행도 비교적 자유로워졌는데.
우선 머니머니 해도 돈이지. 사회초년생으로서 모아놓은 돈은 많지 않았고 비행기표 가격은 코로나19 전에 비해 2-3배가 올라 덜컥 결제하고 떠나기엔 여행 다녀온 후의 내가 너무 비참했다. 누구나 쉽게 자주 가고 나 또한 잠깐 살았던 일본은 누구나 여행 가기 까다로운 나라가 되었고 그렇게 가고 싶던 유럽과 미국의 비행기 값은 경유편마저 백만 원 단위가 되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제주로 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인이라면 심신이 지쳤을 때 훌쩍 떠나기에 좋은 곳이다. 김포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떠나 도착하면 푸른 바다와 초록색의 자연이 환하게 맞이하고 있는 곳이니까. 2017년 마지막 제주여행을 다녀온 뒤로 TV나 SNS에 제주의 오름들이 많이 보였다. 산보다 고도가 낮아 오르기 쉬우나 오르고 나면 마을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져 상쾌할 것 같았다. 꽃보다는 초록잎, 나무를 사랑하는 나에게 더없이 좋을 자연이고 걷는 걸 좋아해 무척 궁금했다. 투명한 바다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면 왜 떠나왔는지도 궁금할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비자발적 퇴사를 당했다. 간단하게 말해 다니던 회사에서 잘린 것이랄까...? 신입사원으로서 수습기간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다 딱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대표님께서 재계약 연장 의사가 없다고 구두 통보하셨다. 몇 시간 뒤엔 메일로도 확정 통보받았다. 그 말을 들은 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손이 떨렸다. 눈물은 사치 같아서 구직사이트를 뒤졌다. 이 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말씀하신 재계약 연장 불가 사유는 회사와 내가 잘 맞지 않고 실수가 많다는 것. 그리고 마케팅은 무엇이든 간에 피드백이 중요한데 나는 피드백이 없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니 받아들였다(인정이 빠른 편). 하지만 3개월 중 2개월만 보고 판단하시다니!!! 원통하고 억울했지만 이미 결정 내리신 거니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있나. 그렇게 6월 한 달이 고통스러웠다. 가족들에게는 차마 못 말한 채 하루하루 꾸역꾸역 일했고 다른 분들이 실수해도 내가 뒤집어쓰고 소비자와 소통해야 함이 답답하고 치가 떨렸다. 그렇게 어디든 가서 나라도 내 마음을 달래줘야겠다 싶어 제주행 비행기표를 훌러덩 예약했다.
7월에 일주일간 다녀온 제주는 꿈만 같았다. 애초에 이런 맛집/카페는 꼭 가야지! 여긴 무조건 가야돼! 하는 욕심도 없었고 그저 눈이 탁 트이는 풍경 속에서 마냥 걷고 싶었다. 왜 그리 걷고 싶었는진 모르겠지만 하염없이 걷고 마음 가는대로 움직이다 보면 한 달간 화나고 억울하고 서럽던 내 마음이 눈녹듯 사라지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되었다. 걷다보니 차를 타면 볼 수 없는 작지만 소중한 풍경들도 보고 맑은 날씨를 내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어깨 쪽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탔지만.. 일주일 여행 중 마지막 이틀은 경차를 렌트하여 걸어다닌 일이 많이 없긴 했지만 이 때도 동행과 함께 시간을 보내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됐고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일주일간 세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세계가 열렸고 내가 한 모든 경험들을 사랑하게 됐다. 그들이 나누어 준 위로와 조언들은 나에게 힘이 되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열려 정체되어 있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해한다. 특히 여행을 다닐 때 종종 겪는다. 예전에 외국어를 배울 때도 느낀 건데 언어에는 그 나라의 문화나 관념이 담겨 있어 언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사고관, 자세, 행동방식도 함께 습득하게 돼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게스트하우스와 처음 보는 낯선 이와의 여행을 즐기는 이유는 서로 살아온 세월동안 쌓인 경험, 가치관, 직업 등을 공유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내가 기존에 생각 못 했던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물론 친한 친구들, 가족과의 여행은 익숙한 관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편하다. 하지만 가끔은 혼자 다니다가 즉흥적으로 낯선 이와 대화를 나누어 서로의 이야기와 경험을 교환한 채로 여행을 마치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너무 행복하고 벅찬 마음에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