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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Jan 27. 2024

안전망 구축하기

#11 [경보] 행동요령 (1)

 날이 춥다. 재난문자로 한파주의보가 종종 뜬다. 한파주의보 기준은 다음과 같다.

[10월~4월에 다음 중 하다에 해당하는 경우]

① 아침 최저기온이 전날보다 10℃ 이상 하강하여 3℃ 이하이고 평년값보다 3℃가 낮을 것으로 예상될 때
② 아침 최저기온이 -12℃ 이하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이 예상될 때
③ 급격한 저온현상으로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  

[네이버 지식백과] 한파주의보/한파경보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그렇다면 한파경보는 어떨 때 내려질까?

[10월~4월에 다음 중 하다에 해당하는 경우]

① 아침 최저기온이 전날보다 15℃ 이상 하강하여 3℃ 이하이고 평년값보다 3℃가 낮을 것으로 예상될 때
② 아침 최저기온이 -15℃ 이하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이 예상될 때
③ 급격한 저온현상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  

[네이버 지식백과] 한파주의보/한파경보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수치의 차이 또한 있지만, 눈에 띄는 것이 있다. 3번. 급격한 저온현상으로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와 급격한 저온현상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 이를 자살충동에 비유하면 어떻게 적용될까. '중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과 '광범위하게 중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 이를테면 충동에 의한 위험한 행동 이후 찾아오는 금전적, 인간관계적 피해가 '광범위하게 중대한 피해'이지 않을까.



내가 나를 말릴 수 없다면


 만약 당신이 [경보]에 있는 상태라면, 나는 얘기하고 싶다. 자기 자신을 믿지 말라고. 이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은 하기 힘들다. 행여 합리적이라 생각이 들지라도 보다 합리적 선택권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폐쇄병동에 있던 당시 죽음을 꽤나 합리적 선택이라 여겼다. 그러나 치료를 받으며 알았다. (완벽하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 외에도 다른 길은 충분히 있다는 것을.


 그러나, 왜 우리는 충동에 휩싸이는가. 이 부분에서 이전에 다룬 <'죽고 싶다' 속에 숨은 마음 찾기>를 참고해 보기 바란다. 지금 중요한 것은 충동을 지나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기고 이 고통을 흘려보내야 한다. 나를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그렇기에 우리는 [경보]를 대비해야 한다.

안전망 구축하기다.



안전망 구축하기


 안전망 구축하기는 [경보] 상태에서 시행되는 것보다 [경보] 상황을 대비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을 집중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그만큼이나 절박하다면) 적극적인 안정망 구축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면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24시간 적극적으로 나를 보살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경우가 대부분이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런 소중한 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안전망 구축하기 단계에서 내가 충동을 대비해 경험했던 방법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안전망 구축하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일상, 장소, 사회. 일상에서 안전망, 장소로서 안전망, 사회에서 안전망. 이외에도 자신만의 안전망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 안전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일상에서 안전망 만들기 (1)

1. 위기 상황시 연락할 수 있는 사람(가까운 친구, 지인 등)과 연락 혹은 만남을 가진다.

2. 자신의 현재 상태를 솔직하게 전달하고 위기 상황 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미리 알려준다.

3. 연락할 수 있는 시간대를 상대에게 묻고 약속을 정한다.

4. 위기 상황이 왔을 때(혹은 올 것 같을 때) 약속한 상대에게 연락한다.


 위의 상황을 예시로 적어본다. 나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 가끔씩 실신하는 경우가 있다. 자살 충동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실제로 내 가까운 사람은 내 공황 상태를 보고 크게 놀라곤 한다(그래서 미리 일러둔다). 그럴 때 나는 나에 관한 설명서를 만들어 상대에게 전달했다. 마치 영화 조커에서 '웃음이 멈추지 않는 병이 있다'는 명함을 들고 다니듯 공황 상황이 오면 연락할 보호자의 전화번호와 약은 어디에 두는지 등을 적어 가까운 사람에게 미리 전했다.

 자살충동의 대처 또한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기 마련. 이럴 때 '내가 죽고 싶다고 하면 병원에 데려다 달라'거나 '가족이 있는 집으로 데려다 달라'라고 명확하게 미리 제시한다면, 그대로 상대 또한 부담이 적다. 보호자가 보호하기 힘든 사람이라면 믿을만한 사람에게 '이수연은 이런 상태이니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맡겨버리기도 했다. 한 명이 한 명의 삶을 책임지는 것은 버겁다. 그러나 여럿이라면 그 짐은 나눌 수 있다. (나 사용 설명서는 다음 편에 자세히 다룰예정이다)


일상에서 안전망 만들기 (2)

1. 상담치료 / 정신과 치료를 받는 치료자가 있다면 응급 상황 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묻는다.

2. 응급 상황 시 연락할 수 있는 번호, 대처방법 등을 논의한다.

3. 응급 상황 외 치료자와의 약속을 지킨다.


 물론 위의 방법을 쓰기 위해 '치료자'가 있어야 한다. 앞서 [주의보] 상태에서도 치료를 받으라 말했기에 [경보]의 경우 치료자가 있다는 전제로 시작했다. 나의 경우 응급상황시 연락할 수 있는 응급실 번호가 저장되어 있고(치료자와 논의 후 알려주었다), 자살충동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치료자와 충분히 의논했다. 응급실을 통해 병원에 오면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지까지. 치료자마다 다를 수 있지만 DBT(변증법적 행동치료) 치료를 받고 있다면 응급 행동 이전에 상담사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고 심리상담이라면 일정을 조율할 수도 있다. 응급상황 외 치료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응급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과 치료관계를 위해서이다.


장소로서 안전망 만들기

1. 치료자에게 응급 상황 시 찾을 수 있는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을 미리 소개받는다.

2. 응급 상황 시 충동이 지날 때까지 사람이 많은 곳에 있는다. (병원, 쉼터, 카페 등)


 장소로서 안전망은 응급실이다. 단, 알아야 할 것은 응급실은 꼭 자해를 하기 전에 방문해야 한다는 것. 많은 사람이 이미 행동을 한 후 눈을 뜨면 응급실이다. 행동을 한 이후는 늦다. 늦기 전에 먼저 찾아야 하는 곳이 응급실이고, 그렇기에 치료자에게 미리 병원을 소개받는 것이 좋다. 사정을 알고 있다면(의료기록이라도) 처치 혹은 상담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응급 상황에는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있지 않는다. 누군가 곁에 있도록 하거나(누누이 말하지만 이 상황은 내 힘으로 어렵다.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무도 곁에 있을 수 없다면 최소한 사람이 많은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좋다.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위기쉼터도 장소적으로 안전하나 전국에 3곳(2023.11 기준) 뿐이다. 지역적으로 쉼터의 필요성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안전망 만들기

1. 각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락하여 복지사와 상담, 치료 보고를 한다.

2. 자살예방상담전화 109를 이용한다.

3. 지역구 내에서 공동체, 자조모임에 참여한다(단 치료 자조모임의 경우 교육받은 사람이 진행하는 곳으로 선택)


 사회에서 안전망 중 가장 확실한 것은 지역마다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다. 모임을 진행하기도 하고 행사도 있으며 사회복지사 분들의 도움을 받아 치료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거동이 어려운 경우 방문상담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가까운 동네에 한 번씩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결속감이 생긴다. 자살예방에서 사회의 역할은 중요하다.


 2024년 통합된 자살예방상담전화 109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응급 상황 정도에 따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전에는 자살예방 전화가 나뉘어 있어 상담원 연결이 어려운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지역구에서 공동체 모임을 가지는 것도, 사회적 활동(봉사)이나 자조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자조모임의 경우 자살유가족 자조모임, 알코올 중독 자조모임 등이 있는데 모임을 진행하는 시설이 공인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아쉬운, 그러나


 개인적인 마음으로 장소와 사회의 안전망을 더 확보할 정보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지역 자조모임의 경우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목적이 회복이 아닌 경우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고, 위기쉼터도 전국구에 3곳 밖에 없으며(3곳도 운영이 어렵다고) 유일하게 정신응급진료실을 운영하는 국가병원도 코로나19로 인해 제한적으로 운영되었다(현재는 다시 운영 중이라고 확인됐다).


 그러나 일상에서 안전망은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다양한 치료관계,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없더라도 괜찮다. 하나둘 만들어 나갈 수 있으니까. 우리가 모든 충동을 지나 돌아가야 하는 곳은 그들의 곁이다. 끝에 섰을 때 손을 잡아준 이들.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4번 / #5번 도움 요청하기를 참고하길.






오늘의 숙제는 나만의 안전망 적어보기


-일상에서 안전망 :

-장소에서 안전망 : 

-사회에서 안전망 : 


※숙제 : 지금 내가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안전망 3가지 적어보기

※심화과정 : 도움 요청하기와 죽고 싶은 말속 마음 찾기 복습


#11_자살 충동 매뉴얼 / 안전망 구축하기_[경보] 행동요령(1)


*현 자살예방을 직시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 표현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새 연재물로 매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24년부터 자살예방 전화가 109로 통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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