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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Jan 13. 2024

감각 찾기

#9 [주의보] 행동요령 (1)

 자살 충동 [주의보]에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머릿속에 '자살'이라는 단어가 단단히 박혀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애써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충동이 튀어나올 것 같다. 하지만 병원을 찾기에 현실적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현실적 판단은 가능한 것이다. 물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스스로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충동 때마다 누군가를 찾아 헤맬까, 하는 걱정이 든다.


 충동이 들지만 안전한 상태(누군가 곁에 있음, 자해 도구가 없음, 인지가 온전하고 판단이 가능함 등)라면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해볼 수 있는 일이 몇몇 있다. 오늘 소개하는 것은 '감각 찾기'. 자살 충동뿐 아니라 우울감이나 불안의 감정을 다스리기 좋은 방법이다.



오감을 활용해서 부정적 생각을 진정시키기


 감각 찾기의 첫 번째. 오감을 통해 부정적 생각을 진정시키는 방법이다. '건포도 명상'이라고 불리는 감각 찾기는 '마음 챙김'을 바탕으로 한 명상치료기법이다. 개인적으로 건포도보다 아몬드를 좋아해 '아몬드 명상'을 한다. 꼭 건포도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냉장고에 있는 건강한 재료를 꺼내 명상을 해보면 어떨까.


건포도 명상

1. 건포도 한 알을 손에 쥐고, 나와 건포도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기

2. 음식의 모양, 색, 향, 촉감을 느껴보기

3. 입에 넣되 씹지 않고 입안에서 굴리면서 어떤 느낌인지 알아보기

4. 천천히 씹으면서 음미하고 맛과 씹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기

5, 씹히지 않을 만큼 작아진 건포도를 천천히 삼키기

6.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건포도로부터 받는 느낌에 집중하기


 건포도 명상의 포인트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건포도를 이리저리 살피다 '내가 이런 걸 왜 하고 있지?'라는 현타가 와도 '아,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구나'정도로 생각한 뒤 다시 집중하는 게 포인트다. 건포도를 모르고 삼켜버려도 마찬가지다. '삼켜버리다니! 역시 난 안 돼!'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삼켰구나'라며 나의 상태를 인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인정하고 생각을 덧붙이지 않는 것!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낯선 땅 이방인> 소설에는 '공증인'이라는 직업이 있다. 공증인은 '본 것 만을 얘기하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A건물에서 낮은 B건물의 지붕이 흰색으로 보인다면 "A건물에서 B건물은 지붕은 흰색으로 보인다"라고 말한다. 소설 속 공증인은 "B건물 지붕은 흰색이다."라고 하지 않는다. 그건 보이지 않는 '판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건포도 명상은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공증인'의 시선으로 보는 일이지 않을까. 보이는 대로. 있는 그대로.



기분 좋은 감각 찾기


 나는 예민예민 초예민으로 태어난 사람이다. 어느 정도냐면 신체에 느껴지는 감각에 과부하가 올 정도다. 심신이 약해졌을 땐 예민함이 폭발한다. 모든 감각기능을 끄고 싶을 정도로. 그때 상담 선생님이 숙제를 내줬다(오늘 당신에게 줄 숙제이기도 하다). 바로 '기분 좋은 감각 찾기'.


기분 좋은 감각 찾기 

1. 당신이 좋아하는 / 당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촉각은 무엇인가요?

2. 당신이 좋아하는 / 당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청각은 무엇인가요?

3. 당신이 좋아하는 / 당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후각은 무엇인가요?

4. 당신이 좋아하는 / 당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시각은 무엇인가요?

5. 당신이 좋아하는 / 당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미각은 무엇인가요?

* 각 5가지 이상 떠올리고 적어보기


 그렇다. 우리의 감각이 모두 '기분 나쁜' 감각은 아니다. 분명 좋아하는 감각이 있기 마련이다. 기분 좋은 감각을 상상하며 하나둘 채워나가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금 좋아하는(혹은 편안한) 감각을 가지기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보인다.


 나의 경우 눈 밟기, 구운 아스파라거스, 찬 바람에 따뜻한 담요를 덮는 걸 좋아한다. 숲 냄새도 좋다. 탁 트인 전경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뻥 뚫린다. 이 얘길 들은 상담 선생님은 밝게 얘기했다. "캠핑을 해 보시는 건 어때요??" 상상도 못 했다. 캠핑을 해본 적 없는 나는 캠핑을 사랑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다음에 캠핑을 도전하겠다고 했다.


 또한 걷는 감각을 좋아하는 나는 충동이 있거나 기분이 우울하면 일단 걷는다. 물론 이상한(?) 곳으로 가지 않기 위해 주변에 내가 가는 행선지를 분명하게 말한다. 말하는 것만으로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울면서 지인을 찾아간 적도 있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걷기'를 기동력으로 이용해 만날 수 있는 사람에게 찾아간 것이다.



스쿼트 / 플랭크로 감각 찾기


 앞서 나는 감각이 예민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 예민함이 끝으로 가면 뇌는 신호를 끊어버린다. 이 말인즉슨, 모든 감각이 멀어지고 내가 숨을 쉰다는 것도, 살아있다는 감각도, 언어적 기능도 상실한다. 나는 이 상태를 가사상태에 가깝다고 말한다. 물음을 받아도 언어로 들리지 않고 '소리'정도로만 인식이 되며 말도 할 수 없는 상태. 점점 먹먹해지는 감각들. 이때는 감각을 깨워야 한다. 바로 스쿼트로!


스쿼트로 감각 찾기

1.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려줍니다. 이때 발끝은 살짝 바깥쪽을 향하게 선다.

2. 허리가 꺾이지 않도록 중립을 유지한 뒤 고관절을 접어주신 다음 무릎을 굽힌다.

3. 엉덩이를 뒤로 뺀다는 생각으로 앉아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틴다. ( 허리가 말리지 않도록 복압을 잡고 있어야 한다. )

*무릎이 너무 앞으로 나가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요추가 과신전 되거나 말리지 않도록 중립을 유지해야 합니다.
*앉는 자세에서 고관절을 사용해 주셔야 무릎과 허리의 부상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상담에서 추천받은 행동이다. 투명의자 자세로 견디다 보면 감각이 깨어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바보 같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스쿼트를 할 정신이 없지 않나 싶어서. 그런데 어느 날 감각이 멀어지는 징조를 캐치한 나는 속는 셈 치고 스쿼트를 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다리가 뻐근하고 덜덜 떨리면서 몸의 감각기관이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었다. 비록 혼자 스쿼트를 하는 내 모습은 초라해 보였지만, 멍하고 찜찜한 그 상태보다 훨씬 나았다. 게다가 감각이 돌아온 이후에도 다리가 뻐근해서 자해를 하지 않고 아픔(?)을 얻을 수 있었다.


 리스트컷의 경우 대안책이 몇몇 있다. 빨간펜으로 살 위에 그림을 그려보거나 고무줄을 튕겨 감각에 자극을 준다거나. 스쿼트 역시 감각의 자극을 긍정적으로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스쿼트가 너무 쉽다면 플랭크를 추천한다. 1분도 견디기 힘든 플랭크 자세를 유지하다 보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며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1분의 위대함을, 느끼는 것이다.


다음화에서 [주의보] 2차 행동요령을 알아보자.


당신은 할 수 있다.

지금이 그 터널 끝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숙제는 기분 좋은 감각 5가지씩 찾아보기다.


*촉각 : (예시 : 겨울의 찬 바람, 고양이 쓰다듬기 등)

*청각 : (예시 : 바람소리 , 장작 타는 소리 등)

*후각 : (예시 : 피톤치드향, 라일락 향 등)

*시각 : (예시 : 별이 많은 밤하늘, 탁 트인 시야 등)

*미각 : (예시 : 신선한 상추, 어릴 때 자주 가던 백반집 등)


※숙제 : 기분 좋은 감각 5가지 이상 찾아보기

※심화과정 : 건강한 방법으로 충동을 조절해 보기


#9_자살 충동 매뉴얼 / 감각 찾기_[주의보] 행동요령



*현 자살예방을 직시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 표현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새 연재물로 매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24년부터 자살예방 전화가 109로 통합되었습니다. 1(한 명의 생명도) 0(자살 zero) 9(구하자)


@suyeon_lee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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