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 유지원 ‘첫사랑, 여름’
더위가 내 몸을 짓누를 때면 생각나는 건 다가올 겨울도 아니고 회사의 에어컨도 아니고. 습기 빠진 공기 안에서 그저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던 어느 때 여름만 떠오른다. 햇빛이 내 목덜미를 쏘는지도 모르고 달렸던 그때.
첫사랑, 여름
후덥지근한 교실의 여름과 절정의 여름,
레몬향이 넘실거리는 첫사랑의 맛이 나
햇살을 받아 연한 갈색으로 빛나던 네 머리카락,
돌아갈 수는 없어도 펼치면 어제처럼 생생한,
낡은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단편 필름들.
열아, 밖에서 차 덜컹거리는 소리 안 들려? 하는 네 물음이 열기에 뭉그러져
이방인의 언어처럼 들리던 때 (아냐, 사실 그거 내 심장 소리야 너를 보면 자꾸 덜컹거려 이제 막 뚜껑을 딴 탄산음료처럼 부글거리고 자꾸 톡톡 터지려고 해)
솔직해지기는 부끄러워 그렇네 간단히 대답하고 말았던 기억
말미암아 절정의 청춘, 화성에서도 사랑해는 여전히 사랑해인지
밤이면 얇은 여름이불을 뒤집어쓴 채 네 생각을 하다가도
열기에 부드러운 네가 녹아 흐를까 노심초사하며,
화성인들이 사랑을 묻거든 네 이름을 불러야지 마음먹었다가도
음절마저 황홀한 석 자를 앗아가면 어쩌지 고민하던
그러니 따끔한 첫사랑의 유사어는 샛노란 여름
「2018 제26회 대산청소년 문학상 중등부 시 부문 동상 수상작」 첫사랑, 여름 - 유지원 (서울 동국대 사대부중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