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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some Day to Eat Oct 07. 2018

[김건의 밥투정] 쟈크 풀러

마네킹처럼 먹기

혼밥에 익숙하다. 아마 대학교 입시 준비 중 홀로 다니던 논술 학원에서 끼니를 알아서 먹어야 했던 게 처음일 것이다. 처음에는 눈치 덜 보이는 학원 건물 밑 버거킹에서 배를 채우는 느낌으로 먹었지만, 차츰 익숙해져서 막판에는 주변 식당들을 한 번씩 탐방하듯 즐겼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는 종종 주변인과 약속을 잡기보다는 홀몸으로 식당에 가곤 하는데 최근에 와서는 휴학을 하고 또 이 연재를 하게 되면서 혼밥을 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외식할 일은 많아졌는데 사람 만나는 횟수는 줄어들었으니. 혼자라는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한 내가 최근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내가 비슷한 가격대의 식당에 가도 혼자일 때 인당으로 따지면 더 많은 돈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이것에 대해 여러 가설을 세워봤다. 일행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 일행이 있을 때 으레 쓰게 되는 식후의 디저트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 등으로 그럴듯하게 나를 변호해 보려 했지만 분명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반영되었다는 슬픈 결론에 도달했다.


두 번째는 며칠 전의 식사 때문이었다. 여건이 안 좋았다. 주말 저녁의 한남동은 붐볐고 회의를 마친 나의 행색은 너무나 초라했으나, 집까지 가서 밥을 먹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쟈크풀러라는 가게에 들어갔다. 현대카드 스테이지 뒷골목에 있는 이곳은 골목 입구에 있기도 하고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입구가 인상적이어서 전부터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이 글의 악역이다!

늦은 시각이어서 혹여 마지막 주문을 이미 받은 게 아닐까 했지만, 다행히 아직은 영업 중이었다. 가게 내부는 넓지는 않았지만 깔끔히 트여있었고 벽에는 팝아트를 생각나게 하는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걸려있었다. 가게에 대해 알아보고 간 것은 아니었으나 개성 있고 현대적인 감성의 요리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가게 한쪽에는 채 돌도 안 지나 보이는 하룻강아지가 바 테이블 밑의 자기 침소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실례이기도 하고 녀석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차마 쓰다듬어 주지 못했는데 그게 가게를 나설 때 가장 아쉬웠다.  

글을 정리하면서 메뉴에 펩스터 블루 리본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항상 먹고 싶던 맥주였는데..

잠시 가게를 둘러보고 별생각 없이 창가 쪽에 앉았다. 그리고 그게 그날의 가장 큰 실수였다. 전체적인 메뉴의 컨셉은 이탈리안이 가미된 아메리칸 정도이지 않았나 싶고 인테리어처럼 각각의 메뉴에서 뻔하지 않은 개성이 느껴졌다. 그 중 주문한 메뉴는 트러플과 고르곤졸라로 만든 맥 앤 치즈였다. 마카로니에 치즈가 들어간 소스를 끼얹어 만드는 이 요리에서 고르곤졸라를 쓴다는 것은 무척 생소하게 느껴져 기대됐다. 보통은 훨씬 ‘미국적’인 치즈를 쓰지 않나. 그 맛은 확실히 맥 앤 치즈에서 연상하는 맛은 아니었다. 보통 생각하는 맥 앤 치즈만큼이나 느끼했지만 따라오는 스파이시함이나 짭짤함은 덜 느껴졌고 대신 고르곤졸라와 트러플의 향이 무언가 꼴꼴하다고 표현할만한 풍미를 냈다. 전형적인 맛을 기대했다면 약간 실망했을 수도 있지만, 그 꼴꼴함은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치즈를 듬뿍 끼얹은 모든 요리가 그렇듯 목이 막혀오기 시작했고 탄산음료를 한 잔 추가해 천천히 식사를 이어나가던 도중∙∙∙.

중간중간 가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창밖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시선의 끝이 나를 향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가게 앞은 경사가 져 있어 내가 앉은 자리보다 길의 위치가 높아서 약간 내려 보이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고 원래도 별수 없지만, 그날따라 머리 모양이나 옷이 별로인 것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혼밥 할 때의 당당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게다가 강아지는 쓸데없이 귀여워서, 그 녀석 덕에 사람들의 이목이 가게에 더욱 자주 쏠렸고 그때마다 창피함이 점점 나를 짓눌렀다. 스물다섯쯤 먹었으면 사라질법한 사춘기의 자의식 과잉이 도진 것이다. 게다가 음식마저 무거워서 빠르게 먹고 사라질 수도 없었다. 끌고 있지도 않은 관심을 어떻게든 피하려 묵묵히 식사에만 열중하는 척했다. 그렇게 사십 분 가까이 혼자만 아는 마네킹 놀이를 하다가 귀가했다. 


셰프는 실력 있어 보였고 음식도 흥미로웠고 가게도 맘에 들었지만, 그날 식사는 힘겨웠다. 6년여간 구축한 혼밥에 대한 자긍심은 그날 통유리 앞에, 시선의 높이에, 하룻강아지에게 완벽히 패배했다.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글을 마칠 때쯤이 되니 저녁때가 되었다. 오늘도 혼자 먹게 생겼는데, 이번엔 이길 수 있을까.          


 ★★★ 하루가 특별해지는 식사

★★☆ 좋은 식사

★☆☆ 평범한 식사 

☆☆☆ 최악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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