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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고요 Dec 13. 2022

신발이 사라졌어요.

A는 날마다 4시쯤 땀에 흠뻑 젖은 앞머리를 하고 나타난다. 앞머리와 함께 보이는 동그란 눈망울은 언제 마주쳐도 기분이 좋다.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온 A는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전화를 써도 되는지 묻는다. 날마다 쓰는 전화인데 매번 양해를 구한다. 슬쩍 넘어가는 법이 없다.

-엄마!

하루종일 얼마나 부르고 싶었을까. 몇 시간만에 불러보는 엄마라는 말 속에서 반가움과 안도감이 느껴진다. 조금 있으면 우리 아이들도 순서대로 전화를 할 것이다. 이런 모습이겠구나 상상해보고는 한다.   

A는 엄마와 간단하게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시간 알려주지 않아도 돼?

-네. 괜찮아요.

A는 평소처럼 긴 의자에 다리를 올려 쭉 뻗고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신발이 없어졌어요.”


신발이 있어야 할 곳에 신발은 있었다. 문제는 딱 한 짝 뿐이라는 것이었다. A가 신고 온 신발 한 짝과 비슷한 신발 한 짝이 있었다. 같은 브랜드의 같은 디자인이지만 사이즈가 살짝 달랐다. 보기에도 둘은 짝이 아니었다. 한 짝은 너무 새 거였고 한 짝은 너무 헌 거였다.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보았다. 가끔 신발이 문 밖에 있는 경우도 있었다. 기대와 달리 문 밖에 신발은 없었다. 물론 신발장에도 없었다.


-음…누가 짝짝이로 신고 간것 같은데? 조금 기다려볼까?

-네, 6시까지 있을 수 있어요. 아빠 오시기로 했어요.


신발을 벗고 이용하는 도서관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일 중 하나가 ‘신발분실’이다. 어린이도서관, 작은도서관은 어린 아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바닥을 온돌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집처럼 편안한 자세로 책을 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누워서보고 둘러 앉아서 보고 엎드려서볼 수 있다. 기어다니는 아기를 둔 어른들도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수 없이 뒤섞이는 신발 속에서 자기 신발을 찾지 못하는 어린이 이용자도 많고 신발이 분실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전에 근무했던 B도서관은 2층으로 된 어린이도서관으로 도서관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했다. 늘 신발장이 모자랐다. 더 많은 신발을 수납하기 위해 신발장을 없앴지만 신발 분실이라는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버젓이 자기 신발을 가방에 넣고 남의 신발을 신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분실된 신발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6시.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신발을 잘못 신고간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A의 아빠도 오시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당직을 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퇴근했다.


다음 날, 출근해보니 카운터 위에 신발 한 짝이 올려져있었다. 신발 위에 메모지가 2장 붙어있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남긴 글이었다. 아버님께 신발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안내를 드렸다는 것과 안내문을 부착해주기를 바라신다는 내용이었다. 부랴부랴 안내문을 만들었다. 도서관 게시판과 신발장에 한 장씩 붙였다. 홈페이지 대신 사용하는 네이버밴드에도 <신발을 찾습니다> 안내문을 올리려고 하다가 멈칫 생각이 스쳤다.


자기 발에 꼭 맞게 변한 신발, 누군가에게는 그 신발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내문에 담고 싶었다. 신발이 바뀌지 않도록 조금씩 더 조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담고 싶었다. 비슷한 내용이 담긴 그림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신발이 분실되는 과정도 중요했다. 현실에서도 실수로 신발을 바꾸어 신고 간 어린이와 가족이 이 글을 볼 수 있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발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를 바랐다. 다행히 고른 책 속 신발은 강물에 떠내려갔다.    


어느 날, 라라는 세상 그 어떤 신발보다 멋진 신발을 만났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반짝이 신발> 안나 워커 그림, 제인 고드윈 글, 신수진 옮김, 모래알


선생님 저 신발 찾았대요!


잃어버린 신발과 전혀 상관없는 아이들이 소식을 먼저 알려왔다.

-저거 떼어버릴까요?

신발을 찾는다는 게시물을 떼어 내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서로 신발을 잘 바꿔신을 때까지 붙여두자.

아직 신발 한 짝은 도서관에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신발을 찾았을까?

날마다 오는 A는 오늘따라 도서관에 오지 않았다. 그래도 서로 신발 이야기를 했다니 다행이었다.


4시쯤…한 아이가 카운터 앞에서 우물쭈물 말을 아꼈다.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을 돌아 아이에게 다가갔다.

-신발 돌려주러 왔어요.

-그래? 다른 신발이 많이 불편했지? 네 신발 여기 있어.

B는 자신의 발에 맞게 모양이 잡힌 그 신발에 발을 쏙 집어넣었다.


5시쯤 늘 그렇듯 땀에 젖은 앞머리를 한 A가 도서관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저 신발이요.

-그래, 신발 담아갈 거 있어?

-아니요. 근데 괜찮아요 들고 가면 돼요.

신발을 한 손에 움켜쥐고 도서관을 문을 열고 내달렸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더 젖겠구나.


어떻게 내 신발을 알아보았을까


N도서관에서 일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세밀화 작가를 모셔 책 만드는 과정을 나누고 나뭇잎도 그려보는 행사를 기획한 적이 있다. 대상은 의심없이 10살쯤 되는 아이들로 생각했다. 관장님과 행사 기획안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관찰력이 뛰어나요.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 어른들 대상이면 더 좋지 않을까요?

 행사는 어른들이 나뭇잎을 관찰하며 세밀화를 그리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신발을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의문이 풀리지 않았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이들의 관찰력, 그 보배같은 눈이 정답인 것을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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