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서고요 Dec 14. 2022

자꾸 물어보아도 괜찮아



“왜 어른이 확인해주어야 해요? 내가 빌려가고 내가 돌려줄 건데."


엄마 회원증으로 책을 빌려보던 수정이에게 본인 회원증을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원칙상 본인 회원증만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정이는 바로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하겠다며 핸드폰을 켰다.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회원가입을 할 수 있으니 집에 가서 하면 좋겠다는 의견에 수정이가 던진 대답이다.


“왜 어른 동의가 있어야 해요? 책 잃어버리지 않고 잘 돌려줄 수 있어요. 나도 책임질 수 있어요.”


“갑자기 비가 와서 책이 젖거나 시골집에 놓고 올 수도 있잖아. 그럴 때 누군가는 도와주어야 하니까. “


수정이는 알겠다는 얼굴로 핸드폰을 껐다. 도서관 안내 리플릿 속 회원가입 부분에 크게 동그라미를 치고 ‘등본’이라고 크게 적었다. 수정이는 등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수정이 이름과 주소가 나오는 서류야. 주소 확인을 해야하거든.”


“왜요? 왜 주소가 필요해요?”


“학교에서 세금 배웠지? 이 지역에 있는 살고 있는 주민이 낸 세금으로 도서관을 운영하니까. 이 지역에 있는 사람은 요기 도서관,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은 그 지역 도서관을 이용하는 거야.”


도서관 안내 리플릿에 그려진 지도를 함께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수정이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이제야 궁금증이 다 풀렸다는 듯 리플릿을 가방에 넣었다. 엄마 동의받아서 내일 다시 온다고 했다.



어릴 적 나는 수정이처럼 질문이 참 많은 아이였다. 이모들은 내가 사사건건 왜냐고 묻는 통에 지쳐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내향적인 성향때문인지 자라면서 사람에게 직접 질문하는 습관은 사라졌다. 대신 책을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서로 첫 발을 내디딘 도서관에서 만난 어른들은 나보다 더한 궁금증 소녀들이었다. 도서관 한가운데 손바느질로 만든 커다란 물음표를 걸어두고 당연한 것을 낯설게 보자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다시 질문을 쏟아냈다. 당장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해도 두고두고 곱씹으며 나만의 대답을 찾아갔다. 그런 질문을 모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관련 주제의 자료를 모아 큐레이팅을 했다. 나는 그렇게 성장했다.


그래서일까. 수정이처럼 질문을 쏟아내는 어린이를 보면 참 반갑다. 아이가 내뱉는 질문이 자신을 그리고 주변을 얼마나 성장시킬지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된다. 시간만 되면 차 한 잔 두고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이들은 학원 일정 때문에 서둘러 나가야 하는 경우가 참 많다.)



다음 날, 수정이가 다시 도서관에 왔다.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다 했다며 등본을 내밀었다.


“회원카드 다 만들어지면 저한테 전화 주세요. 저는 엄마보다 빨리 올 수 있어요.”

수정이는 주머니에서 껌 하나와 새콤달콤 하나를 꺼내 주었다.


「질문 빈곤 사회」(행성 B)에서 강남순 저자는 좋은 질문은 우리의 호기심을 흔들어 깨우면서 보다 나은 나의 삶,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방식을 모색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한다고 말했다.


세상의 수많은 수정이들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이어가며 질문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그만 좀 물어보라고 핀잔을 주는 어른도 만나고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할 때도 많겠지만 그럴 때마다 책이 더없이 좋은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나 또한 다짐한다.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답해주는 어른이 되자고. 그리고 다정한 것을 낯설게 보고 질문을 던지는 내가 되자고.


수정이가 선물한 껌에서 나온 단물을 삼키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어린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4시 30분에 알려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