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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리는 강선생 Apr 03. 2024

K-컬처의 중심, 대한민국 서울

익숙한 서울을 낯설게 바라보기

서울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서울은 경복궁을 비롯하여 옛 한양 도성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면서, 한편으로는 K-드라마의 배경이 되고 K-Pop이 탄생한 세계인들에게 성지와도 같은 곳이죠. 이처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과거 600년의 역사와 현재 K-걸쳐의 중심으로서의 매력이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도시이지만 세계인들에게는 가장 여행 오고 싶어 하는 도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로 떠나봅시다!



1. 서울의 진짜 중심


서울 여행의 시작은 잠실 석촌호수에 위치한 삼전도비에서 해 봅시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청나라 태종이 조선의 왕 인조에게 항복을 받은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입니다. 석촌호수는 현재 잠실 롯데월드 매직 아일랜드를 품고 있는 호수이지만 과거에는 한강의 본류인 송파강의 일부였습니다. 송파강이 잠실의 남쪽에 있었으니까 잠실은 강북이었던 셈이죠. 그러다 조선 중기 큰 홍수로 한강이 넘치면서 새롭게 하천이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새로운 하천이라는 뜻으로 '신천(新川)'이라고 불렸고, 이는 현재 2호선 잠실새내역의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대동여지도에서 강북쪽에 위치한 잠실(빨간 원으로 표시)
한강 개발 이전과 이후의 잠실 변화


강북이었던 잠실은 1970년대에 비로소 강남이 됩니다. 한강 개발을 하면서 신천의 폭을 넓히는 공시를 했고 본류였던 송파강은 메워집니다. 과거 강이 흘렀던 곳의 지반이 튼튼하기 어렵겠죠. 잠실에 롯데타워가 공사가 한창일 당시 싱크홀에 의한 피해 위험이 높다는 기사가 쏟아졌던 것이 그 이유입니다. 잠실은 그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누에고치를 키우던 한강변의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 한강 개발을 시작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었고, 1980년대 올림픽 주 경기장, 롯데월드와 백화점이 건설되며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잠실 롯데타워


그렇다면 서울의 중심은 어디일까요? 전통적으로 서울의 중심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구였습니다. 서울의 한가운데 위치한 중구에는 지금도 대기업 본사와 금융 기관을 포함한 중심업무기능이 밀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서울의 중심은 점점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50억 뷰를 기록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의 배경이기도 한 강남은 넓게는 한강의 남쪽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강남구를 중심으로 양쪽의 서초구, 송파구를 포함한 강남 3구를 통칭합니다.


2호선을 타고 강남역으로 가봅시다. 강남역은 동서로 뻗어있는 테헤란로와 남북의 강남대로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강남역에서 나오면 삼성 본사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강남구에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의 본사와 이러한 대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 광고, 부동산 등 부가 가치가 높은 서비스업이 모여 있습니다. 또한 강남의 지가는 매우 비싸기 때문에 이곳의 주민들의 소득 또한 높습니다. 그에 따라 강남에는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업이 분포합니다. 강남은 상업 기능과 주거 기능이 고도로 발달된 서울의 진짜 중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강남역의 출퇴근 시간 모습, 뒤편에 삼성타운의 모습이 보인다.


강남역에서 신논현역까지 이어진 강남대로를 걷다 보면 좌우에는 영화관, 어학원, 카페, 음식점 등 다양한 상업 시설이 빽빽합니다. 한국에 첫 선을 보이는 외국의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가 1호점을 이곳 강남대로로 선택하는 데는 이곳에 많은 유동인구가 밀집한다는 점과 더불어 강남의 상징성도 한몫합니다. 출퇴근 시간이 되면 분당, 판교, 동탄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로 붐빕니다.



2. 서울의 확장이 시작된 곳


신논현역에서 9호선을 타고 서쪽 등포로 향합니다. 영등포는 서울이 4대 문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확장한 곳입니다. 강남의 옛 지명이 영동인 이유도 강남이 영등포 동쪽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노량진역에 잠시 내려 점심으로 컵밥을 먹었습니다. 현재 노량진은 공무원 시험 학원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까지 노량진은 포구였습니다. 그러다 1899년 경인선 개통과 함께 인천과 서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교통은 발달하게 되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서울이 확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강 바로 건너편에 용산역이 위치하고 있는 노량진에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리면서 학원이 발달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노량진 학원가는 인터넷 강의의 발달로 과거 명성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노량진을 상징하는 컵밥거리, 노량진의 학생들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영등포가 개발되면서 한강의 하중도 여의도 역시 발전하였습니다. 국회의사당과 주요 방송국들 여의도에 터를 잡았고, 다수의 은행과 증권사가 입지 하면서 여의도는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여의도 63 빌딩은 롯데타워가 건설되기 전까지 서울의 대표적 랜드마크였습니다.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이 거주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면서 상업 시설도 함께 발달했죠. 물론 지금은 많은 방송국들이 상암 DMC로 이전했고, 아파트 단지 노후화와 강남의 부상으로 여의도의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영등포는 아직까지 서울의 부도심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좌) 대한민국 국회, (우) 국회에서 바라본 여의도 금융가

서울에서 유일하게 공업이 발달했던 곳, 구로 디지털 단지로 향했습니다. 현재 구로 디지털 단지는 IT, 전자, 출판 등 다양한 기업들이 입지 해 있는 곳이지만, 과거에는 수많은 여공들이 미싱을 돌리며 구로 공단으로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확장 지가 상승으로 많은 공장들이 안산, 시화로 이전하면서 서울의 공업을 상징하며 노동 운동의 성지와 같던 구로 공단은 쇠퇴하였니다. 지가가 저렴한 구로 공단 옛터로 점차 중국 출신 조선족들이 이주하며 이곳은 중국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변화하였습니다. 구로 디지털 단지역에서 대림역 쪽으로 걷다 보면 도림천을 경계로 확연하게 다른 경관이 나타납니다. 하천 좌측에는 높은 현대식 빌딩들이 있고 우측에는 마치 중국 도시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보입니다. 서울 속 작은 중국, 대림동 차이나타운에서 대륙의 분위기 가득한 점심 식사를 해봅니다.

(좌) 구로 디지털 단지, (우) 대림동 차이나 타운


3. 서울에서 가장 힙한 곳은?


서울에서 가장 힙한 동네는 어디일까요? 서울의 새로운 중심 강남, 최근 뜨고 있는 성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최신 유행과 젊음을 상징하는 곳은 홍대와 이태원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너 홍대입구역에 내렸습니다. 홍대는 좁게는 홍익대학교와 그 주변 상권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합정, 상수, 망원을 포괄하는 곳으로 근처에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다수의 대학교들이 위치하고 있어서 힙함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입니다.

최신 유행과 젊음의 상징이 된 홍대거리


홍익대학교는 과거부터 미술대학이 유명했습니다. 그 덕분에 패션과 유행에 민감 한 젊은 세대들이 많이 몰렸습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밴드 공연과 클럽 문화가 시작된 곳 역시 이곳 홍대였습니다. 젊음과 예술이 가득한 곳인 만큼 홍대는 외국인들이 나이트 라이프를 즐길만한 장소로도 부족함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가장 유행하는 음식점과 SNS에 올릴만한 이색적인 카페가 가장 먼저 생기는 곳 역시 홍대입니다.

노래 제목이 된 이색 카페 '몽마르뜨 언덕 위 은하수 다방'


하지만 그만큼 홍대의 지가는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처음부터 홍대에 거주하던 젊은 대학생들과 예술가들은 더 이상 이를 지불할 여유가 없어졌고, 점점 저렴한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홍대대의 정체성을 만든 주인공들이 홍대에서는 살 수 없게 된 것이죠. 이와 같이 상업 시설의 확대로 땅값이 상승하면서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이 바깥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과정과 문제점


서울의 또 다른 힙스터의 성지 이태원으로 향했습니다. 이태원 역시 홍대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 활발하게 나타난 곳입니다. 이태원에 도착하면 거리마다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과 세계 곳곳의 다양한 음식이 가득합니다. 이처럼 이태원에서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 미군 용산 기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처 용산 기지의 미군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 본토 스타일의 음식점과 상점들이 생겼고, 그로 인해 미군뿐만 아니라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이곳 이태원으로 몰리게 된 것입니다.

힙한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모이는 이태원


이태원의 시작점이 된 용산 미군 기지가 있던 곳을 찾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기지가 이전하였지만 오랜 기간 미군들이 거주하면서 남겨놓은 흔적을 잘 보존해 두었습니다. 미군 가족들이 살던 주택의 정원을 지나 주택 내부도 들어가 봤습니다. 집안 벽에는 이곳에서 살던 미군들이 용산에 대한 추억들을 새겨놨습니다. 영어로 된 표지판과 영화에서 자주 봤던 미국 스타일의 거리를 걷다 보면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미국 도시를 연상케 하는 표지판과 주택
용산 미군 기지 주택 내부 벽에 새겨진 추억


국군재정관리단의 옛 명칭에서 유래한 경리단 길로 향했습니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음식을 이색적인 인테리어와 분위기에서 맛볼 수 있는 경리단길은 곧 유명해졌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리자 경리단길은 홍대와 마찬가지로 지가가 가파르게 상승했고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했습니다. 경리단 길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배경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온 K-드라마 팬들이 이곳을 성지순례 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저 역시 주인공 박새로이와 조이서가 대화를 나누던 남산이 바라다보이는 육교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봅니다.

남산 야경을 바라보는 이태원 클라쓰의 두 주인공 (녹사평 육교)



4. 서울의 과거로 떠나봅시다!


현재 서울의 중심이 강남이라면 과거 한양의 중심은 종로였습니다. 종로는 조선의 왕이 거주하던 경복궁의 남쪽에 위치한 광화문으로부터 동서로 뻗어있는 길입니다. 새해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보신각이 있는 곳이기도 하죠. 종로에는 나라에서 독점하던 여섯 가지 물품, 육의전을 팔던 시전 상인이 자리를 잡았던 곳입니다. 자연스럽게 상업이 발달하였고 한양 상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종로의 모습, 안쪽의 좁은 골목이 피맛골이다. (‘피마’(避馬)는 말을 피한다는 뜻으로 서민들이 양반의 행차를 피하기 위해 이용하였다고 한다.)


종로의 중심지 기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입니다. 일제는 조선의 중심지였던 종로가 아닌 남산의 아랫자락에 새로운 중심지 혼마치를 만들었는데 이는 현재의 명동입니다. 명동에는 미츠코시 백화점이 위치했고, 그 당시 최신 유행을 선도하던 모던 뽀이들이 양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저도 명동 거리를 걸으면서 100년 전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최초의 백화점인 미츠코시 백화점 경성점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나서도 명동의 중심지 기능은 여전했습니다. 광복 직후 명동 일대 거리 이름을 충무공 이순신을 따라 충무로로 변경하였습니다. 충무로 일대에는 다수의 기업 본사와 자본이 유입되었고, 그에 따라 많은 지식인들이 이곳으로 모였습니다. 충무로가 한국 영화의 중심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이곳 명동, 충무로 일대는 강남 개발이 본격화된 1980년대 이전까지 서울의 중심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영화의 중심지였던 충무로


낮에는 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명동은 그러나 밤이 되면 한적해집니다. 사람이 가장 많아야 정상인 저녁 10시에 영업을 중단하는 치킨집도 많습니다. 명동, 충무로 일대의 중구는 과거부터 주거 기능보다는 상업 기능이 발달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는 낮에는 사람들이 북적이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저녁이 되면 한적해지는데 이를 인구 공동화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서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현재 서울의 인구는 940만 명으로 1100만 명에 육박하던 1990년대 초반보다 많이 감소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교통의 발달과 수도권의 확장으로 서울의 영향력이 오히려 확대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앞으로도 서울의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은 더욱 증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실 서울이 직면하고 있는 재개발과 지가 상승, 젠트리피케이션과 양극화와 같은 현상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도시의 문제입니다. K-컬처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대한민국을 함축하고 있는 서울의 영향력 또한 올라갈 것입니다. 서울은 600년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최신 유행이 공존하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인왕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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