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지리교사인 나는 세계지리 수업을 할 때 '교통, 통신의 발달과 세계화' 단원을 가장 먼저 가르친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9년 전 춘천에서 여수까지 걸어갔던 도보여행 썰이다.
2012년 6월, 스스로 창업한 회사를 나 스스로 그만뒀다. 29살,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조금은 무모한 퇴직 결정 이후 솔직히 좀 막막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강했다. 강남역 5번 출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수인계를 끝마치고 짐을 챙기고 나오는 길, 우연히 인터넷으로 기사를 봤다. 제목은 '요즘 뜨고 있는 노래,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저 노래를 여수 밤바다를 직접 보면서 들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마침 이제 백수도 됐고 시간도 많으니까 여수를 걸어서 가보면 어떨까?' 하는 미친 생각이 들었다. 출발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20대를 온전히 보낸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춘천!
생각이 든 순간 바로 실천에 옮겼다. 아무리 강렬한 결심도 며칠만 지나면 서서히 녹슬어 버리니까. 2호선을 타고 강변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고, 버스표를 끊으며 동시에 춘천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그날밤 친구와 밤새 술을 마셨고, 다음날 새벽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지금 이 순간은 지금 단 한번뿐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여행의 이름은 '내 생애 단 한번'으로 정했다.
밤새 술 마신 후 출발하면서 친구가 찍어준 사진
타오르는 태양과 햇빛 알레르기, 쏟아지는 폭우와 관절염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21일 만에 무사히 전라남도 여수에 도착했다. 걷는 동안 무수히 많은 식당과 카페, 편의점, 치킨집을 갔는데 다행히 단 한 번도 우연히 '여수 밤바다'를 듣지 못했다. 그 결과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여수 밤바다를 보면서 들을 수 있었다.
'춘천에서 여수까지 걸어가서 여수 밤바다 듣기' 누가 보면 거창한 목표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별 시답지 않은 목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목표를 달성한 후에 잠시 현타가 왔다. 왜냐하면 3주 동안 너무도 뚜렷하고 강렬한 목표를 갖고 있었는데, 정작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까 역설적으로 목표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의 마지막 순간, 도보여행을 통해 걷는 그 자체가 얼마나 짜릿하게 행복할 수 있는지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뚜렷하다고 생각했던 인생의 목표가 마구 흔들리던 20대 후반, '목표가 뚜렷하다면 그 중간중간 발생하는 문제는 그냥 풀면 된다'는 당연하지만 명확한 진리를 얻을 수 있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800km 도보여행의 기록이 영상으로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종종 수업 시간에 이와 관련해 썰을 풀 때도 당시의 느낌과 기운을 최대한 생생하게 늘어놓긴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퇴색되어 가는 기억과 사진 몇 장으로 그 뜨거웠던 경험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내 생애 단 한번'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2012년 여름의 기억이 말 그대로 기억 속에만 남아있기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수업 중 썰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로 했다.
하지만 글도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공중에 떠다니는 말을 손에 잡히는 글로 변환하는 작업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글은 디테일한 묘사 면에서 썰보다 분명 나은 점이 있었지만, 생동감 측면에서는 오히려 글보다 떨어졌다. 그렇다고 9년 전으로 돌아가서 다시 영상을 찍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떠나기로 했다.
사실 9년 전 도보여행에서 강원도,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까지 걸었지만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만 빼놓고 걸은 것이 내심 아쉬웠었다. 그래서 도보여행을 끝마친 후 작성한 후기에서 조만간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고성에서 부산까지 걷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 후 나는 서른이 되었고, 결혼을 했고, 지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들에 적응할 틈도 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9년 전의 약속은 점점 희미해졌다. 어느새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20대 청년에서 30대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힌 후, 소파에 누워 여행 유튜버들의 여행 영상을 보고 있다가 문득 9년 전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때보다 나이는 10살 가까이 늘었고, 체중은 20kg도 넘게 늘었다. 20대의 나는 날카로운 눈빛의 배고픈 늑대였지만, 서른 살의 나는 졸린 눈에 하품을 하는 배부른 사자였다.
이래서는 안 된다! 스크린 속 고프로를 손에 들고 걷고, 뛰고, 웃고, 노래하는 저 여행자들의 행복한 미소를 갖고 있던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의 약속을 지키자! 다시 떠나자!
출발지는 우리나라의 북쪽 끝 고성 통일 전망대로 정했고 도착지는 부산 해운대로 정했다. 거리를 네이버 지도로 대략 계산해 보니 700km 정도가 나왔다. '하루에 40km 정도 씩 걸으면 17일이면 완주하겠네?'같은 ENTP 스타일의 계획도 나름 세웠다. 물론 숙소 역시 미리 예약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무계획적인 인간으로 보이겠지만, 이렇게 두리뭉실한 계획이 2주 이상의 여행에서는 오히려 유연하게 계획을 변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고 아무런 계획도 하지 않으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대략적이라도 계획을 세우는 행위 자체가 구체적인 실천에 이르게 하는 강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실천에 강한 동기가 되는 대략적인 계획
아무런 준비 없이 배낭 하나 메고 떠났던 '춘천-여수 도보여행'과는 다르게 이번 도보여행은 꽤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한 여름 작렬하는 태양을 온목으로 받으며 걸어보니 나는 햇빛에 무척이나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햇빛을 받으며 조금만 걸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긴다. 그래서 팔과 다리를 햇빛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쿨토시 2쌍을 준비했다. 그리고 목과 얼굴을 햇빛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일명 '양봉 스타일'의 선캡도 준비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은 이 선캡은 걷는 내내 정말 최고의 도움을 주었고, 이번 여행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던 최고의 잇템이었다.
유튜브 영상에서 수없이 칭찬했던 양봉 스타일
도보여행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발바닥의 물집을 걱정하지만, 3일 이상 연달아 걷다 보면 의외로 물집보다 무릎관절이 훨씬 더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릎과 발목 보호대를 미리 준비했다. 또한 걷는데 정말 중요한 트래킹화도 구매했다. 트래킹화의 이름은 해파랑 T1500, 내가 이번에 걸을 고성에서 부산까지의 길의 이름도 해파랑길이다.
아이더의 해파랑 T1500
그 외에도 폭염 속을 걷다 쓰러지지 않도록 준비한 식염포도당과 배낭 뒤에 써붙인 '내 생애 단 한번 2021 여름' 현수막도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준비물은 바로 이번 여행을 떠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 영상 촬영을 위한 고프로이다!
출발일은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인 2021년 7월 16일! 출발 전 마지막 수업이 마침 여행지리 수업이었다. 이제 곧 있으면 수능 원서접수를 하는 고3 학생들에게 왜 이 폭염 속에서 도보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를 겪고 있는 고3 제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하는 진심을 담아. 물론 이렇게 학생들 앞에서 도보여행을 떠나는 각오에 대해서 말하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응원의 에너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 손에는 고프로를 들고, 머리에는 마치 양봉업자처럼 회색 마스크 선캡을 쓰고, 2021년 7월 16일, 37도 폭염을 뚫고 700km의 대장정의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