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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Oct 22. 2020

등 뒤에서 불어오는 순풍을 탈 수 있는 나이

Like a surfrider

이십 대.

이제 막 방향키를 손에 움켜잡고 거친 바다로 떠밀어진 초보 항해사.

나의 지도에는 그 어떤 목적지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 키를 돌려야 하는지 가늠할 허술한 나침반 조차 준비되지 않았는데, 이쪽저쪽에서 부딪혀 오는 파도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물음표 부호만 찍어대던 나이

주변 사람이나 환경에 의해 이리저리 춤을 추는 가련한 나의 조각배는 예상과 같이 언제 어디서고 쉽사리 길을 잃었고, 자기만의 방향을 잡고 전진해가는 친구들을 쫓아가다가 결국에는 나와 맞지 않아 상처 받고 방향을 돌려야만 했던 나이였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아니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나 있는 것인지?

아니 애초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의 인생에 대답 없는 물음표 부호만 잔뜩 찍어대는 나이를 지나왔다.


나의 가련한 조각배는 가끔 역풍도 만나고 한쪽이 부서져 많은 보수의 과정을 거쳤을지언정,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리스트업 된 지금은 등 뒤에서 불어오는 순풍을 어느 정도 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방향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조금 유연해졌달까, 이제는 물음표 대신 적절한 위치에 쉼표와 마침표를 찍어 방향을 틀 수 있게 되었다.

10년 정도 해오던 나의 직업과 관계들에 쉼표를 찍었는데, 음 마침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은 미련, 일말의 여지라고 해둬야지.




또다시 어딘가로 가서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애초에 나는 원래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어디에든 있을 수 있었다.

컴퓨터 앞의 디자이너, 카메라를 들면 포토그래퍼, 바다에 나가면 서퍼, 고양이 곁의 성실한 집사, 짐을 꾸리기 시작하면 도망자,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사람.

또다시 나는 어딘가로 가서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있다.

나이라는 건 단지 숫자나 내 나이쯤에 이루어 놓은 일에 대한 정도가 아니라 이렇게 나에 대해 망설임 없이 설명할 수 있는 한 페이지의 리스트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오늘도 산책길에 나섰다.



체코의 시골마을 산책




가을 산책의 단상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한국과 꼭 같이 완연한 가을 색으로 물들어 있다.

나는 산책길에 스쳐가는 짧은 생각들을 좋아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런 단상들을 따로 기록해 두지는 않지만 이렇게 잠깐 만나는 사람들과 찰나에 스쳐가는 생각들을 좋아한다.

구보씨가 산책을 즐겨하는 이유는 산책길에 하는 생각들이란 보통 비관적이라기보다 낙관적인 콘텐츠일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예전엔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이 그렇게도 싫더니, 나이가 들수록 가을은 감성적으로 가장 풍부한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 동안 살아남기 위해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땅에 떨구고

그것들은 밑동을 덮어 겨울 동안 견디게 하고 흙으로 썩으면서 봄의 시작까지 나무를 도울 것이다.

마르고 쓸데없어 보이던 낙엽들에 감성을 불어넣게 만드는 것을 보니, 나도 나이가 꽤 들긴 들었나 보다.





집 밖이 더 좋은 5월과 같이 10월의 산책길에는 귀엽고 재미있는 것을 많이 만나게 된다.

공원에 있는 커다란 밤나무에 올라가 신나게 밤 털이를 하는 다 큰 아저씨 아줌마 옆에 있다가 나도 몇 개를 주워 바지 호주머니가 불룩해지도록 담아 넣어본다.


도토리나무 아래에서 주인과 신나게 공놀이를 하는 개를 넋 놓고 구경하다가 

다 익어서 모자를 벗고 떨어지는 커다란 도토리에 딱밤을 맞고 화들짝 놀라 소리를 꽥 지르기도 한다.


다람쥐를 위한 도토리 저금통에 넣기 위해 동네 꼬맹이들이 등을 구부리고 작은 손으로 열심히 도토리를 줍는 모습을 귀여워라~하고 있는 나를 본다.


산책이란 많은 모습의 나를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공원 근처를 산책하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그 출처를 좇다가, 창문이 열린 집 하나를 발견했다.

아코디언 연주 같은 경쾌한 음악소리는 파란 팬티가 널린 작은 창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빤쮸 좀 치우고

아코디언 소리가 좋아 영상에 담고 있으니 연주를 하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손을 멈추고선 잠깐만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고 널린 속옷을 치우셨다. 찍지 말라고 혼낼 줄 알았는데, 이런 식의 귀여운 반전을 만난다면 오늘의 산책은 대성공이다.



할아버지의 아코디언 연주

늘 산책길에 봤던 이 집은 어제까지는 그냥 심심한 체코의 한 건물일 뿐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고유명사가 달린 유의미한 건물이 되었다.

"아 왜 그 아코디언 빤쥬 할아버지 집 옆으로 난 골목에 길고양이들이 자주 출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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