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가실래요?”라는 선교사님의 물음에 고민도 없이 따라나섰다. 어린 시절 이후 시장에 따라나서는 게 이렇게 기뻤던 적이 있었나 싶다.
‘시장에 가면 과일이 많겠지? 망고나 사 먹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얼른 지갑만 챙겼다.
이렇게 기쁘게 시장에 따라나서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내가 지내는 따리음 마을과 캄퐁톰 시장은 차로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누군가 차를 끌고 나갈 때, 따라갈 수밖에 없다.
시골에 처박혀서 책만 읽고 쉬려고 왔지만,
시장에 가는 소소한 맛을 놓칠 수는 없으니까.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에서
느리게 가는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중앙선을 수십 번 넘고 나면
시장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중앙선을 넘어서 앞차를 추월할 때마다 조마조마하며 지켜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운전하는 사람들이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추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엄지손톱보다 작을 때, 잽싸게 속력을 내어 앞차를 추월하는 것이다. 추월할 때에는 맞은편 차뿐만 아니라, 양쪽 옆에서 튀어나올 수도 있는 차들에 대비해야 한다.
종종 길가의 마을이 있는 입구에서 깜빡이도 안 켜고 차들이 막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방을 주시해야 하는 운전을 한다면
나는 시장만 다녀와도 온 체력과 정신력을 다 써버릴 것만 같다.
“한국에서는 운전대를 잡고 어딘가에 도착했을 때, 여러 가지 생각도 하고 습관적으로 운전하는 탓에 어떻게 여기에 도착했는지 잊어버릴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전도사님은 ‘여기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펄쩍 뛴다. 한편으로 ‘캄보디아에서 운전을 시작한 터라, 비교적 신호체계를 지키는 한국에서 운전하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다’고 한다.
캄보디아에 오기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광주에서 놀러 온 친구들과 ‘부산 사람들이 운전을 터프하게 한다’는 농담을 했는데, 캄보디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수시로 중앙선을 넘나 들어야 하고, 속도 제한은 없으며, 신호등은 시내에 가야 볼 수 있는
이곳에서는 모든 운전자가 터프해야만 할 것 같다.
종종 차들이 조심스레 속도를 줄이는 순간이 있다. 바로 '소'가 지나갈 때다. 아마 다른 차의 속도는 대강 짐작하더라도 '소의 속도'는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소는 가려다가 딱 멈추기도 하고, 돌아서는 듯싶다가도 몸을 돌려 막 뛰기도 한다.
사람이라면 통하는 '상식'이 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캄보디아 운전법을 지켜보는 것이 익숙해질 즈음에 길가의 풍경을 보게 된다. 흙먼지가 자욱한 길가에 나란히 서있는 캄보디아식 집들, 길가에서 풀을 뜯는 소들, 주인 없는 개들이 보인다.
저 멀리 평원과 논밭이 이어지고 드문드문 다리긴 막대사탕 모양의 팜나무들이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