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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18. 2020

잔인한 망고의 추억

캄보디아 캄퐁톰에서

따리음 마을에서 캄퐁톰 시내로 달려와

큰 다리를 하나 건너면 바로 시장 골목이 나온다.


골목에는 따리음 마을 아이들과 함께 갔던 치과도 있고, 달러를 리엘로 바꿔주는 환전상도 있다. 골목을 지나면 커다란 시장이 나온다.


길가에 적당히 주차를 하고(주차장도, 주차선도 없어서 길 한복판이나 노점상 앞을 잘 피하기만 하면 거의 아무 곳에나 주차를 해도 된다) 시장에 들어선다.


귤과 배, 사과 그리고 감이 한가득 쌓여 있다. 하지만 내가 잘 아는 과일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매의 눈을 하고 망고나 두리안과 같은

동남아 과일을 찾는다.

첫날에는 망고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2주가 지나고 캄보디아를 떠날 날이 되어가자

점점 망고가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신나는 마음으로 망고 1킬로를 샀다.

1 킬로면 망고 한 네 개, 다섯 개쯤이다.

‘망고가 1킬로에 1달러면 너무 싸다’

속으로 좋아했는데, 선교사님은 ‘지금 망고 철이 아니라 비싸게 파는 것’이라고 한다.


망고 철이 되면,

마을에 한두 개 있는 망고나무에서

망고가 주렁주렁 열리고

너무 익어버린 망고가 뚝뚝 떨어져 썩어 간다니 거의 돈 없이도 먹는 게 망고가 아니겠나 싶다.


하지만 일 년 중 겨울과 비슷한, 과일이 가장 없는 이 시기에 온 나에게는 1킬로에 1달러 망고라도 감지덕지다.

점심을 먹고 망고 한 개, 저녁을 먹고 망고 한 개. 입이 노래질 정도로 신나게 망고를 먹었다.


망고도 크기와 익은 정도가 달랐는데,

정말 잘 익은 망고는 향이 좋고 단맛이 진했다. 커다랗고 겉이 누런색이었는데,

반으로 갈라 숟가락으로 크게 떠서 입에 넣는 순간 꼭 버터를 먹은 것처럼 부드럽고 깊은 향기가 낳다.


목소리에 비유하자면 싱그럽고 깔끔한 소프라노가 아니라, 묵직하면서도 온 몸에 퍼져 나가는 바리톤 같았다. 그동안 수많은 망고를 먹어봤지만, 이제야 진짜 망고 맛을 알게 된 기분이랄까.


농익은 두리안도 저 깊은 맛은 망고랑 비슷하다. 부드러운 질감에 오묘한 상큼함이 나는가 싶다가 깊은 밀림 속에 빠져버리듯 헤어 나올 수 없는 기름진 맛.


나중에 알고 보니 망고도 그렇고 두리안도 그렇고 모두 열량이 높은 과일이라고 한다.

아마 내가 느낀 ‘오일리’한 맛이

지방을 만드는 ‘열량’의 맛이었나 싶다.

그래서인지 망고를 그렇게 먹었지만

나는 먹고 싶었던 욕심만큼 먹진 못했다.


지금 이 글을 쓰다 보니 또 망고가 먹고 싶어 진다. 그러나 이제 확실히 안다.

진짜 망고 맛은 한국에서는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망고가 나고 자란 그곳에 가서 먹어야 한다.


과연 시간이 흘러 과학기술이 더욱 발달하면 동남아의 과일을 한국에서도 실컷 즐길 수 있을까?


내가 할머니가 되면 젊은 사람들이 망고의 원산지가 어디인지 모르는 그런 날도 올까?


요즘 수입한 와인이나 맥주를 집 근처 마트 어디서든 구입할 수 있는 것처럼?


사실 어떻게 되든 내가 먹었던 망고는 다시 만날 수 없다. 내가 망고를 만났던 그 시간과 공간이 되풀이될 수 없고, 그 망고는 이미 내 몸을 통과해 사라져 버렸다.


내가 먹은 망고도 되풀이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가진 존재였다.


언제 심겼을지 모를 어딘가의 나무에서 2019년 어느 날의 빗물과 햇살을 먹고 열매로 틔워지고, 바람도 맞으면서 길쭉하게 키워졌다.


그리고 몇 사람들의 손을 거쳐 캄퐁톰 시장으로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에서 2020년 어느 날, 아직 캄보디아어로 ‘맛있다’는 말도 못 배운 한국 여자에게 달러와 맞바꾼 것이다.


내 입속으로 사라지며 내 살의 일부가 되어버린 망고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아니 잔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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