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앤 Apr 11. 2021

하찮아 보이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조경란, 『소설가의 사물』




사물 그 자체로는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


우연히 들어간 가게의 한 켠에서 마주친 물건을 들고 고심하다, 카운터로 들고 갈 때의 설렘이 좋다. 나의 기준대로 정렬되어 있는 것에서 오는 만족스러움을 물건은 가져다준다. 일과 사람은 나의 뜻대로 되는 법이 없지만, 물건은 나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나의 버릇대로, 나의 취향대로, 나의 시간을 따라서, 나의 공간에서, 고요히 나를 기다린다.



조경란 작가와 나의 취향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검은 옷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렇지만 빨간 종이 클립과 같이 중요한 것에 닿는 물건은 에너지를 품은 색깔을 선호한다는 것에 공감이 갔다.



역시 소설가의 에세이. 평범하고 소소한 물건에 대한 작은 목차들을 읽을 때마다 탄탄한 미니픽션을 읽는 듯 했다. 작가의 조카들, 해외에서 만난 동료 작가들, 그리고 가족들의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섬세하게 살아있다. 물건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은 언뜻 익숙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상투적인 결론이나 느낌에 갇혀 있지 않다. 흔하디 흔한 물건에서 시작하여 어떤 아득함으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들. 읽는 내내 즐거웠고, 뒤돌아볼 수 있었다.



손수건에 대한 목차가 가장 내게 다가왔다. ‘다리미의 잔열로 손수건을 다리는’ 소설가의 어머니처럼,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의 셔츠와 나의 교복 블라우스를 다린 후, 다리미의 잔열로 손수건을 다리셨다. 엄마 취향이 담겨 있는 꽃무늬 손수건. 손수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내게 엄마는 그래도 늘 가지고 다니라며 가벼운 핀잔을 주곤 했다.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왠지 좋았다. 지금도 가방을 쌀 때 엄마의 조언대로 가방 구석에 손수건을 숨겨두곤 한다. 그러고 나서 늘 손수건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는다. 손수건으로 땀이나 눈물을 닦아 본 적도, 남의 눈물을 가려준 적도 아직 없다. 언젠가는 손수건의 사용 용도를 제대로 이뤄보고 싶다. 다림질하던 엄마가 아침 향기가 묻은 손수건을 건네주었듯이, 누군가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기억을 한 번쯤은 남겨보고 싶다.



**


52p. 마네는 레몬 한 알을 그렸을 뿐이다. 그런데 이 긴장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64p. 시간은 앞으로 간다. 우리는 분명히 지금보다 늙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순간, 이 시간을 명백히 살아내야 한다. 나는 나답게 당신은 당신답게.



93p. 열차가 방향을 비켜갈 때, 이야기는 진짜 시작된다.



260p. 즐거움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누군가의 동의도 필요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들레르, 『악의 꽃』을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