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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 Oct 22. 2021

밍밍함의 미학

나의 어설픈 밍밍함을 사랑하기


밍밍-하다 (형용사) 

    1.      음식 따위가 제맛이 나지 않고 몹시 싱겁다.                               

    2.      술이나 담배의 맛이 독하지 않고 몹시 싱겁다.                      

    3.      마음이 몹시 허전하고 싱겁다. 



커피는 아이스다. 얼음이 자글자글한 라떼를 곁에 두고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커피가 있어야 비로소 집중이 시작되고, 그 안엔 얼음이 있어야 본격적으로 무언가가 시작되는 느낌이 있다. 


커피를 반 이상 마실 때쯤이면 대체로 얼음이 거의 녹는다. 그리고 아이스 커피가 녹아내리고 있는 타이밍은 한창 작업에 '몰두하는 순간'에서 '지쳐가는 순간'을 관통한다. 얼음 녹은 물과 우유가 섞이면 처음의 고소했던 맛은 사라져있다. 커피가 밍밍해짐과 동시에 집중력도 함께 밍밍해지기 마련이다. 


어디 집중력 뿐인가. 호기로웠던 마음도 더불어 모두 밍밍해진다. 커피가 바닥을 보이고, 생기로웠던 마음도 바닥을 보인다. '여기까지는 적어도 하려고 했는데, 반도 못 했어', '난 정말 의욕만 많구나', '끝낼 순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들어선다. 


저 수상한-밍밍한 액체가 애매한 내 처지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보란 듯이 오늘의 체크리스트를 다 깨내지 못하는 내 모습. 

어제와 같은 나. 한 모금 거리의 나. 

얼른 분리수거하고 싶은 상태의 나. 밍밍한 나. 




그러나 밍밍해도 괜찮지 않은가?  

밍밍하다는 건 진함과 연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상태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진함과 연함의 가능성을 모두 갖춘.


그리고 우리는 이 밍밍함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든다. 

가장 자연스러운 균형, 밍밍함. 


스스로가 밍밍하다고 느끼는 때는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과도 같다.

그래서 밍밍함의 순간은 오히려 '과도함'의 순간보다 낫다.

나의 어떤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다 마신 커피잔의 바닥을 보는 것처럼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상태에서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커피잔의 바닥도, 나의 바닥도. 

그래서 차라리 밍밍한 상태, 바닥이 보이는 상태가 낫다.  


가방을 메고 카페 문을 닫으며, 

오늘도 체크리스트를 닫기 위해 열심이었던 나를 작게 인정해본다. 

나의 작고 소중한 밍밍함을 사랑할 사람은 나뿐이다.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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