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위스 호수에 내 몸을 맡긴다는 것은

수영 예찬론자의 스위스에서 수영하기

by 은달

나는 수영을 좋아한다. 준비운동을 가볍게 하고 물 속에 뛰어들었을 때의 그 상쾌함이 좋다. 물 속에서 내 몸을 맡기고 물의 흐름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감각이 좋다. 열심히 수영을 하고 나왔을 때 느껴지는 근육의 뻐근함은 내가 제대로 된 운동을 했음을 느끼게 해준다. 어렸을 때 수영장에 몇 년 다닌 후로 한동안 수영을 즐길 기회가 없었지만, 스위스에 온 이후 물에 뛰어들 기회가 많다는 것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수영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다.



스위스는 설산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호수가 아주 많다. 크기가 1헥타르(10,000㎡) 이상인 호수만 약 1,500개라고 한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맑고 깨끗한 편이라,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호숫가에 모여 수영을 즐긴다. 특히 내가 사는 로잔은 레만 호수(lake leman)를 끼고 있는, 호수가 매우 가까운 도시다. 레만 호수는 다른 호수보다도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며, 스위스에서 제일 큰 호수일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규모 면에서 상위권에 든다. 이렇게나 호수가 크기 때문에 물의 순환이 잘 되는 편이고, 그 때문에 고인 물에서 생길 수 있는 해충이 덜한 편이다. 거의 바다 같은 호수 덕에 사람들은 이곳에서 수영 뿐 아니라 세일링이나 패들보트를 타기도 하고, 각종 수상 스포츠를 즐긴다. 개인적으로 레만 호수는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 호수와 가까이 사는 장점을 누리기 위해 여름만 되면 일이 끝나자마자 호숫가에 수영하러 가곤 한다. 사실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스위스는 에어컨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호수가 천연 에어컨의 기능을 해준다(고 위로해 본다). (물론 수영을 하며 일할 수 없다는 게 흠이지만..)



작년에 처음으로 호수 수영을 성공한 이후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찾아온 가운데, 지난 주 드디어 올 여름 첫 호수 수영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자연에 몸을 맡기는 것이라 살짝 긴장도 되었지만, 오랜만에 찾은 레만 호수는 나를 다시 반갑게 맞아주었다. 6월 말 호수의 수온은 약 21도 정도다. 수영장 물보다 조금 차갑지만,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조금씩 물 속으로 들어가면 익숙해진다. 게다가 스위스의 여름 햇빛은 매우 뜨겁기 때문에 한낮에는 호수의 표면이 햇빛으로 데워져 따뜻해지기도 한다.



사실 스위스 호수에 내 몸을 자연스럽게 맡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는 호수에서 수영한다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이거니와, 수영이라고는 제한된 공간인 수영장에서 헤엄을 친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한국 수영장은 대부분 깊이가 깊지 않아 바닥이 발에 닿는다. 그러나 스위스 호수는 자연 그 자체이기에, 바닥이 발에 닿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다. 처음에는 이 사실이 너무 무서워서 감히 호수에 몸을 맡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른 유럽 친구들은 잘만 뛰어드는데, 두려움에 그들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던 무수한 지난날들이 있었다. 이것은 스위스에 살게 된 지 한참이 지난 후 스페인 마요르카의 바다 수영 이후 극복하게 되었다. 마요르카의 해변은 물 색이 매우 옅어 바닥이 닿지 않아도 바닥을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바닥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수영하는 감각을 익힌 후, 다시 호수 수영을 도전했고 드디어 지금은 긴장하지 않고 즐겁게 호수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호수에서 유유자적 몸을 움직이며 둥둥 떠다니면, 산과 마을들이 어우러진 자연 풍경을 호수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는 기차도 보이고, 넓게 펼쳐진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밭도 보인다. 구름이 움직이는 것도 관찰할 수 있다. 그렇게 내 몸을 자연에 맡긴 채 그것을 음미하다 보면, 나도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현실 감각이 없어진다. 내가 한국에서 살 때만 해도 나중에 스위스 호수에 몸을 맡기는 삶을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아니, 스위스에 도착한 이후로도 내가 이렇게 자연을 즐길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이기에 아직도 자연은 내게 너무도 신비하기만 하다. 현대인의 삶을 살면서 자연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삶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IMG_1615.HEIC 레만 호수에서 만난 오리 가족


호수 수영은 분명히 내게 새롭고 도전적인 일이었지만, 그래도 실내 수영장을 여전히 찾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제대로 된 운동 효과를 내려면 실내 수영장이 조금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고, 둘째로 스위스의 수영장 시설이 매우 쾌적하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살면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 중 하나다. 동네 곳곳마다 규모가 제법 큰 수영장이 있고(50m 풀을 갖춘 곳이 많다. 주의할 점은 깊이도 2m라는 점), 탈의실과 샤워실도 깨끗한 데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한국 수영장에 비해 사람도 많지 않다. 최근 수영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골전도 이어폰을 산 터라 더더욱 수영을 향한 열정이 커졌다. 여름이 되면 야외 수영장도 본격 개방하는데,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게 잘 되어 있다. 취향에 따라 원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호수 수영이 무서운 사람들은 호숫가에 위치한 야외 수영장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다.



유연근무가 가능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나로서는 일부러 사람들이 덜 모이는 시간에 수영장에 간다. 사람이 많지 않을 땐 나 혼자 50미터 레인을 차지할 때도 있다. 그야말로 자유를 만끽하는 기분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 등으로 생각이 많을 때, 팔과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물속에 있다 나오면 생각을 어느 정도 털어 버릴 수 있다. 나 혼자 하는 것이니 스스로 페이스 조절도 할 수 있다. 열정에 불타는 날엔 좀 더 빠르게, 체력적으로 지치는 날엔 조금 더 느리게 속도를 조절하며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또 상대적으로 다른 운동에 비해 근육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괜찮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없는 운동이라는 게 정말 마음에 든다. 수영을 배워두길 정말 잘했다.


IMG_7736.heic 내가 자주 가는 실내 수영장, vaudoise arena



나는 개인적으로 수영을 좋아하지만, 위급상황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수영은 모두가 배워야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의 한국인 친구들은 수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이야기하면 유럽 사람들은 화들짝 놀란다. 유럽에서는 학교에서의 수영 강습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시골에 있는 학교여도 수영장이 딸려 있다고 한다. 심지어 다이빙 강습도 포함되어 있단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 수영을 못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모두가 최소한의 생존 수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교육 시스템이 부러웠다. 지금은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수영이 포함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영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수영을 할 줄 몰랐다. 미래에는 한국에서도 학교에서 이 부분을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좋겠다. 모두가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그날을 위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프랑스 리옹 여행 한줄평: 난 프랑스에서는 못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