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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그 독일 남자는 무엇이 달랐을까

by 은달

어렸을 때의 나는, 꽤나 소심하고 섬세한 아이였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상처받고, 잘 토라지는 아이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담임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잘 못 들으셔서 몇 번 다시 물어보셨는데, 조용히 대답하다가 결국 '000이요! 으아앙~!!' 이름을 외치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꽤나 신경 쓰고,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아하는 아이였다.



중학교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성에 대한 자아가 생겼는데, 당시의 나는 같은 반 남자 애들이 정말 싫었다. 수업 시간에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싫었고, 체육 시간에 여자 애들한테 잘 보이려고 허세 부리는 것도 꼴 보기가 싫었다. 각종 욕설을 섞어 가며 '센 척' 하는 애들이 대부분이라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 지금 그 친구들의 당시 나이를 생각해 보면 그러기 쉬운 때였다는 걸 이해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 또한 예민한 청소년기 학생이었기에, 그저 한심해 보이는 그들에게 전혀 이성적 감정을 느끼지도 않았고 자연스레 연애에 대한 관심 또한 별로 없었다.



열심히 공부만 하다 드디어 대학에 입학한 그해, 친구들이 하나 둘 연애를 시작했다. 행복해 보였다. 나도 연애가 궁금했다. 하지만 동시에 남자친구만 바라보게 된 그들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그들은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는 나를 안쓰럽게 여겼다.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몇 명을 만나기도 했지만, 마음이 크게 가지는 않았고 그 때문인지 그들과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책과 미디어, 콘텐츠를 접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었다. 한국에서 결혼한 여성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대기업 인턴을 할 때 뵈었던 높은 자리에 계신 여성 분들은 모두 미혼이거나 딩크족이였다. 결정적으로 내가 지켜본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20대 중반에 이른 결혼을 하시고 나와 동생을 낳으며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셨다. 하고 싶은 일이 많으셨지만, 가부장적 분위기와 의무감 때문에 전업주부로 30년을 보내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시자마자 모든 집안일에서 손을 떼고 육아를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맡기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커리어를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 생각도 별로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은 사람이다. 한국에서 짧게 만났던 사람들은 나의 야망을 부담스러워했다. 한때는 다 줄 것 같았던 사람도 떠나가는 것을 보며, 한 사람과의 평생을 약속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결혼이 나에게 주는 이득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그의 어떤 점이 나의 생각을 바꾸었을까?



그의 장점 1. 감정 표현과 칭찬을 잘한다


어린 시절 나는 스스로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그리 높지 않았다. 항상 나보다 예쁜 친구들이 있었고, 한국의 미적 기준에 완벽히 부합하는 그들만이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그를 만나고 나서 자신감이 월등히 높아지게 되었다. 그는 내 모습에서 아름다운 부분을 너무도 잘 찾고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매일 얼굴을 보지만 항상 예쁘다고 말해주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봐준다. 그 덕에 칭찬받는 것에 어색했던 내가 지금은 '나도 알아~' 로 뻔뻔히 받아치는 수준이 되었다. 화장기 전혀 없는 추레한 얼굴마저도 사랑해주는 그가 고맙다. 표현에 서툰 나도 그가 주는 만큼 돌려주려 노력하고 있다.


그의 장점 2. 새로운 것에 거부감이 없다


나 때문에 이미 거주지를 두 번이나 옮긴 그다. 나의 학업/직장 때문에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흔쾌히 나 하나만 바라보고 삶의 터전을 옮겼다. 남들은 스트레스 받기 쉬운 상황인데도 그는 군말 없이 나를 따라와 주었다. 내가 행복하면 자기도 행복하다는 그. 그는 한국 음식도 잘 먹는다. 단순히 잘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한다. 놀랍게도 매운 음식을 즐긴다. 이제는 완전히 한국 음식에 길들여져 다음 한국행을 기다리는 수준이 되었다. 나의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2년 동안 두 번이나 한국에 왔다. 나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낯선 곳, 낯선 음식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그이기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장점 3. 나를 진심으로 지지해 준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왜인지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다 내가 영어 한 마디라도 사용하면 처음에는 '오~~' 하며 칭찬하는 척 하다가도 거리감을 느꼈다. 해외 경험을 이야기하면 그에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난 그저 함께 즐겁고 싶었지만, 그들은 혼자서 자신을 나와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꼈다. 내가 잘되면 그들은 마냥 기뻐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앞길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이다. 내가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칠 때마다 그는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주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시도할 때마다 해보라고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이다. 내가 이룬 것에 자격지심을 전혀 느끼지 않고 지지해 준다. 곁에서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그다.



이외에도 그의 장점은 많지만, 이 세 가지가 가장 큰 부분이 아닐까 한다. 그와 함께라면 힘들 때도 잘 이겨낼 수 있고, 서로를 아끼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 초반과 완벽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와 함께하면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많은 부분에 냉소적이었던 내가 그를 만나고 많이 따뜻해졌기에. 삶을 좀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에.



그래서,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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