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개인주의와 동양의 유교 문화
어떤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가정환경을 봐라.
우리 어머니가 자주 하신 말씀이다. 동시에 연애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들 중 하나라고 하셨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난 곳 없이 밝은 성격을 가졌을 확률이 높다면서, 미래의 배우자를 만날 때 돈이나 명예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다. 사실 어머니 말씀은 배우자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 친구 등 누구를 만날 때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렸을 때만 해도 잘 와닿지 않았던 이야기였는데, 성인이 되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그 말씀이 이해되는 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진지한 연애를 지속하다 보면, 서로의 부모님 또한 자연스럽게 더 잘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연인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을 수도 있고, 직접 만나 뵐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다. 내 경우 두 가지 모두에 해당했는데, 직접 뵙기 전 간접적으로 들은 그의 부모님은 자상하시고 활기가 넘치는 분들 같았다. 아버님은 공학을 전공하셨지만 집안 대대로 세일링을 해오신 스포츠 집안이었고, 이른 은퇴 후 여름에는 세일링을 하고 겨울에는 스키를 타는 재미로 사시는 분이셨다. 어머님은 교육공학 쪽을 전공하시고 관련 회사에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그와 동생을 양육할 때는 프리랜서로 일하시다가 지금은 다시 회사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곧 은퇴를 앞두고 계시다고 한다. 그리고 두 분은 그가 열두 살 때 이혼하셨다.
나의 학창시절에는 부모님이 이혼하신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그만큼 이혼이라는 게 흔하지 않은 일이었고, 어쩌다 누구의 부모님이 이혼하셨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 '헉, 이혼하셨대? 대박' 같은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현재까지 연락이 닿는 내 오랜 친구들도 부모님이 이혼을 하신 경우는 없다. 물론 친구들의 집안 속사정은 화목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부모님이 따로 떨어져 사시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그에게 부모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살짝 놀랐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유럽에서는 이혼이 아주 흔하다. 지금의 한국도 이혼이 매우 흔해졌다고 들었다. 나도 이곳에서 사귄 친구들은 부모님이 이혼을 하신 경우가 많았다. 단지 그에게서 아픔이나 그늘 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아 놀랐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혼 가정에 대해 차별적인 시선이 조금은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더욱 심했다. 당사자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아마 그 당시 이혼한 가정의 자녀가 사회에서 받았을 상처는 꽤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또한 유럽에 와 그를 만나기 전에는 막연히 이혼한 가정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편협했던 것 같다. 그는 다행히 부모님의 이혼 후에도 두 분과의 관계를 매우 잘 유지했고, 두 분 모두와 지금까지 가깝게 지낸다. 부모님께서 자녀에게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분은 각자 다른 분을 만나셔서 그의 부모님은 총 네 분이 되었다.
물론 그는 부모님이 이혼하신 것을 그 당시에는 매우 힘들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의 그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이제는 각자 더 잘 맞는 파트너를 만나서 오랫동안 잘 지내고 계시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그분들은 정말 행복하게 인생을 즐기고 계신다. 두 분 다 환갑이 훌쩍 넘으신 나이인데도 각종 스포츠 활동에 사교활동, 여행 등 무엇인가를 하는 데 전혀 두려움이 없으시다. 그리고 두 분 모두 그를 정말 사랑하신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그분들을 따로 찾아뵙는데, 다들 우리를 따뜻하게 반겨주시고 아낌없는 애정을 주신다. 내가 그저 그의 여자친구라는 이유만으로도 따뜻하게 맞아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와의 만남을 지속하며 느끼게 된 것이 있다. 바로 그의 부모님과 그의 관계는 나와 내 부모님 사이와의 것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께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 우리 어머니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분이셨는데, 아버지와 결혼 후 아이를 둘 키우면서 꿈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전혀 맞지 않는 아버지와 싸우지 않고 항상 꾹꾹 참으셨다. 커리어우먼이 꿈이셨지만 20년이 넘게 우리를 뒷바라지하느라 다른 건 생각도 하지 못하셨다. 일년에 몇 번씩 찾아오는 제사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때가 찾아오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신다. 아버지는 온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회사의 엄청난 압박을 이겨내며 회사생활을 꿋꿋이 해내셨다. 가족을 위한 희생정신이 너무도 깊이 박힌 탓에, 지금도 본인의 인생을 즐길 줄 모르신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난 뒤에는, 자연스레 부모님에 대한 측은함과 미안함이 내 마음 속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는 달랐다. 그가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는 묘하게 다르다. 적어도 미안함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 그의 부모님께서 본인들의 행복을 희생하지 않으셨기에 그도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그의 부모님께서는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2주씩 단둘이 휴가를 다녀오시기도 하고, 집안에는 청소를 도와주시는 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어머니께서 그를 집에 놔두고 주말에 외출하시는 게 흔했다고 한다. 한국 부모님들로부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그분들은 '본인의 행복' 이 중요해서 이혼을 하신 분들이었다. 다른 치명적인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두 분이 잘 맞지 않았고, 이대로 삶을 지속하면 행복할 것 같지 않아 이혼을 선택하신 분들이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책임은 확실히 지셨다. 주 양육자인 어머니가 2주에 한 번 아버지와 아이들이 주말에 시간을 보내게 하고, 자녀와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지금도 그분들을 보면, 자녀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그분들도 자녀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바라신다. 그러나 그 방식이 매우 다른 것 같다. 자녀에게 '밀착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인 것이다. 자녀의 연애나 결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녀가 만나는 사람의 부나 명예에 집착하기보다는, 자녀가 진정으로 행복하다면 축복해줄 수 있다는 느낌이다. 딱히 한국 부모님 특유의 걱정도 잘 하시지 않는다. 그도 독립적으로 자란 터라 부모님과 친밀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잘 지낸다. 우리 부모님은 지금은 많이 나아지셨지만 그래도 항상 걱정을 달고 사시는 분들이다. 이런 부모님들을 우리는 서로 신기해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부모님 네 분 모두 건강하시다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 얼굴을 자주 뵙지 못해 항상 죄송할 따름이다. 또 한 가지 더 다행인 것은, 양가 모두가 우리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고 계시다는 것.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발전하는 관계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나의 선택을 믿어주고 항상 지지해 주시는 나의 부모님과 내게 항상 아낌없는 관심을 주시는 그의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한다.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