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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만 먹고 그렇게 클 수 있단 말야?

너무도 다른 독일 식문화

by 은달

그와 연애하며 알게 된 것 중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바로, 독일인들은 평일 저녁에는 빵, 치즈, 살라미 등으로만 이루어진 매우 간단한 식사를 한다는 것이다.


삼시세끼 따뜻한 밥상을 받아왔던 내게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우선 따뜻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도 놀랍고, 그렇게나 간단한 음식만 먹었는데 그렇게 그들의 덩치가 큰 것도 놀라우며(독일 남성의 평균 키는 180이 넘는다), 무엇보다 매일을 그렇게 먹는다면 삶이 우울하지는 않을지가 의문이었다. 아무리 독일에서 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줄은 몰랐다. 특별히 돈을 아끼기 위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가정집에서 그렇게 먹는단다. 믿기지 않아 다른 독일인 친구들에게도 물어보니 다들 비슷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그에게 그렇게 먹으면 양이 부족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점심 때 제대로 한 끼를 먹으니 괜찮단다. 게다가 요즘에는 맞벌이 부부가 많은데 퇴근하고 돌아오면 요리할 시간이 없는데 제대로 갖춰 먹는 식사를 하는 게 더 힘든 일 아니냐고 한다. 뼛속부터 실용주의인 그들을 대변하는 그의 말에 머리가 멍해지며 그 순간 그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가 부엌에서 보냈을 시간이 대비되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이것은 엄청난 문화 차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겠지만 한국인의 정서로 '밥심' 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음식에 대한 태도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가능하다면 세 끼 모두 따뜻한 밥상을 차려먹는 것이 익숙한 문화다. 내 경우 아버지께서 토종 한국 입맛이셔서 주부셨던 어머니가 매 끼 항상 따뜻한 국을 끓여 내오셨다. 매일같이 그렇게 밥상을 차려내야 했기에 어머니의 스트레스가 꽤 심했다. 나 또한 고등학생 때까지 아침을 꼭 먹었던 사람이었고, 간단한 빵과 우유가 아닌 제대로 된 밥상을 받았다. 지금에서야 어머니의 노고를 깨닫고 있지만, 그땐 철없게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부모님은 내 부모님과 음식에 대한 태도가 매우 다르시다. 특히 어머님께서 요리를 정말 싫어하시고, 그의 말로는 항상 최소한의 요리만 하셨다고 한다. 아침에는 거의 항상 차가운 우유나 요거트에 뮤슬리를 말아 먹었다고 한다. 차가운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로서는 그 때문에 아침을 거의 먹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건 그가 예외인 듯하다. 독일의 전통적인 아침식사 자체가 Kalt Essen(차가운 음식) 이기 때문이다. 독일 아침식사는 주로 빵, 치즈, 햄 등을 늘어놓고 원하는 잼이나 버터를 발라 먹는 방식이다(사실 저녁과 비슷..). 삶은 계란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따뜻한 국물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에 그의 어머니가 로잔에 놀러오셔서 얻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다시금 그분의 음식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를 느꼈다. 함께 파노라마 기차를 타고 나들이를 다녀오는 일정이었는데, 오전 9시에 만날지 정오에 만날지 상의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정오는 점심시간과 겹쳐 애매하니 오전에 만나는 게 어때?' 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어머님께서 내 말을 들으시고 '아 우린 점심 안 먹어도 돼~ 아침 먹고 나올건데 뭐' 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었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침을 거르는 것도 아니고 점심을 거르다니. 게다가 가족 나들이에서 원래 맛있는 음식은 당연히 따라와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분들은 문화가 아예 다른 사람들이기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오에 만나 기차를 탔는데, 그분들은 저녁식사 전까지 조그만 에너지바와 물 이외에 다른 걸 드시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저녁을 요리해 먹는다는 우리를 신기해하신다. 다행히 남자친구는 매일 다른 음식을 해먹는 걸 좋아한다. 한두 번 한식으로 저녁을 해줬는데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에 반해 이제는 내가 요리할 차례가 되면 뭘 해달라고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단계가 되었다. 이제는 두 번 한국에 방문한 이력도 있기 때문에, 한국의 음식 문화에 대해 나름 잘 알고 있다. 특히 서양인치고 매운 음식을 꽤 잘 먹고 또 좋아해서 우리는 입맛이 꽤 잘 맞는 편이다. 너무도 다행인 일이다.


그와 그의 가족을 보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식문화가 존재하고, 음식에 대한 태도 또한 사람마다 다르며, 개개인의 음식에 대한 취향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의 가족에 대해 신기해하는 부분이 많다. 내 어머니께 독일인들의 저녁식사에 대해 말씀드리자 '고것만 먹고 걔(남자친구)는 어떻게 그리 컸대?' 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신다. 그는 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하지만, 가끔 낯선 해산물을 마주할 때면 겁먹은 표정을 짓는다. 내가 독일인들이 먹는 각종 요상한 소세지를 보면서 똑같이 느끼는 것과 같을 것이다. 무엇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냥 사랑하는 사람의 문화구나 하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다행히 그의 음식에 대한 태도는 나와 비슷한 쪽으로 많이 바뀌었다.



나 안 만났으면 이 좋은 것 평생 모르고 살았을 거다!



사진 출처: Photo b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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