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자녀와 부모 간의 공감
#공감,Empathy,共感
부모는 아이들의 청소년 시기를 함께 하며 제2의 사춘기를 아이와 함께 맞이 한다. 공통점은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부모도 아이도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모도 아이도 모두 사춘기다.
부모는 과거의 경험으로 현실 세계와 미래를 내다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오류는 과거에 자신의 사춘기, 중2병이 있던 시절을 기억 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안 그랬다고 생각하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청소년기를 지나는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고 키워 봤어도 아이들이 다 성격이 다르고 그때그때 상황이 달라 결국 부모도 아이와 함께 사춘기를 같이 다시 맞이하게 되는 것 같다.
과거의 삶을 꺼내는 순간 아이들에게 꼰대가 된다. 부모가 더 사춘기 같아 보이는데 정작 본인들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알아차리더라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나는 부모니까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 라떼는 말이다.
"넌 누굴 닮은 거니" - 비교하기
"그래서 대학은 가겠니..." - 무시하기
"몰라 네가 알아서 해..." - 포기하기
"뭐라고, 언제 그랬어?" - 경청하지 않기
"그래 어디 한번 이야기해 봐" - 강압적 태도
이러한 태도로 아이들과 마주할 때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며 대화를 이어 가봐야 언쟁만 높아지는 현상을 겪어 보았을 것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꺼내지 못한 채 이런 악순환은 반복된다. 그리고 골이 깊어 간다.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왜, 어쩌라고...?"
"아, 진짜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알지도 못하면서..."
보통 사춘기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 사실 이 시기에 혼자서 알아서 하지는 못한다. 나름 자아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는 하나 혼돈의 시기이다. 마음으로는 그런 말들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반복되는 상황을 본인도 왜 그러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본인이 했던 말들에 사실은 스스로 미안함을 가지고 죄송하다고 말할 기회를 찾고 있는데
"야, 너. 엄마한테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언제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거야~~"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등등
이렇게 말하는 순간 아이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방구석에서 나오지 않는다. 얼굴 표정은 늘 세상의 모든 불만을 가진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절대 내가 먼저 손을 들고 나갈 생각은 없지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뭔가 잘못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부모는 이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사춘기 아이의 마음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할퀴어 버린다.
"얼굴 좀 펴고 다니지?"
"방구석에 처박혀서 핸드폰만 하고 있는 거니?"
"공부는 도데체 언제 할꺼야!!"
자아가 생기는 시기라 본인들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생활을 하는데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사춘기이다. 특히나 시험기간에 아이들은 매우 예민하다. 이 시기에 평소에 시키던 온 갓 심부름을 시키면 100% 짜증을 낸다.
얼굴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안 좋은일 있니? 등" 물어보며 괜히 친한 척 시도를 하는 순간 또 짜증을 낸다. 그냥 평소에도 친한 척하면 짜증을 내기도 한다.
아이가 공부는 안 하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어 한소리 했더니.
"아빠는 알지도 못하면서..."
학원 선생님과 수업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다거나. 하루 종일 공부하다 이제 스마트폰 보는데 잔소리한다고 소리를 질러 댄다. 부모가 보기엔 잠시만 공부를 하지 않고 있어도 계속 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악순환은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반복되다가 아이는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되고 그제야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 낸다.
"지난번에 엄마와 이야기할 때 다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어쩌고 저쩌고."
"그래, 그때는 엄마도 너한테 너무 심하게 대한 것 같아. 그런데 너도 좀 심하지 않았니?"
울음바다가 된다.
울음 앞에 장사 없다고 그제야 부모는 "그래 네가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었구나"하고 이야기 하지만...
그때 지금처럼 잘 들어줬었으면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무튼 그 시간이 지나고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 다시 반복되는 시간이 찾아온다.
반복되는 것을 끊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되면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삶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픔이 있어야 성숙해지고 깨닫는 것도 있다.
그나마 가끔이라도 속시원히 쏟아내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사춘기를 조금 지나면 부모를이해해 주는 것 처럼 하지만 사실은 부딛혀야 피곤하는 피하려고 한다. 말은 안하지민 지켜보면 눈에 다 보인다.
왜 그렇게 극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일까?
아이들과 공감을 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 일까?
몇 가지 정도 왜 그러는지 어떻게 하면 될지 정리해 봤지만 사실 정답은 아니다.
솔직히 필자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격고 지낸 경험에서 오는 생각들이다.
다음 사춘기 타자가 없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첫 번째,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있다.
평소에 아이가 뭔가 이야기하려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나중에 이야기해 놓고 그냥 지나쳐 버리지는 않았는가?
대화 중 걸려 온 전화를 받느라 또는 다른 일 때문에 대화가 단절이 되지 않았는가?
대화 중에 끝까지 듣지 않고 말을 자르고 반박하는 말들을 하고 있지 않는가?
한 번이라도 아이가 이야기하는 것을 끝까지 경청하면서 이야기하는 중간에 끊지 않고 들어 준 적이 없다면 아이는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문을 닫는다. 방문도 닫는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큼 좋은 아이와의 거리를 좁히는 솔루션은 없다.
두 번째,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바른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아이와 엄마가 식탁에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의자 뒤에 등을 붙이고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 아이가 아니라도 대화를 지속해 나가는데 어려움이 있고 엄마는 마치 기회를 봐서 공격을 하려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또는 아이가 이야기를 하는데 계속 스마트폰을 보거나 TV 등 다른 것을 하면서 건성으로 들어주는 태도도 좋지 않은 행동 중에 하나이다.
대화를 할 때는 가능하면 최대한 몸을 앞으로 당기고 아이와 시선을 맞추고 들어주어야 한다. 대화에도 기본자세가 있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대화 내용에 공감 해 주지 않고 있다.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부모가 하고 싶은 말을 해 버리면 아이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게 된다.
아이가 하는 말이 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경청을 하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아이가 하는 말에 대해 공감을 간다는 표정이나 짤막한 추임새 정도를 해 주는 것이 좋다.
"그래, 울 딸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네. 엄마한테 진작 이야기하지 그랬어"
"잘했네, 나는 그런 줄도 몰랐네. 다음부터 엄마한테 이야기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아무리 속에 있는 진짜 이야기가 하고 싶어도 참고 이야기가 다 끝나면 아이가 이야기했던 내용 중에 잘하고 있는 부분은 칭찬을 해 주고 잘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내 생각은 이런데 이렇게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떨까?"라고 이야기하는 정도의 질문을 하면 아이는 더 생각해 보겠다거나 그런 좋은 방법이 있네라고 받아들일 확률은 높아진다.
만약 잘못한 부분에 대해 "지금 네가 남자 친구 만날 때니, 나중에 대학 들어가면 그때 실컷 만나고 지금은 공부나 해"와 같은 투로 말한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칭찬할 것은 과하게 칭찬하고, 잘못된 부분은 아이가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부드러운 말로 공감을 얻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부모는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누구나 아이에게도 배우자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싫은 소리를 하며 살아가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경청하고 공감하며 올바른 자세로 대화를 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도 문제를 일으킬 일은 생기지 않는다.
아이들과의 소통 그리고 공감은 어렵지만 이해하려고 하지마시고 공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해하려고요? 공감해 주세요.